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매불망 추자도를 그리며

제주 올레길 중 추자도에는 올레길 18-1과 18-2 코스가 있다. 추자도 섬트레킹이다. 추자도를 가 볼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가 보지 못했다. 늘 환상의 섬으로 남아 있는 추자도를 올 5월 어린이날 연휴를 기해 가 보고자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과 함께한다.

새벽 3시부터 부산을 떨고 준비하여 4시에 진도 팽목항으로 출발한다. 평소 같으면 깊은 잠 속에 꿈나라 여행을 하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그렇게도 가고픈 추자도를 가는 날이라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설레고 정신이 초롱 초롱하다.

새벽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지듯 달린 버스가 목포 하구언을 지나 진도 울돌목을 지날 때쯤 몽롱한 잠 속에 잠깐 빠졌다 싶더니 이내 팽목항 여객선터미널이란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침 공기가 상큼하다. 해안가 특유의 갯내음과 함께 신선한 공기가 허파 깊숙이 파고든다. 짜릿하다. 보약을 먹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여행이란 으레 그런 것처럼 기분 자체가 어느 정도 업되고, 보는 것마다 들떠서 평소보다 서너 배는 더 과장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추자도 출발 배시간은 9시란다. 광주에서 무척이나 일찍 출발했다. 5월 어린이날 연휴여서 인지 팽목항에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한 시간은 족히 되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팽목항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 "잊지 않겠다"는 노란 리본이 외롭게 펄럭이고 있어 마음 한켠 안타깝고 무겁고 한스러운 마음이 밀려든다. 우리는 그동안 잘하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팽목항은 지난번 서해랑길을 걸을 때 이곳을 지나갔기에 정이든 곳이기도 하다.

산타모니카 여객선이 붉은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진도 팽목항을 출발하여 환상의 섬 추자도로 향한다.

사실 이런 연휴에 해외로 가니 어디로 가니 하며 사람들은 수선을 떨지만, 나는 한 번도 이런 연휴 여행 대열에 끼지 못했다. 용케도 이번에는 만사 제치고 큰맘 먹고 용감하게 혼자서 결정을 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 따지다가 정녕 좋은 시절 다 가고 덩그러니 외롭게 찌들어버린 혼자만 남게 생겼다. 이제는 바로 떠나자. 무조건 떠나자. 혼자라도 좋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떠나자. 그래봤자 좋은 시절 10년 안팎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무엇이 염려된가. 떠난 만큼 남는다. 먼 훗날 소풍 끝나는 날 "참 즐거웠다." 하고 훌쩍 떠나려면 지금 떠나야 한다. 무조건 말이다. 이번에도 잘했다. 스스로 토닥토닥 위로하고 있는데

어이 형님 뭔 생각을 그리 깊이 하요.
옛 예인 생각하고 있소.
여기 막걸리 한잔 하소.

갑판 위에서 멍하니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잠시 망중한 넋을 잃고 있는데 지나가던 산우님이 너스레를 떤다.
먼 아침부터 막걸리단가?
막걸리가 최고지. 어디 한잔해 볼까?

아침부터 막걸리 한잔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설렌 마음이 아침부터 막걸리 한잔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여행이란 것이 어벌쩡 하고 드라마틱한 부분만 이야기하기에 무척 대단한 일만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평소보다 가난하고 찌든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다. 여행기간 동안 일어나고 만나는 모든 순간을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가 여행의 풍성함을 좌지 우지 한다. 나 스스로 이런저런 추억을 만들면서 즐겁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이번 추자도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냥 움직이고, 그냥 숨 쉬면서 편하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아침에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추자도가 성큼 나타난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한 추자대교가 인상적이다. 상추자도 추자항에 닿는다. 섬마을 지붕이 칼라풀하다. 조용하고 아늑한 추자도가 정겹게 반긴다. 제주해협 한가운데서 억겁년 세월 동안 묵묵히 바다를 지켜 온 역사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벅차다. 설렌다. 드디어 추자도 땅에 내린다. 항구는 소박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박하다. 억겁년 세월에 비해 무척이나 소박하다. 읍단위 도회지 냄새가 난다. 하기야 이 섬에 그 오랜 세월 동안 섬사람들의 생활은 손바닥만 한 논밭 때기에서 나는 농작물로 연명을 했을 것이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나 돌미역 등 해변가 해초를 따서 말려 육지에 팔아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했을 것이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추자도 섬처녀는 육지로 시집가는 것이 평생소원이고 어쩌다 운이 좋아 육지배를 타면 전남 강진 남포리나 목리항에 도달했고, 육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시절, 추자도 사람들은 고기잡이로 돈을 벌면 강진 남포로 이주하여 육지 사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이 차즘 나아지고 낚시를 취미로 하는 낚시꾼들이 추자도를 찾을 때부터 추자도는 낚시의 천국이 되어 세상에 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추자도는 고려 이전까지는 탐라국 소속이었다. 고려시대에는 탐라현에 속하고 조선시대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했다가 1895년에 전남 완도에 귀속되어 오다 1945년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에 편입되었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이 되었다. 제주시를 지나는 제주올레길 18코스 지선으로 제주올레길18-1, 18-2 코스를 새로 만들어 추자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자도 풍광을 느끼면서 걸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제 트레킹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추자도를 찾는다.

