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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2022.11.20. 전남 장흥 천관산 기암괴석과 한국불교의 태동지 탑산사 탐방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2. 11. 22.

1. 일자 : 2022.11.20.(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 장천제 주차장-영월정-문바위-양근암-봉황봉-정원석-연대봉(정상)- 환희대(720m)-구룡봉(675m)- 탑산사-천관문학관

 

 

 

4. 산행소감

 

천관산은 호남 5대 명산이기도 하지만 남녁에서 바라보면 유독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산이며 산등성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여 신비로움이 느껴져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산이다. 이 맘 때 천관산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오르는 암릉산행도 한 재미이다. 천관산 주변에는 절집도 많고 역사적 인물도 많으며 문학적 인물도 많다. 천관산은 나에게 어머니로 다가오는 산이기도 하다. 천관산에 오르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뵌 것 같다. 어릴적 섬에서 자란 나는 한번도 육지에 가보지 못해서 늘 저멀리 보이는 천관산이 신비의 대상이였다. 저 높은 산은 신선들만이 사는 곳인가?  언젠가 천관산에 있는 스님이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렇구나! 저 높은 산에는 도를 깨우친 스님들이 사는 곳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선망했던 산이다. 사실 어머니는 천관산 아래 관산이 고향이다. 대덕장이 서는 날에는 어머니는 천관산 절로 기도하러 가곤 하였다. 그 절이 혹시 천관사나 탑산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릴적에 본 스님들과 보살님들은 꼭 우리집에서 자고 가셨다. 어머님의 지극 정성이였다. 나중에 내가 천관산을 오르고 탑산사가 매우 유명한 절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 어머님이 이 절에서 기도하곤 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오늘은 어머니 숨결을 만나러 천관산 탑산사로 간다. 포근한 엄마 품이 그리워서~ 이 나이 되어도 그립고 그리운 아~ 어머니!

 

 

5. 산행 추억

 

 

호남 5대 명산 천관산 등산로 안내

오늘은 양근암 코스로 올라 연대봉을 거쳐 탑산사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할 대원들과 단체 인증하고

 

 

호남제일 지제영산

"부처의 복덕이 쌓여있는 것과 같은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의 지제영산(支提靈山) 표지석. 불경에 천관산을 지제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가을 끝자락 단풍과 낙엽을 밟으며 천관산을 오른다.

 

천관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초입에 역사적 인물의 유적이 몇 군데 있다.  독립지사 덕암 위석규와 고려17대 인종왕비 공예태후(장흥 임씨) 그리고 조선 4대 실학자로 불리는 존재 위백규이다. 그들을 만나보자.

 

◎ 독립지사 덕암 위석규를 추모하며

 

독립지사 덕암 위석규유제지

 

덕암 위석규는 1878년 3월 2일 전라도 장흥도호부 고하면(현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 한문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수백 문자를 어렵지 않게 익힐 정도로 신동의 자질을 보였다고 한다.

1889년 송병선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송병선은 그를 특별히 총애하여 많은 학문과 범절을 손수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1883년 금곡리 연산서재에 취학했고 1900년 홍의재 위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독립지사 덕암 위석규-장흥군 제공

1901년 그는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독파하고 미진한 부분은 가르침으로 독해했으며 1902년(임인년)에는 다시 <중용(中庸)>을 천 번에 가깝도록 독파하였고 여름 가을 사이에 강진의 생관에서 학업을 강마 수련하기도 하였다. 1904년부터 농사에 종사하여 낮에는 논밭을 갈고 집에서는 늙은 부모님을 봉양했다. 벼슬에 오르지 않아 봉록을 받지 못했기에 생활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는 저녁 시간에 반드시 글을 읽고 외웠다고 한다.
 
