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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2025.01.11. 화순 옹성산(572m)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5. 1. 13.

1. 일자 : 2025.01.11.(토)

2. 누구랑 : 광주공고 산악회

3. 산행 구간 : 옹성산주차장 - 옹성산2주차장 - 옹암 삼거리 - 쌍문바위 - 백련암터 - 출렁다리 - 옹성산 정상(572m) - 옹성산성 - 쌍두봉이정표 - 독재 - 옹성산2주차장 - 옹성산주차장(원점회귀)

 

오늘 걷는 방향은 개념도에 표시된 화살표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다

 

◎ 화순 옹성산(572m)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 북면 다곡리, 이서면 장학리에 위치한다.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 같은 바위봉우리가 여러 개 있어 옹성산이라 부른다. 빨치산 도당 사령부가 있던 백아산 능선에서 뻗었지만, 그 산세는 전혀 다르다.

 

웅성산은 모래와 자갈이 오랜 세월 퇴적작용을 거치면서 형성된 퇴적암이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바위 질은 단단하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짜릿한 등산로는 여타 주변의 산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산행의 시작점은 안성리 신성마을 입구. 도로 우측에 옹성산 안내도와 동복유격대 군부대가 보인다. 버스나 자가용은 1, 2주차장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군부대를 지나면 우측이 안성저수지, 화장실 맞은편 건너 산소 옆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참고로 화장실을 지나 150여m 진행하면 좌측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린 등산로를 만나는데 자칫하면 유격장을 우회하는 등산로로 진행해 산행의 재미가 50% 이상 반감될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그쪽으로 진입해 옹성산을 재미없는 산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옹성산은 산 정상에는 철웅산성인 옹성산성이 정상의 절벽을 이용하여 고려시대에 축성하였고 지금은 유격대 훈련장으로 이용될 만큼 산세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신비로움을 갖고 있는 산이다. 

 

옹성산은 화순적벽을 품고 있는 산으로 화순적벽은 1519년 기묘사회로 동복에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가 중국 적벽에 못지않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순 적벽은 보산적벽, 장항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 총 4개의 적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산적벽과 장항적벽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매년 3월에서 11월까지 운영되는 화순적벽 버스투어를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신비하고 웅장한 절벽과 그 절벽을 감싸는 물빛의 자태를 가만히 보고있으면 무념무상의 여유를 느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 옹성산 주차장 - 옹성산2주차장

 

국도 15번 백아로를 따라 버스로 화순군 안성면 유격교육대가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산행들머리를 잡는다.

 

옹성산 모습

 

주차장에서 옹성산 산행 설명

 

광주공고 동맥산악회(회장 김재노 28회) 신년 첫 산행 화이팅 기념 한 장 남기고

 

동복유격대 표지석을 지나서

 

극기 유격교육대 정문을 지난다.

 

안성 저수지를 지난다. 호수면은 눈으로 하얀게 덮였다.

 

극기 글자가 선명한 옹암

 

'극기' 라고 써져 있는 저기 옹암 절벽을 타고 오르는 산길이 있다. 산꾼들은 저 길을 올라가길 좋아한다. 지금은 유격대에서 아마 통제를 하나 보다. 저곳으로 향하는 산길을 막고 옹성산2주차장으로 향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격대를 지나 옹암을 오르는 산길 초입이다. 이곳 산길은 유격대를 지나므로 화순군에서는 2주차장으로 산행들머리를 안내하고있다. 극기가 써진 옹암으로 오르고자 한 사람은 이곳으로 들머리를 잡으면 된다.

 

옹성산2주차장

 

옹성상 산행 안내

 

옹성선2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선다.

 

◎ 옹성산2주차장 - 쌍문바위 - 백련암터

 

산행 초입부터 지난번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눈 덮인 급경사 오름길은 만만치 않다. 임도로 평소에는 쉽게 다니던 길인데 눈이 쌓이니 쉽지만은 않다.

 

햇빛이 드는 양지는 눈이 모두 녹아 있지만 음지는 이렇게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눈길을 실컷 밟아 본다.