추자도 올레길 트레킹은 상추자도 대서리에서 시작하여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18-1 코스를 마무리하고 다시 18-2 코스를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시작하여 상추자도 대서리까지 원점회귀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추자도의 하이라이트 나바론 절벽은 18-1 코스에서 별도로 선택코스를 지정하여 놓았다. 추자도 제주올레길 18-1, 18-2 코스를 모두 걷고자 한다면 18-1코스를 따라 걷고 다음날 18-2 코스를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나바론절벽길을 반드시 걷길 강추한다.

우리는 4일 오전에 상추자도를 걷고 오후에는 봉고 투어로 하추자도 중요 지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5일 다시 하추자도를 둘러보고 6일 아침 일찍 제주올레길 18-1 구간 중 나바론절벽(선택구간)을 걷느라고 못 걸었던 원래 부분을 다시 걷고, 군내 버스로 이동하여 10시 30분 신양항에서 배로 완도로 출발하며 아름다운 추자도를 떠났다.
◎ 제주올레길 18-1 코스 (추자도)

제주올레 18-1코스 : 제주올레안내소 - 추자면사무소 - 최영장군 사당 - 봉골레산 입구 - 봉골레산 정상 - 추자천주교성당 - 대서리 마을길 - 순효각 입구 - 박 씨 처사각 - (선택구간 : 후포해안 - 용둠벙 전망대 - 다무래미 - 나발론하늘길) - 등대전망대 - 추자대교 - 추자대교 삼거리 - 참굴비상 - 추자정수장 - 돈대산 정상 - 추석산 소원길 - 엄바위장승 - 예초리 포구 - 신대산 전망대 - 황경한이 묘 - 몽돌해안 - 신양항
이제 신비의 섬 추자도 제주 올레길 18-1 코스를 걸어보자.
4일에는 상추자도를 걷고 5일에는 하추자도를 각기 걸었지만 여기 정리는 제주올레길 18-1 코스를 따라 정리하기로 한다.
◎ 제주올레길 안내소(추자지원센터) - 추자면사무소 - 최영장군 사당 - 봉골레산 정상 - 후포 해안 - 용둠벙 전망대
◇ 제주올레길 안내소 및 제주올레길18-1코스 시작점

제주올레안내소/제주올레길 18-1 시작점

제주올레길 18-1 코스 시작점에서 출발한다.

탐방객쉼터 추자도여행자센터

빙삭빙삭? 무슨 뜻일까? 방긋 방긋이란 제주 방언이랍니다.
◇ 추자면사무소

추자면사무소를 지나

◇ 대서리
제주특별자치도 최북단 추자면 면사무소 소재지로 자연포구 마을이다.
지금은 최영장군 사당이 자리 잡고 있지만, 조선시대 기록에 이미 여기에 토당이 있어 후풍 하던 뱃사람들이 바람이 잦아들기를 이 당에 빌어 온 것으로 전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2월이면 최영장군의 공덕을 기리고 풍어만선과 안전조업을 기원하는 사당제가 열린다. '영암추자도지도'에는 대작지로 표기되어 있고, 큰작지로 불렸다.
대서리 큰산에는 봉학대가 있으며, 외작지에 있다고 해서 외년대, 웬대라고 부르던 곳이 지금의 후포 해안이다.
이곳에는 나바론(독산 또는 큰산)절벽길이 있으며 지금의 나바론하늘길의 시작점이다.
대서리 서쪽 끝에는 다무래미가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직구낙조가 장관이다.
상추자도 입구 등대산 공원에 오르면 추자군도의 유무인도와 전남 신안군, 해남군, 완도군의 섬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대서리 경로당