 
 

 덕암 위석규 어록비


1905년 민영환(독립운동가)이 을사조약 체결에 비감을 금치 못한 끝에 자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위석규는 한양으로 상경하여 민영환의 영정에 조문한 뒤 귀향했다. 이후 1906년경, 그는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짐승(倭)이 사람과 영토를 침탈하니 장차 모두 죽겠도다. 슬프다. 오국(吳國)이 도수(盜獸)들의 노략으로 국가가 존망지추(存亡之秋)에 다달아 백성이 진멸(盡滅)케 되었으니 우리들은 팔을 걷어 주먹을 쥐고 용약분투(踊躍奮鬪), 만사일생(萬死一生)의 각오로 영토를 지키자. 사람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대의를 따르면 사람이요 사욕을 채운다면 금수(禽獸)다. 고금을 막론하고 국난을 당하여 국가사직을 붙잡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분강개(義憤慷慨) 일어서면 모두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독립운동가)의 부대에 가담했지만 최익현이 순창에서 관군에게 체포되면서 무위에 그치자 연해주로 망명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삼아 만주, 러시아 하바로스크 등지에서 박태문, 강명운, 국사성 등과 함께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3년 6월 1일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병사했다. 그의 유해는 니콜리스크 한인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위석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덕암 위석규 유제지 바로 위에 예쁜 펜션이 자리 잡고 있다.

 

 

저기 갈림길에서 고려인종왕비 공예태후를 만나러 장안사를 잠깐 들였다 다시 오련다.

 

 

장안사 갈라길 이정표!  

 

 

◎ 고려인종왕비 공예태후 (장흥 임씨)를 찾아서

 

 

목사고을 회주 옛터 관산

고려인종왕비 공예태후탄향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은 고려17대 인종임금이 “길이길이 흥하기를 바란다.” 라고 하면서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을 직접 작명하여 하사하면서 장흥부사(府使: 종3품직 벼슬아치)가 관할하는 큰 고을로 승격되었다. 천관산 아래 관산 당동마을은 고려 인종왕비 공예태후 임(任)씨의 친정이며, 고려 18대 의종임금, 19대 명종임금, 20대 신종임금 외가집이다.

 

 

정안사는공예태후 임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고려시대의 임호의 아들이 '임의' → 임의의 아들이 '임원후' → 임원후의 딸이 '공예태후' 이며 공예태후는 고려의 인종왕비다. 그런 그에게 아들 3명이 고려의 왕이였다고 한다.(의종, 명종, 신종)

 

공예태후 임씨는 인종의 후비이자, 의종·명종·신종의 모후이다. 본관은 정안이고,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의 딸이다. 1126년 이자겸이 난을 일으켜 그의 딸인 인종의 왕비들이 폐출된 것이다. 태후는 그해 6월 20일에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다. 그녀는 연덕궁주로 불리었고, 1127년 4월 11일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 5월 10일에 인종은 직접 연덕궁을 방문하여 그녀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1130년에는 둘째 아들인 대녕후 왕경을, 다음해 10월 17일에는 명종을 낳았다. 이후 원경국사 충희를, 1144년에 신종을 출산하고, 승경·덕녕·창락·영화 등 4명의 궁주를 낳았다.

 

인종은 공예태후의 고향인 장흥부를 지장흥부사로 승격시켰다.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를 왕태후로 존칭하고, 궁전을 후덕전이라고 하였으며 선경부를 두었다. 태후는 병이 진행되어 1183년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관산읍 연혁탑

 

천관산기

 

* 백두대간 호남정맥 끝자락에 6개 동천 44개 영봉과 36개 석대를 이룬 영산으로 고호(옛날에 부르기를)는 지제산이요 천풍산이다.

* 회주 상장  두 산성이 호위한 첩첩 쌓인 기암괴석이 천자의 면류관 형상을 이루고 천관보살이 살았다 하여 천관산이라 칭한다.
* 4군 2읍 3면의 중앙에 우뚝 솟아 정남진을 포옹하여 천관락토를 이루고 천년고찰 89사암이 있어 28 명현대사를 배출함이 금강산 다음이다. 
* 동에 정기 내려 고려인종(17대)왕비 공예태후 임씨를 당동에서 탄생시켰고 이태조  등극 때 불복산으로 흥양유배(현재 고흥) 겪으면서  실학대가 존재 위규백 선생을 방촌에서 탄생시켰다.
* 고려 의종왕(18대) 때 축조한  723m 정상의 봉수대는 통신수단을 상징하고 북으로 월출 무등으로 이어지며 남으론 다도해 풍경 너머 한라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천관정상 운해처럼 펼쳐진 5만여평의 억새는 은빛파도의 장관을 이룬다
* 수많은 명찰 고승들도 금강 묘향산을 돌아보고 천관산에 머물렀다
* 천관문학공원 문학비는 탑산사 일대에 펼쳐 있어 사랑의 돌탑과 함께 남도문학을 빛내고 있다.
* 호남의 5대 명산이자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한반도 최남단의 진산이다.