 

광주공고 동창 산악회원님들이다, 오손도손 선후배간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다정한 신길을 걷는다.

 

옹암 밑을 지나고

 

늘 이길은 내려왔기에 옹암의 위용을 보지 못했다. 오늘 이길을 오르면서 보니 옹암의 위용이 대단하다.

 

초입의 급경사를 뚫고 어렵게 오르면 옹암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만약 유격대를 지나 옹암 암벽을 타고 올라 옹암정상을 찍고 오면 이곳에서 만난 쌍문바위를 향해 오른다.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한 사람도 옹암 암벽을 타고 싶으면 이곳에서 옹암으로 곧장 지나가면 된다.

 

옹암삼거리를 지나면 잠시 평탄한 길이 나오는데 숨을 잠깐 쉬어간다.

 

옹암삼거리에서 잠시 쉬어가고

 

현명한 조치다. 미처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한 대원님이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눈길을 오른다. 어렸을적엔 지푸라기를 이용하여 눈길을 많이도 걸었다. 아마 그런 추억을 간직한 대원일 것이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넓는 공간이 나오고 옛날부터 있었던 독립가옥이 있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독립가옥이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계섰는데 지금은 빈집이 되었다. 아마 열악한 조건으로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나 보다. 

 

대신 새로운 가옥이 서너채 들어 왔는데 이곳도 역시 수풀속에 묻힌 것을 보니 거주하는 사람이 없나 보다.

 

이곳은 옹성산성에서 유일하게 조그마한 넓은 땅이 있는 곳이다. 채소도 갈고 이것 저것 생활 푸나기들을 심고 가꿀 수 있는 공간이다. 아마 옹성산성에서 옛날 항거했던 의병들이나 동학농민, 빨치들이 이곳에서 근근히 생명을 유지하며 그 힘든 항쟁을 버티었는지 모른다. 

 

또 다른 단독 주택에도 눈이 덮이고 사람은 없나 보다.

이곳을 관리하는 농막이다.

 

오손 도손 오른 대원님들

 

오르면서 바라 본 동북면 방향 풍광

 

옹암을 바라보며

 

쌍문바위 이정표

 

쌍문바위를 향하여

 

쌍문바위

 

후배님과 기념 한장

 

쌍문바위 뒤에서

 

어느 후배님이 담아준  기념 한 장. 후배님께 감사한다.

 

다시 돌아와 쌍문바위 표지석을 담고

 

쌍문바위를 마지막으로 담고 쌍문바위와 헤어진다. 쌍문바위야 2월 쯤 다시오마. 

 

쌍문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백련암터를 향하여 오르면서 대나무 숲을 지나고

 

백련암터에 도착

 

백련암터는 엣날 한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더 곳으로 거대한 바위 아래 맑은 물이 솟아나 음료수로 사용했던 곳이다.

 

맑은 청수가 바위 틈에서 솟아나고

 

백련암터에서 막걸리 한잔에 잠시 쉬어간다.

 

◎ 백련암터 - 출렁다리 - 옹성산 정상

 

백련암터에서 출렁다리를 향하여

 

백련암터에서 300m 위치

 

이곳에서 바로 옹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출렁다리를 거쳐 가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출렁다리를 거쳐 가기로 한다.

 

출렁다리를 향하여

 

출렁다리로 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무등산과 화순 이서면 동복호 풍광

 

◇ 화순적벽에 대하여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항리, 창랑리 일대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데, 장항(노루목) 적벽, 창랑리에 있는 창랑 적벽, 물염정이 있는 물염 적벽 등이 유명하다. 

 

출렁다리 입구에 있는 화순적벽 안내판

.

적벽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선경으로 아름답고 빼어난 자연 경관과 웅장함, 그리고 유락 공간으로서 옛부터 잘 알려진 명승지이다. 이곳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노루 장자 목 항자를 써서 장항 적벽(노루목 적벽)이라고도 부르며 이곳이 전체 적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조선조 중종(1506~1544) 때 기묘사화로 동복현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당대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김인후(1510~1560) 등은 적벽 관련된 시를 남겼으며, 조선 중기 때 문인이였으며 임진왜란 시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1533~1592)은 1574년 무등산 일대를 유람하고 기행문인 "유서석록"을 써 기록을 남기는 등 많은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적벽을 보고 그 절경을 노래 하였다. 