대서리 마을 앞 문화광장

단체 인증하고

서쪽에서 가장 큰 마을 대서리 마을 표지석을 지나

최영장군 사당을 향하여

골목길을 지나
◇ 최영장군 사당

최영장군 사당으로 향한다.
최영장군 사당은 추자도 주민이 고려 후기 명장이었던 최영(1316~1388)을 기리는 곳이다. 사당의 명칭은 최영대장신사이다. 사당의 초기모습은 1872년에 제작된 '영암추자도 지도'에 등장한다. 사당은 1935년 2월 25일에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복원된 후 여러 차례 고친 것이다. 사당 입구 남동쪽에는 '최영사당금표' 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사당 안에는 영정과 '조국군통대장 최영장군' 이라고 적힌 위패가 있다.

공민왕 21년(1372)에 묵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제주 목사를 살해하는 등 저항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에게 군대를 이끌고 가서 '묵호의 난'을 진압하게 하였다. 최영은 군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오가던 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추자도로 대피하였다.

이때 최영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추자도 주민에게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것이 추자도 주민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추자도 주민은 최영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사당을 지었다. 해마다 추자면 대서리 어촌계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며 '최영 장군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쌍룡사 입구를 지나

봉골레산 능선 길로 오르며 확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다무래미와 직구도를 배경을 한 장
◇ 무사안녕과 풍어만선 기원제 제단

이곳 기꺼산은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오후에 걸궁 풍물놀이 패들이 모여 동해, 서해, 남해 용왕님께 마을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만선을 기원하며 기원제를 지내는 곳이다.

추자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놀이 흔적이다.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섬사람들은 늘 그 삶이 고달프고 위험하기에 인간의 능력보다 더 높은 어떤 신들께 안전기원을 드리고 무사귀환과 만선을 기원한다.

봉골레산을 향하여

평탄한 봉골레산 능선길을 걷다 보면 확 트인 조망터가 나온다.

우리가 걸어야 할 용둠벙전망대와 다무래미 풍광
◇ 봉골레산

봉골레산 정상 팔각정 쉼터

봉골레산 정상석

봉골레산에서 바라본 추자도항/ 하늘은 맑고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추자항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다.

봉골레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쌍룡사 전경

봉골레 정상에서 하산하다 보면 마을 뒤쪽 큰길을 만나고 추자도 성당 쪽으로 좌틀하여 올레길은 이어진다. 곧장 가는 길은 나바론하늘길로 가는 선택구간이다.
◇ 제주올레길 18-1코스와 선택구간(나바론절벽길) 갈림길

현재 위치에서 원래 제주올레 18-1코스 순방향 정코스 올레길은 이곳에서 추자 성당을 거쳐 대서마을을 지나 추자처사각을 거쳐 추자등대로 향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구간인 나바론 절벽길로 가기로 한다.

제주올레길 18-1코스 순방향 정코스 가는 길/ 추자천주교성당을 지나 대서마을 안길로 접어든다. 정상적인 순방향 제주올레길 18-1코스를 걷고자 한 사람은 이곳으로 지나가야 한다.

제주올레길 18-1코스 선택구간(나바론 절벽길)으로 가면서 바라본 독산 또는 큰산. 저 산 너머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나바론 절벽기암이 기다리고 있다.

용둠벙 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후포 해안을 배경으로 기념 한 장
◎ 용둠벙 전망대 - 다무래미 - 나바론하늘길 - 등대전망대 - 추자대교 - 추자대교 삼거리

용둠벙과 용둠벙 전망대가 있는 다무래미

용둠벙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바론 기암절벽과 일출. 아마 이 장면이 추자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일 것이다.(이 사진은 이재영 산행이사님이 5일 아침 일찍 다무래미를 올라 찍은 사진이다.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다무래미를 뒤로 하고 기념 한 장 남기고 나바론하늘길을 오른다.

나바론 하늘길의 기암절벽에서/ 나바론 하늘길을 오르려면 약간의 급경사 계단길을 오른다.