 

 

 

금수굴2코스와 금강굴3코스 방향으로 바로 가면 장천제로 간다. 장천재는 호남 4대 실학자 존재 위백규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 조선시대 호남 4대 실학자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를 찾아서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1727∼98)가 제자를 가르치던 장천재(長川齋)를 만난다.

위백규는 남쪽 후미진 땅에서 나고 자라 평생 장흥(長興) 땅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으면서 천문(天文), 지리, 율력(律曆), 복서(卜筮), 산수는 물론 온갖 장인의 재주까지 익혀 농촌계몽 활동을 하였고 사회개혁을 주창하였다.

장흥 존재 위백규는 순창(淳昌)의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1712~81), 고창(高敞)의 이재 황윤석(頤齋 黃胤錫:1729∼91), 화순의 규남 하백원(1781~1844)과 더불어 호남(湖南) 4천재 실학자(天才 實學者)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호남에는 나경적, 오달운, 이윤성 등 대표적인 실학자들이 많다.

 

 

 

 

 

 

 

이제 본격적인 천관산행을 시작하자

 

다시 돌아와서 양근암코스(1코스)로 향한다.

 

양근암 코스(1코스) 이정표

 

 

시인 위선환 문학지도

 

천관산 오르는 길에

위선환

 

천관산 오르는 길에는

이마가 서늘하리

그 이마 서늘해지면

하늘빛에 물들으리

놀빛 비낀 억새밭 자욱하고

억새잎들 부딪치며 서걱대는 소리

흐느끼리

그 밤에 등성이로 별들이 내려와서

별빛 한 망태기 주워 어깨에 둘러매고

남쪽 바다로 내려가는 하룻날은

날빛 든 물 바닥에 하늘 비쳐 있으리

나는 눈물 나리

억새 꽃들 풀풀 날아서 자꾸 쌓여서

어느새

내 어깨를 묻고 말리

 

 

천관산은 1998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신비의 영산이며 사방으로 뻗은 지형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이 독특한 산세를 형성한다. 천관산의 특징은 연대봉, 구정봉, 천주봉, 구룡봉, 환희대 등 30여개의 기암괴석의 초점경관과 연대봉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일출과 산 정상부에서 막힘없이 다도해와 월출산, 무등산은 물론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조망이 가능한 전경관이 뛰어난 산입니다.

 

 

 

천관산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위치한 높이 723m 산으로 옛날에는 지재산 또는 천풍산이라 했으나 지금은 천관산이라 하며 가끔은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고 하여 신산이라고도 하였다.

이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기암괴석이 빼어나고 억새가 일품이며 다도해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고려 초까지만 해도 숲이 울창하였고 천관사, 옥용사, 보현사 등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하나 전란 중 불타고 지금은 천관사, 탑산사, 장안사 등 3개의 사찰과 몇 개의 옛절터 그리고 석탑석불이 남아 있을 뿐이며 매년 10월에는 전국 규모의 억새제가 열리고 있다.

 

 

영월정 쉼터

 

 

양근암코스와 금수굴과 금강굴 코스 갈림길 - 최근에 1박2일 프로그램에 나온 이승기와 강호동 이수근 갈림길이라고도 한다.

 

1박2일 출연한 이승기 길과 강호동 이수근 길이 갈라진다. 강호동 이수근 길이 금강굴과 금수굴로 가는 조금 가파른 코스이고 ,이승기 길은 양근암코스로 가는 조금 쉬운 오름길이다. 나는 이승기길인 양근암 코스를 택해 오른다.