 

또한 1777년(정조1년)에 화순 현감인 아버지인 정재원을 따라 청년의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적벽에서 시를 읆었으며 방랑시인 김병연(일명 김삿갓)도 다음과 같이 적벽을 노래하였다.

 

무등산이 높다하되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 구나.

 

현재는 1985년 준공된 동복댐에 15개 마을이 물에 잠기고 적벽 일부도 물에 잠겼지만 여전히 그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곳의 수려한 산세를 따라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 창랑정 등 30여 개 소의 누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수몰 및 퇴락하여 없어지고 물염정과 망미정, 송석정 등 만이 남아 있다.

 

출렁다리 끝. 더 이상은 낭떨어지로 위험하여 통제한다. 아쉽지만 여기에서 만족하자. 

 

출렁다리에서 바라 본 화순 모후산 방향 풍광

 

출렁다리에서 바라 본 담양-순창 방향 풍광

 

출렁다리에서 바라 본 옹성산 절벽과 옹성산성

 

다시 돌아가자

 

옹성산 정상 절벽을 이용하여 천혜의 요세인 철웅산성인 옹성산성을 고려때 축조하고 왜구 침략에 대비하였다. 고려 때 왜구와 싸울때는 관군의 의신처가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에 항거한 의병들이 활약했으며, 동학농민전쟁 때는 관군과 일본군에 항거해 동학농민군 등이 활약하였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국군과 경찰에 항거한 빨치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곳은 시대의 혼란이 있을 때마다 관군과 맞서는 의병과 동학도와 빨치들의 방어벽이 되었다. 옹성산성의 기능이 아이러니하게도 관군을 위해 축성하였지만 실제로는 약자의 피신처와 항거의 본거지가 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옹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무척이나 좋아 한다. 광주에서 보면 정반대인 무등산의 뒷쪽 모습이다. 화순 이서면일대의 아기 자기한 산구릉과 동복호가 어울어져 빗어낸 이 아름다운 풍광을 동복 0경으로 하고 싶다. 

 

계절따라 다른 모습이지만 무등산 정상엔 흰눈이 덮이고 산능성과 골짜기 마다 듬성 듬성 보이는 겨울 눈꽃이 보이는 이서면 일대의 풍광은 참으로 절경이다. 한참을 멍때리기 하고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리도 가볍고 마음도 편안하다.

   

인증 한장 남기고

 

이제 옹성산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걷자.

 

전망이 가장 좋은 어느 무덤가를 향하여

 

동복호에 한반도가 반대로 누워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옛 선인들도 적벽 팔경을 노래 했다.

 

◎ 적벽팔경(동복팔경 : 동복 읍지 기록)

 

 

 1. 한산모종 : 한산사의 저녁종소리

 2. 금사낙안 : 모래밭에 내리는 기러기

 3. 부암관어 : 부암 앞에서 고기 구경

 4. 적벽낙화 : 적벽에서의 저녁 낙하놀이

 5. 학탄귀범 : 학탄을 돌아가는 돛단배

 6. 고소청풍 : 고소대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7. 선대관서 : 강선대에서 활쏘기

 8. 설당명월 : 설당의 밝은 달빛

 

기념 한장 남기고

 

옹성산 정상석(572m)

 

옹성산 정상석에서

 

◎ 옹성산 정상 - 옹성산성 - 쌍두봉 이정표 - 옹성산2주차장 - 옹성산주차장

 

옹성산 정상에서 하산을 하면 황씨묘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 본 동복면 방향 풍광이 일품이다.

 

황씨묘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복면 풍광 저 멀리 모후산이 우뚝 솟고

 

한참을 내려오면 옹성산성 이정표가 반긴다.