나바론하늘길 기암절벽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말머리 바위

나바론 하늘길을 오르면서 돌아본 아름다운 풍광

신이 있어서 이토록 아름다운 걸작을 만들었을까? 억겁년 세월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작을 창조했을까? 정말로 무서운 낭떠러지 나바론 하늘길 기암절벽 풍광

나바론하늘길 오르면서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고

나바론하늘길의 기암절벽 풍광

나바론하늘길 정상인 팔각정 쉼터에서

나바론하늘길 정상에서 바라본 상추자도 추자항 대서리 풍광과 바다 가운데 도란도란 서 있는 도서들

나바론하늘길 정상에서 바라본 영흥리와 저 너머 하추자도 풍광

이제 등대전망대로 가는 나바론하늘길

가는 곳마다 탄성이요, 보는 것마다 감탄이며, 걸음마다 절경이니, 이 추자도를 어찌해야 하오리까?

등대전망대로 가는 아름다운 암릉길

추자도 참굴비 조형물을 지나서

등대전망대로 향한다.

등대전망대 가는 길목의 기암들

나바론하늘길 기암 절벽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자.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다운 추자도 풍광/ 저기 끝에는 다무래미와 직구도

등대전망대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하추자도와 섬생이섬 그리고 청도와 수덕도(사자섬)가 어우러져 연출한 풍광은 환상이다.

통신시설보호 철조망을 지나서/ 아마 이곳쯤에서 박 씨 처사각을 지나 오른 제주올레길 18-1 순방향 정코스 길이 합쳐지는 곳일 것 같다.

등대전망대로 향한다.

등대전망대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추자대교와 하추자도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추자항의 영흥리와 대서리 풍광

파로스 등대 모형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시로 소스트라투스가 건설한 3단으로 이루어진 높이 135m 등대로 대부분 대리암으로 되어 있었으며, 맨 밑단은 4각 모양, 가운뎃단은 8각 모양, 맨 윗단은 원통 모양이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 오르면 반사랜즈에 비친 불빛이 40여 km 밖에서고 보였다고 하며,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세웠는지,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지펴 비추었는지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등대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추자도 등대에 대하여 설명하는 김명수 대장님

이제 추자대교를 향해 하산길

돌아본 추자도 등대

이제 올레길은 추자대교를 향해 간다.

돌아본 추자 등대

추자대교로 향하는 올레길은 나무데크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숲길은 건강하고

소나무 숲길을 지나

추지도대교가 보이는 울레길을 따라 하산한다.

추자도대교 팔각정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추자대교를 지나서 하추자도를 향해간다.
잠깐!
여기까지가 4일 첫날 걸었던 상추자도 제주올레길 18-1 코스이다.
5일 둘째 날 걸은 하추자도 제주올레길 18-1는 선양항에서부터 이곳까지 역방향으로 걸었다. 여기 정리한 내용은 18-1코스의 역방향이다.
◎ 선양항 - 모진이 몽돌 해변 - 황경한이 묘 - 신대산전망대 - 눈물의 십자가

신양항 대합실 앞 광장에 있는 18-2 코스 시작점이면서 18-1 코스 종점에서 기념 한 장 담고 18-1 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오전부터 내린 비로 종일 우중 트레킹이다.

모진이 몽돌해변을 향해 출발

모진이 몽돌 해변 방향으로 꺾여서 야생 무꽃이 아름답게 핀 들판을 지난다.
◇ 모진이 해변 무꽃

무꽃이 아름다운 모진이 해안 풍광

무꽃 밭을 지나고

모진이 몽돌 해변 무꽃밭 풍광

이 아름다운 풍광을 여심이 가만둘리가 없지?

모진이 몽돌 해변 언덕에는 무꽃이 참으로 아름답게 피었다. 신양1리 마을이다.

신양1리 마을 언덕배기를 걸어 이곳 고개를 넘으면 조선시대 신유박해로 귀양살이를 한 슬픈 사연이 기다리고 있다.
◇ 황경한의 묘

◇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 있는 곳이다. 황사영은 1775년 유명한 남인가문에서 태어나 1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특하였다. 그러나 1790년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인 명리를 버리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충북 배론에 피신하여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썼다. 이 백서를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체포되고,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이윤해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 관노로, 그리고 두 살 된 아들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난주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신자 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 때인 1790년 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젖내 나는 어린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한다. 제주 대정현 관노로 유배된 그녀는 38년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서울 할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38년에 선종하여 대정성지에 묻혀 있다.