 

 

 

오름길을 조금 오르면 첫번째 조망터가 나온다. 모두들 이곳에서 천관산 환희대를 바라보며 추억 한장을 남긴다.

 

 

연대봉 2.2km 이정표를 지나고

 

가파른 오름길에 숨이 헐떡일 때 쯤 쉼터에서 대원들과 마시는막걸리 한잔은 산행의 행복 중에 행복이다.

강한 동질감과 동료로써 우정을 느낀다. 행복하다.

 

 

◎ 양근암 코스 기암괴석들의 향연

양근암 코스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이름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성으로 담아서 여기 올린다.

 

거대한 코끼리 같은 기암이다. 문바위다.

 

 

문바위

한쪽 귀은 없지만 코끼리 귀 안쪽 같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천문 같기도 하다. 이 기암을 문바위라고 한다.

 

 

거대한 기암이  앞에 나타나고 산꾼은 절로 탄성이 나온다.

 

 

마당바위!

물개가 저 멀리 남해바다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  

 

 

당당하고 귀품있는 소나무

 

 

잠시 마당바위 쉼터에서 대원들과 기념 한장

 

 

삐삐님과 한컷!

 

인증 한장 남기고

 

 

북쪽 방향으로  추억 한장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니 마치 선바위 같다. 천관산 선바위?

 

 

천관산 선바위와 저 멀리 환희대와 천주봉 그리고 대세봉을 배경으로 담았다.

 

 

뒤틀리고 휘어지고 갈라지고 오랜 비바람에 씻기어 마치 한마리 양처럼 보이는 기암

 

 

 

기암 괴석

 

기암괴석

 

 

기암괴석

 

 

 

 

 

기암괴석

 

 

봉황암

 

 

봉황암과 천주봉 그리고 대세봉

 

 

진리의 세계에서 깊은 참선에 들어간 스님처럼~ 

 

 

 

천관산의 금강굴 능선의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 위에서 부터 환희대-천주봉-대세봉-구정봉

 

 

동화나라님이 금수굴 능선과 금강굴 능선 천주봉과 대세봉을 배경으로 예쁜 추억 한장을 담아주신다. 감사하다.

 

 

 

 

기암괴석

 

 

기암괴석

 

 

기암괴석

 

 

기암괴석

 

 

책바위

 

 

 

 

 

양근암

등잔바위등을 올라 봉황암과의 갈림길 못미친 이곳에 높이 15척정도의 깍아세운 듯 남성을 닮은 큰 돌이 오른쪽 건너편 여성을 연상케하는 금수굴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니 자연의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양근암에 올라 섰다.

 

 

석고(石鼓)바위

바위 봉우리 맨 위에 있는 바위가 북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석고바위

 

 

할미바위

 

 

정원암이다.

 

 

 

 

 

 

대원들의 즐거운 순간을 담아본다. 슈가님

 

 

소라님

 

 

날씨가 청명했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남해 풍광이련만 오늘은 날씨가 협조를 안한다. 그래도 아쉬어 한장을 남긴다.

 

올라야할 연대봉

 

 

천관산 주 억새 능선을 담아보고

 

 

연대봉에서 환희대 주 능선을 담았다.

 

 

금강굴 능선의 천주봉과 대세봉의 위용

 

 

천관산에서 가장 하늘의 면류관으로 보이는 대표 기암들이다.

 

 

넉넉한 오름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어느새 연대봉이 저만치다.

 

 

드디어 연대봉에 올라서

 

 

천관산 연대봉

 

 

천관산 정상석 인증

 

 

환희대로 가는 억새길에서 대원들과 함께 

 

 

중간 조망터에서

 

 

잠시 풍광놀이 하다가 환희대로 향한다.

 

 

◎ 환희대(대장봉) 풍광놀이

 

환희대에 섰다.

 

환희대는 대장봉이라고도 한다.  만권의 책이 쌓여진 것 같다는 대장봉이다.

 

대원님들 추억을 담아주는 모습을 마루님이 잘도 잡았다.

 

나도 한장 남긴다.

 

함게한 대원님들과 

 

이렇게도 담고 

 

저렇게도 담는다.