 

옹성산성 이정표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옹성산성의 흔적이 비교적 잘 보이는 옹성산성길

 

철옹산성은 동복과 북면, 이서면에 걸쳐 있고 해발 572m 높이의 옹성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포곡식 산성(산성 안에 계곡을 감싸고 형성된 산성)이다. 

 

4m 높이의 산성 연장길이는 약 5,400m이다. 성벽은 해발 275m~550m 일대에 분포하고, 축조방식은 양 벽을 돌로 쌓아 올리는 협축법과 한쪽만 돌로 쌓고 다른 쪽은 흙으로 쌓는 편축법이 사용되었다.

 

장성의 입암산성, 담양의 금성산성과 더불어 전남의 3대 산성으로 전하는데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고 있다. 

 

또한 산성 내부에 계곡을 포함하여 수량이 풍부하고 활동 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외부의 노출도 방지해 줄 수 있는 구조여서 유사시 상당수의 군사와 주민이 산성으로 들어가 싸움을 할 수 있는 산성으로 규모도 커서 보존 가치가 높다. 철웅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 옹성산성, 옹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 산성이다.

 

옹성산성 조망터

 

옹성산성 조망터에서 모후산 방향 풍광을 조망하고

 

산성에서 의병들이 곡식을 찧어 먹었는가 보다. 절구통 모양의 바위와 바위 위에 구멍이 이를 말해준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았나 보다. 지금은 없지만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많다.

 

대마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대나무 숲을 지나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인 집터를 지나고

 

눈 쌓인 산 허리를 돌아

 

이제 쌍두봉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향해 간다. 예전에는 이곳에 고드름이 참으로 아름답게 많이도 열였다. 햇살에 찬란히 빛나는 고드름을 보는 것이 하나의 볼거리였는데 오늘은 고드름이 없어 아쉽다.

 

쌍두봉이지만 저 산 아래는 옹암으로 아래에서 보면 마치 항아리를 엎어 놓은 것 처럼 보인다.

 

아래에서 바라본 쌍두봉의 위용

 

쌍두봉이정표

 

쌍두봉 이정표에서 인증 한장 남기고 이제 급경사 계단길을 내려간다.

 

참으로 많은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간다. 만약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까? 작년엔 이곳을 올라왔는데 죽는 줄 알았다.

 

한참을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니 독재가 반긴다.

 

독재 인증 한장 남기고 이제 편안하게 옹성산주차장으로 원점 하산하자.

 

동복유격대 방향으로 하산

 

내려오면서 바라본 옹암의 위용

 

이곳은 철웅산성 옹성산성이 빙둘러 방어벽을 친 안전지대로 아마 옹성산성에서 활약한 많은 분들이 이곳을 저항의 본거지를 삼았을 것 같다.

 

하산길에 다시 바라본 안성저수지와 옹암. 아침에 오를 땐 흰눈으로 덮여 수면이 흰색이였는데, 하신길 오후엔 눈이 녹아 수면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수면에는 살얼음이 아직 녹지 않고 한겨울을 견디고 있다. 

 

하산하면서 되돌아 본 옹암의 위용

 

옹성상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길

 

옹자가 독 옹, 또는 단지 옹자이다. 옹성마을은 안성리 2리이다. 작년 4월에 마을 이정석을 세웠나 보다.

 

◎ 화순 옹성산을 마무리 하면서

 

날씨가 생각보다 포근하고 바람이 없고 하늘이 맑아 겨울산행으로 안성맞춤인 하루다. 고교 선후배간의 오손 도손 정겨운 산길이여서 더욱 정스럽고 소중한 산길이였다. 늘 오른 산길이지만 오를때마다 다르고 누구와 함께 걷는냐에 따라 다른 산길이다. 사람이 사는데는 꼭 길이 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나 있는 길뿐만아니라 사람다운 모습으로 가야할 길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도라고 한다. 도는 시대마다 다르고 종교마다 다르고 주장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지만 그 뜻은 다 같다. 하늘의 뜻과 땅의 기운에 맞게 생명을 유지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있어 걷듯이 도가 있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든 모습은 도이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