갯바위에 놓인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지금의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 씨와 오 씨가 결혼하지 아니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는 이곳에 묻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보이는 바다로 튀어나온 바위가 바로 두 살 아기가 버려져 울던 장소이다. 지금 제주교구에서는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 황경한의 눈물
황경한은 조선 순조 때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시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과 정난주(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 황사영은 1790년 약관 16세 나이로 사마시에 진사로 급제한 인재로서 당시 명문가문인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하였고 신유사옥 때 천주교도의 핵심 주모자로 지목되어 1801년 11월 5일 서소문 밖 사람들이 오가는 저잣거리에서 대역부도죄를 저지른 중죄인으로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는 제주 대정현의 관노로 유배되어 당시 2살이던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되어 강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가던 중 추자도 관리에게 아들을 인계하면 죽임을 당하리라 믿어 뱃사람과 호송관리를 꽤어 아들의 이름과 내력을 적은 헝겊을 아기의 옷에 붙여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 바위에 내리고 하늘이 보살펴 주길 바랐다.
다행히 소를 방목하던 하추자도 예초리 주민인 오 씨 부인이 울고 있는 아이를 거두어 성장시켜 황 씨가 없던 추자도에서 창원 황 씨 입도조가 된다.
정난주는 제주에서 관노로 37년간 길고 긴 인욕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하다 1838년 2월 28일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하늘나라로 소천했으며, 아들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이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써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감동적이고 애틋한 사연을 새롭게 열리는 추자 올레길과 함께 단장하여 지나가는 길손에게 잔잔한 감흥을 불어넣고 있다.

어느 이름 모를 해안가를 바라보며 신대산전망대로 향한다.

신대산전망대로 향하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여 해안가를 지나 신대산전망대로 향한다.

황경한의 묘를 지나 신대산전망대로 걸으면서 돌아본 뒤안길 신록은 울창하고 바닷바람이 시원한 트레킹 길은 이국적인 풍광이다.

이름 모를 해안가 풍광

화장실

무꽃이 곱게 핀 해안

신대산전망대 고개
◇ 눈물의 십자가

이곳이 신유박해 때 "황사영 백서"를 쓴 황사영의 부인이자 남인의 거장 정약현의 딸인 정난주가 2살짜리 갓난아기 황경한을 바위 위에 놓고 제주 대정현 관노로 유배를 떠난 곳이다. 저기 아무 물정 모르고 울고 있는 저 젖 띠기를 버리고 가는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나님이시어 당신을 믿나니, 저 어린것을 보살펴 주소서! 간절히 기도 후 이곳을 떠난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만경창파 일엽편주 망망대해 유배길에서 어미와 새끼의 생이별은 사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아프고 기막힌 사연이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 원통하도다.
아~ 하늘이여 인륜의 도를 끓는 저런 비정한 일들이 이 땅 조선에서 일어났으니, 왕권은 무엇이며, 백성은 어떤 존재였는가? 왕권과 종교가 부딪칠 때 왜 왕권은 저리도 모질게 백성을 짓눌렀는지? 새로운 사상이든 종교든 시대에 맞게 받아들이면서 백성이 잘 살도록 통치하는 새로운 왕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을까?
역사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백성의 안녕과 풍요는 안중에 없고 지 배 채우는데만 정신이 없는 통치자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이니, 살아있는 백성만이 역사를 바꾸고, 행동하는 백성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신대산 전망터

신대산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안 풍광/ 해안절벽에 선명한 구멍은 일제가 파놓은 것으로 군수물저장소였다.
◎ 예초리포구 - 예초리 엄바위장승 - 추석산 소원길 - 돈대산 정상 - 추자정수장 - 참굴비상

다시 돌아와 신대산전망대 고개에서 이제 예초리 기정길을 걷는다.

해안을 끼고 걷는 이 구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아늑한 예초리 가는 해안길

예초리로 가는 아름다운 해안길

예초리 마을로 들어서면 추자도 젓갈 통이 즐비하다. 이곳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예초리 마을 안 쉼터를 지나고

예초리 마을 앞을 지나

예초리 포구를 지나 차도를 타고 곧장 걷는다.