 

 

환희대가 천관산 산행의 중심이다. 천관산 어느 방향에서 오르든 이곳으로 오른다. 이곳을 지나간다는 말이다. 우린 구룡봉과 탑산사로 간다.

 

 

 

진죽봉과 구룡봉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

 

 

마루님과 함께

 

 

대원님과도 함께

 

 

구룡봉으로 향해 간다.

 

 

 

◎ 진죽봉 풍광놀이 몇장

 

진죽봉

 

 

진북봉을 배경으로 몇장

 

 

 

 

 

◎ 구룡봉 암릉놀이 몇장

 

구룡봉 입구 안내판

 

 

 

구룡봉

 

아육왕탑 서쪽 정상에 있다. 돌사다리를 비스듬히 타고 올라가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면 정상이 아찔하다. 돌 위에 구덩이가 수십게 있는데 크기는 똑같지 아니하며 혹은 둥글게 패어 물이 고인 채 마르지 않고 흙은 반반하게 패어 초승달 같은 것도 있다. 깊은 밤 달 밝은 때는 골짜기의 숙무 짙은 안개가 대해를 이룬 가운데 만두나 석정이 점점이 드러나 보이는 풍치는 고요히 잠들어 있는 인간세상 밖에서 홀로 하늘위에 우뚝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별들이 옷자락에 가득한 듯 여겨지니 태산한봉의 놀이보다 더욱 쾌활 함에 잠길 수 있다.

 

 

 

이곳에서 구룡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잠시 구룡봉을 들러 온다.

 

 

 

 

 

◎ 아육왕탑

 

아육왕탑

 

아육왕탑은 ‘천관산기’, 《삼국유사》, 《석보상절》, 《월인석보》, 《지제지》 등에 나온다.
아육왕(아소카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병(舍兵)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 아사세왕((阿舍世王)이 세워 놓은 탑에 있는 사리를 모두 다 꺼내고 또 다른 일곱 탑에 있는 사리도 모두 다 내어 금은(金銀), 유리(琉璃), 파려(波瓈)로 8만 4천 통을 만들어 사리를 나누어 담고 또 금은 유리 파려로 8만 4천 개의 병(甁)을 만들어 그 사리를 통에 담고 또 무량한 백 천 개의 번당(幡幢)과 덮개를 만들었다 … 왕(아육왕)은 밤에 귀신들을 시켜서 칠보를 가루로 8만 4천 개의 보탑(寶塔)을 만들고 야사존자(耶舍尊者)에게 명하여 손가락을 펼쳐 8만 4천 개의 줄기에 광명의 빛을 발광케 하고 날랜 귀신을 시켜 한 광명의 빛줄기를 쫓아가서 그 빛이 다다르는 땅에 한날한시에 탑을 세우게 하니 … 너희들은 가서 준비만 옳게 하고 있으면 내가 아수라(阿修羅)를 시켜 월식(月食)을 일으키고 사천하(四天下)가 다 함께 북을 칠 것이니 그때 맞추어 세우도록 하여라 하시여 그 귀신들이 월식을 할 때 8만 4천 개의 탑을 모두 다 함께 세웠던 것이다 ….

그 탑이 진단국(震旦國(발해, 삼국)에 아직도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 전라도의 천관산(天冠山)과 강원도의 금강산(金剛山)에 이 탑이 있으며 신령하여 영험(靈驗)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아육왕이 이탑을 세운 해는 려王(려왕) 46년 무진(무辰年)으로서 기원전 833년이었다.

인도의 아소카왕(아육왕)은 인도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함으로써 마우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다.
아육왕은 아소카왕의 한국어 번역어이다.

 

 

아육왕탑의 의미를 잘 알지만 진시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내려오면서 올려다 본 아육왕탑 모습

 

 

 

연화동 서쪽 꼭대기에 있으니 거석이 겹쳐서 오층을 이루어 공중에 외로이 서 있다. 청람이 반쯤 거둘 때에 계곡 저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것이 으뜸인데 참으로 절관이다. 탑 아래쪽의 조그마한 석대는 가섭이 쉬던 돌이요. 그 동쪽 아래 석봉이 나즈막히 길게 연달아 있는 곳이 가섭봉이라 한다. 선조시대에 탑 상층 절반이 무너져 떨어졌다.