예초리 엄바위

◇ 엄바위 장승(억발장사)
옛날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있었다. 엄바위 아래 바닷가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 개가 있었는데 이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워 넘어 죽었다. 그래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마을 누군가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깎아 세웠으며 예초리에 해마다 걸궁을 할 때면 이 엄바위 옆에 와서 한마당 놀고 소원을 빈다.

◇ 예초리
예초리는 추자도의 동북단에 위치한 어촌마을로 마을 어귀에는 수호신인 엄바위와 억발장사(엄바위장승)가 있다.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부인 정남주가 두 살짜리 아들을 안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아들을 예초리 물생이 끝 바위에 두고 떠났다.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마을 어부 오 씨가 거두워 키웠다. 그 아이가 황경한으로 예초리 황 씨의 입도조이고, 현재 예초리 산 12번지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김수한 추기경이 다녀가기도 한 곳으로 천주교 성지순례 111코스로 지정되어 매년 성지순례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쪽 우두섬 해돋이 광경 '우두일출'이 장관이다. 신대작지 푸른 바다에는 물고기 떼가 춤을 추며 놀고 있는 듯한 '신대어유'고 절경을 이룬다. 추석산(큰산)에는 소원길(1.2km)이 조성되어 있고, 과거 독(돌) 무덤에서 당목재로 가다 보면 해안절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절경길 끝인 "물생이 끝"이 나오게 된다. 올레 18-1코스를 찾는 이들에게는 걷기 좋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예초리는 추자 어민항일운동 1차 발상지이다.

버스가 다니는 1114번 지방도로와 헤어져 이제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샛길로 오른다.

학교 가는 샛길로 가는 오름길을 오른다.

긴 오름길을 지나서 울창한 추석산 숲길로 접어든다.

추석산 일제 진지 동굴로 가는 가림길이 있는 곳을 지나

추석산 일제 진지 동굴
아픈 역사 현장, 일제동굴 진지
일제 강점기 본토사수를 위해 옥쇄작전(결-7호 작전)을 감행하려던 일본군들의 지휘본부용으로 구축한 진지동굴이다. 형태는 'ㄷ'(말굽) 형으로 출입구는 2곳이며, 22.1m, 폭은 1.5m ~ 2m, 천정 높이는 2.1m~2.6m이다. 굴의 모양을 본떠 일명 '칠자굴'로 불린다.
일제 침략상의 실상을 보여주는 전쟁 유적이자 일제 강점기 말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픔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제 동굴 진지는 이곳에서 200m 오름길이다.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간다. 대신 자료화면으로 대신한다. 시간이 가능한 사람은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꼭 들려보길 바란다.

다시 만난 1114번 지방도로

올레길 18-1 코스 순방향으로 걷는다면, 추석산 소원길이 시작되는 점이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걸어서 소원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안내문을 읽는다.
◇ 추석산 소원길
추석산(155m)은 예초리와 신양리 경계지역에 있으며 옛날 마을주민들이 추석날에 명절 음식을 싸들고 산에 올라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고 하여 추석산이라 불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추석산 능선을 따라 탐방로인 소원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추자도 부속도서와 전라남도의 보길도, 소안도, 청산도 등 다도해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추석산 소원길 입구에서 100m 정도 걷다 보면 일제 감점기 때 일본군이 본토 사수를 위해 파 놓은 'ㄷ'자형의 진지 동굴을 볼 수 있는데 마을주민들은 '7 자굴'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주올레길 18-1코스(역방향)는 예초리에서 돈대산 해맞이 길로 향한다.

긴 오름길을 오르면

통신탑을 지나고

돈대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른다.

드디어 돈대산 정상 정자에 올라

섬, 바다, 사람이 동화되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섬 추자도
정말이지 추자도는 바다와 섬 그리고 추자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화 속의 섬이다.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순박하니 그 어떤 곳보다 사람 냄새나는 곳이다.
추자십경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면 차분이 추자십경을 중심으로 한가한 낭만의 추자여행을 하고 싶다. 이번에는 제주올레길을 걷느라고 2박 3일이지만 걸음이 바쁘다.

돈대산(164m) 정상석

돈대산 정상 제주올레길 스탬프 인증처에서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신양항 풍광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추자도 동남쪽 대왕산 방향 풍광.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묵리와 섬생이섬이 아름답게 조망되고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추자도 동남쪽 방향의 대왕산과 바닷 가운데 청도와 수덕도의 아름다운 풍광

돈대산 하산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하산길에 만난 산불감시 초소

하산길에 만난 조망터에서 바라본 상추자도와 추자항 앞에 수령섬, 염섬, 예도 등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조망된다.