 

 

◎ 천관산 탑산사(한국 불교의 태동지이며 최초의 진시사리가 들어온 곳이다.) 

 

내가 처음 천관산 탑산사를 올랐을 땐 참으로 허름한 볼 품없는 절집이였다. 전쟁으로 소실된 뒤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모습이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젠 제법 절집다운 모습이다. 이제야 알았지만 천관산 탑신사에 천관보살을 모시고 있다. 팔만대장경에 의하면 천관보살이 많은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서 불법을 전했다고한다. 그 자리가 천관산 탑산사이다.

 

  

아름다운 천관산 탑신사 모습

 

 

이제 제법 절집다운 규모를 갖추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이다.

그런데 바로 장흥 천관산에 있는 탑산사도 적멸보궁이라는 것이다.
탑산사 왼쪽 위에 돌탑이 있는데 이 아육왕탑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만약 이곳에 정말 전설속의 아육왕탑에 진신사리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의 불교 역사가 바뀔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기원후 4~5세기경 삼국시대에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고 하며 지금까지 1600년의 역사라고 한다.

아육왕탑에서 진시사리가 나온다면 한국의 불교역사는 2100년을 뛰어 넘는다. 500년을 앞서간다.

 

 

탑산사는 한국불교 태동지이며 최초 적멸보궁, 부처님 진신사리가 들어온 곳이라고 한다.

 

 

탑산사에서 잠시 인증 몇장 담고

 

 

탑산사 대웅전 앞 정원은 넓지 않지만 담너머 바라보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넉넉한 대덕 들녁과 남해 바다와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완도 관내 섬들이 연출하는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풍광속에 가슴 저 밑에서 저려오는 아련함을 느낀다. 일년 내내 농사일에 뼈가 빠지고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고달픔을 어디에서 위로 받았을 수 있었을까? 

 

 

고려시대 불교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고 온 백성이 부처라는 통치 이념으로 백성을 귀하게 여겼지만 이조시대 유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왕권 중심의 통치이념에서 엄격한 계급사회를 만들고 천민들의 애환을 나몰라라 하였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성군이 있었을지라도 하급의 지방으로 내려오면 지방 토속 양반 탐관오리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백성들의 피를 빨아 자기 배를 채우는 극악무도한 짓을 얼마나 흔하게 저질렀던가? 하물며 임금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암울한 시기의 백성들은 얼마나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감옥에 쳐여졌던가?  그들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절집이였다. 절집에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의 고달픈 삶을 지탱했는지 모른다.

 

 

 

탑산사 대웅전

 

 

탑산사에는 천관보살이 있다. 천관산과 천관보살은 어떤 관계일까? 

 

 

탑산사 내부

 

화엄 80권이 탑산사로 들어왔는데 화엄 80권에 보살주처품에 천관보살 이야기가 나오고 해인사에 가면 팔만대장경에 천관보살 경전이 나온다.
이 책이 화엄 80권인데 그중에 화엄경 보살주처품 32권에 보면 동남방에 지제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천관보살이 제자 1천을 데리고 법을 설한 산이다. 라고 나온다. 이 기록에 의하면 천관보살이 천관산에 머물러서 제자들에게 법을 연설한 산이다.

 

 

7세기에 번역된 80화엄에 지제산(천관산)과 천관보살이 언급되어 있다.

 

 

번역본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동남방에 지제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이 거기 있으며 지금 천관보살이 권속 1천보살과 함께 가운데 있으며 법을 연설하느니라. 라고 나온다.

 

 

천관보살이 천관산에 있다고 해서 천관산이라고 하고 강원도에도 문수보살이 있어서 문수산이라고 기록이 나온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대수긴나라왕소문경이 나오는데,  그때에 천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고 오른 어깨를 들어내며 오른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당과 개성으로 찬탄하였다.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으로 "우리 인간이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 하는 말씀의 경전이다.