대창제 돈대산길림길에서 순방향으로 오른 사람들은 돈대산 방향으로 오르고 우리는 역방향이어서 반대로 내려간다.

대창제 돈대산길림길 순방향 표시 앞에서

대나무 숲을 지나고

비가 내린 후 숲은 생기가 넘쳐흐른다. 정말이지 울창한 숲은 열대림을 방불케 한다.

추자 정수장을 향해 울창한 숲길을 지난다.

추자 정수장은 저수지에 두꺼운 비닐을 깔아 물이 새는 것을 막고 있다. 얼마나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하면 저리 하였을까?

추자 정수장과 앞으로 걸어갈 해안길

차가 다니는 오르막 길을 만나고

추자정수장 앞을 지나

차가 다니는 오르막 길을 벗어나 잠시 숲길로 들어서고 오르막 길을 따라 줄곧 숲길을 걷는다.

차도인 오르막길 옆을 따라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은박길을 걷는다.

이제 저기 숲사이로 추자대교가 보이고

이제 참굴비상이 있는 곳에서 18-1코스 역방향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나는 이곳에서부터 신양항까지 구간은 제주올레길 18-1코스의 역방향으로 걸었다. 혹여 제주올레길 18-1코스를 순방향으로 걷고자 한 사람은 참굴비상을 지나 이곳으로 진입하여야 한다.

참굴비상을 배경으로 기념 한 장 남기고

참굴비상을 지나 순방향 화살표

금빛 조기 한점
오랜만에 고향에 온 아들 앞에
어머니 참굴비 한 마리 밥상에 내놓으셨네
내 어릴 적 캄캄 새벽 바다 길 떠나는 아버지에게
금빛 조기 한 점 구워 놓으셨듯이
법성포 칠산바다 흑산도까지 조기 잡이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처마밑에 대롱대롱 한 두름 꿰어
추자섬 북서풍에 시들시들 말리던 그것
자르르 베지근한 그 감칠맛 오래도록 입안 감돌아
갔다 오마 기별 알린 배가 떠나고
다시 어머니 그 늙은 손에 굴비 한 마리 닿을 때까지
그 자르르 입안 터지던 맛 떠나지 않았네
아마도 사랑도 그러하리
그대 마음 동걸 같은,
말하지 않고도 단 한 점으로 전해지는 바로 그러한 것
웃는 땅 참굴비 축제마당에서 만나는 저 싱그런 살빛,
내 어릴 적 바닷길 떠나던 날의 어머니 마음이네
허영선
◎ 제주올레길 18-1 코스를 마무리하면서
첫날은 올레길 18-1코스 선택구간 나바론하늘길을 좋은 날씨에 걸었고 둘째 날 18-1 하추자도 나머지구간은 역방향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자도 풍광을 여기 다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름다운 추자도 풍광을 천장정도 넘게 담았지만 여기 중요한 곳만 골라 제주올레길 18-1 코스를 소개하는 의미를 담아 정리하였다. 마지막 날 걸은 추자도 18-1코스 순방향 대서리와 영흥리 마을 안 길을 걷는 구간은 제주둘레길 18-1코스 추가로 정리한다.
◎ 제주들레길 18-1코스 추가
제주올레길 18-1 코스 중 선택구간인 나바론하늘길을 걷는 바람에 원래 순방향 18-1코스 중 빠진 부분은 6일 날 아침에 걸었다. 그 내용을 여기 정리한다.

제주올레 18-1코스 현 위치 선택구간(나바론하늘길) 갈림길에서 파란 선을 따라 순방향 정코스를 걷는다.

추자성당 건물 옆으로 돌아

추자성당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성모 마리아 님 알현하고

기념한 장

대사리 마을 안길로 접어든다.

카페 Dio 가 눈에 들어온다. 십자가 탑이 눈길을 끌고 집안 안에 성모 마리아상이 보여서이다. 이 카페는 보통 카페가 아니고 어딘지 성스럽고 고귀한 카페 같다. 이른 아침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으로는 성스러운 곳인 것 같다.

조금 안 길을 내려오면 공터가 있고 공터에 있는 추자도젓갈통이 인상적이다.