 

 

그때에 미륵보살, 천관보살, 대덕아아난다등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리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경 이름은 대수긴나라왕소문경이라 하고 또 선설불사의법품이라고도 한다. 그대들은 이런 것으로 받들어 지녀라.

 

 

탑신사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인 천관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사찰이며 존재 위백규의 [지제지]에 천관산 89개 암자 중 중심 역할을 한곳으로, 탑신사의 내용은 [석보상절] [동문선]에 기록되어 있으며 부처님 사리를 모신 아육왕탑이 있는 한국불교가 태동한 성지이자 남방불교의 전래지로 알려져 있다.

서기 800년(신라 예장왕 1년)에 통영화상이 창건하여 아육왕의 연기설화와 관련된 탑 동쪽에 사잘을 세우고 이에 연유하여 탑산사라 이름 하였다고 [동문선]에 나타나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기로 추정되는 탑산사 석등과 금동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탑신사 대웅전에 있는 천관보살 철불상이다. 천관산 탑신사 천관보살 천불상은 주조로 만들었다.

 

 

천관보살 철불상의 뒤에는 주조한 시기가 나와 있다.
명나라 영락 6년(1407) 7월 20일 이다. 그럼 올해가 2022년 이니까 주조한지 615년이 지났다.

 

 

탑산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 천관보살이 안치되어 있있다.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치커리

 

 

현재 대한민국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이다.

그런데 바로 장흥 천관산에 있는 탑산사도 적멸보궁이라는 것이다.
탑산사 왼쪽 위에 돌탑이 있는데 이 아육왕탑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탑산사에는 범종각이 없다. 탑산사 범종은 보물로 지정되어 해남 대흥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산사 범종

 

 

 ‘계사십월일낙산면, 탑산사화향도상현지, 장목어비호장주(?)중산촌동원, 금종입중팔십근인 (癸巳十月日落山面, 塔山寺火香徒上玄智, 長木於非戶長住(?)仲山寸同愿, 金鍾入重捌拾斤印)’로 읽혀진다.

 

 ‘만력이십일년십이월일내▨변총, 통주성어탑산사종취래파, 조▨▨종▨동철수합입납, 반본사상철물대시주(萬曆二十一年十二月日乃▨変銃, 筒鑄成於塔山寺鍾取來破, 造▨▨鍾▨銅鐵收合入納, 返本寺上鐵物大施主)’ 

 

 

 

 

어쩌면 아주 오랫 전에 이곳으로 어머님도 기도하러 오셨을까? 대덕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절이니 그럴 수 있겠다 쉽다.

 

 

저 아래 대덕에서 부터 걸어 올라오면 하루는 걸렸을 험한 길이였을텐데 어머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러 오셨을 것이다. 

 

 

 

어머님의 숨결을 찾아 먼 하늘을 본다. 

 

 

천관산 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탑산사는 깊은 기도처이기도 하다. 남녁과 남해 섬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져주는 기도처였을 것이다.  수수하고 단아한 절이다. 고달픈 백성들의 절규를 들어주는 절다운 절이다. 이 아름다운 순수한 절을 맘에 세기면서 탑산사를 떠난다.

 

 

  

이제 탑산사와 이별하고 하산한다. 탑산사주차장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

 

 

깊은 산죽 터널을 지나고

 

 

천관산 계곡마다 싱싱히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

동백나무 숲

 

 

◎ 반야굴

 

 

반야굴

 

 

 

반야굴 설명문

 

 

등산로와 갈림길 이정표

 

 

탑산사,  연대봉 닭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갈려져 있다.

 

탑산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거북바위로 하여 연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이다.

 

 

문탑

 

 

천관산 문학공원으로 내려 간다.

 

 

천관산 문학공원에 세워진 돌탑과 시

 

 

천관산 문학공원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천관산 문학공원에 대하여는 별도로 내용을 담을 생각이다.

 

 

오늘 천관산 산행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나고 기암괴석과 한국 불교 태동인 탑산사를 만나는 인문학 산행이였다. 하산길에서 만나는 문학길은 또 다른 의미이다. 날씨가 흐려 남해 풍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여러 역사적 인물을 만나고 탑산사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어 행복한 산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