마을 안길에서 바라본 추자 성당

누군가의 묘인 것 같다. 추지도에는 이와 같은 형태이 묘가 있다. 육지나 제주 사람들의 묘지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 천주교 영향을 받아서일까? 아무튼 독특한 추자도 만의 묘지 형태이다. 추지도의 모든 묘지가 이런 형태는 아니다. 그냥 봉문을 만들고 잔디를 입혀 묘를 만드는 남해안 일대의 일반적인 묘지 형태가 많다. 묘지 형태를 보면 이곳 추자도는 남해안의 생활문화권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제주도의 묘지는 묘 주변에 돌로 사각형의 보호담을 쌓는 것이 보편적인 것과 비교하면 오래전에는 추자도 사람들은 육지로 가고 싶은 마음이어서 일까? 남해안의 생활문화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마을길을 내려오면 추자성당 가는 길 표시가 있다. 순방향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이곳을 잘 보지 못할 것이다.

마을 안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일본샘이라는 마을 샘이 있다. / 일제강점기에 축조되었고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빨래물로 많이 사용되던 샘이다.

펌프가 있어 작동하였더니 물이 잘 나온다.

일본샘 모습

마을 안 길을 따라 걷는다.

마을 안길 따라 걷다 보면 가운데 샘을 만난다./ 1800년경에 축조되었고 샘이 비교적 얕으며 빨래물로 많이 사용되었던 샘이다.

계속해서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널은 광장이 나오고 둘레길은 순효각을 향한다.

순효각 옆에 팔각정에 순효각 입구로 가는 표지가 있다.

추자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처서각으로 가는 방향 표기

순효각을 지나
◇ 순효각
"순효각"은 지극한 효성을 실천한 박명래의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자는 응칠 밀양인이요, 경력공 효원의 13 세손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다 하므로 슬피 울어 하늘에 빌자 다음날 뀡을 얻어 드리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도 병이 들어 죽게 되자 손가락을 끓어 수혈하여 그 목숨을 연장하니, 목사가 순시하여 포상하고 그 행실을 속수삼강록에 기록했다 함

오늘날 우리의 효사상은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우리의 효사상은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엄격하게 가르치고 유지하고 장려한 문화이다. 군사부일체로 '부모님과 스승님과 임금은 하나다'라고 가르쳤다. 오늘날 민주주의 통치시대에는 임금은 백성이 주인이 됨으로 민사부 일체가 맞을 것 같다. 부모님과 스승과 백성은 같은 동급이다라고 하여 철저한 민주주의 교육과 스승과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철저히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부모 알기를 헌신짝만도 못하고 스승 알기를 지 손톱 밑에 때꼽자국만도 못하게 생각하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걱정된 바 크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변할까? 우리의 효사상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랑스러운 문화이다. 옛것은 구식이어서 무조건 버리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다 보니 정말로 소중한 우리의 정통문화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안타깝다. 배만 부르고 정신이 없는 인간이 사람인가? 개 돼지는 지 배 부른 것만 생각하고 정신이 없는 동물이다. 우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의 전통사상인 효사상을 숭상하고 잘 이어받아 장려해야 한다. 효사상이나 스승공경 같은 우리의 훌륭한 전통문화는 계승 발전시켜 정신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문화국가를 만들고, 이런 전통문화 위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가 할 일이 아닌가?

박 씨 처사각을 가기 위해 영흥리 마을 안 길을 따라 걷는다.

추자 처사각 이정표를 따라 영흥리 안 길을 따라 걷는다.

영흥리 마을 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처사각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을 만나고

90도 꺾여서 오른쪽으로 오른다.

저기 산자락 밑에 처사각이 보이고 처사각을 지나 나바론 하늘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완만히 게 오른다. 제주올레길 18-1코스를 정상적으로 걷고자 한 사람은 이길로 걷길 바라고, 나중에 나바론하늘길 선택코스도 꼭 걷길 강추한다. 사실 추자도에 오면 제일 먼저 가 볼 곳이 나바론 하늘길이다.
여기 제주 올레길 18-1코스는 사정상 이틀에 걸쳐 걸었고 한 번은 순방향 선택코스로 한 번은 역방으로 걸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혼란스럽게 정리가 된 것 같다. 그러나 혹여 이 길을 걷는 사람은 그 방향을 잘 고려하여 걷는다면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
제주올레길 18-1 코스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에 제주 올레길 18-2 코스를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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