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6일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면서 덕유산 백련사를 둘러 보고 이번 2023.01.15. 다시 찾았다.
법당안 석가모니 불상을 알현하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 있어 볼 수가 없다.
여기 사진은 2021.01.06. 백련사 방문 때 담아논 것을 활용하고
대웅전 법당 석가모니 불과 명부전 지장보살은 선행한 분의 블로그 자료를 활용하였다.
◎ 백련사
백련사는 명승지 구천동을 대표하는 절로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숨어 살던 곳으로 여기에 백련이 솟아 나왔다 하여 백련암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며, 830년(흥덕왕 5)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백련사를 창건하였다는 구전도 있지만, 이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절터에서는 광무 4년(1900)에 이하섭이 고쳐 지으면서 기념비를 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62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이외에도 선수당, 원통전,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으며, 백련사 계단을 비롯하여 정관당부도, 매월당부도가 있다.
◎ 백련사지
무주 백련사지(茂朱 白蓮寺址)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절터이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사지 표지석
◎ 덕유산 백련사
덕유산 백련사
덕유산 백련사는 산의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681~692)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이곳에서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와서 이 자리에 절을 짓고 백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조선시대 유명한 고승 영관대사와 서산대사가 수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종 13년(1672)에 윤증이 덕유산을 등정하고 남긴 「유려산행기」와 영조 40년(1764)에 전주 종남산 송광사 승려 채영이 간행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 영조 41년(1765)에 발간한 「무주부 읍지」 고종 35년(1898)에 무주 향교에서 간행한 「적성지」 등에 백련사와 관련한 정보가 등장한다. 이들 문헌에 따르면 구천동 계곡에는 구천동사, 백련사, 백련암으로 불리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까지 수리를 거듭하여 오던 백련사는 광년 4년(1900)에 이하섭 군수가 백련사를 고쳐 짓고 나서 세운 기념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후 한국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그로인해 지금의 건물은 1962년부터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절터가 있던 자리에 대웅전(절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을 모신 법당), 요사(승려들의 거처), 일주문(기둥을 한줄로 배치한 문), 선수당(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 원통전(관음보살을 모신 법당), 명부전(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과 시왕을 모신 법당), 천왕문(사천왕을 모신 문으로 불법을 지키고 밖에서 오는 사마를 막으려고 새운 문), 우화루(설법을 위한 법당) 등을 세우고 백련사의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지은 대웅전의 지붕은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이곳에는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 43호), 정관당 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백련사 가람배치도
◎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
기둥을 한줄로 배치한 문으로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格)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덕유산백련사" 현판
전국 여러 사찰 일주문 중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고즈넉함과 화려함이 함께 어루러진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일상의 상념을 다 버리고 오직 불법의 세계로 정진하여야 한다.
◎ 덕유산 백련사 매월당 부도 (白蓮寺 梅月堂 浮屠)
전라북도 무주군, 백련사에 있는 승탑.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
종 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 설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설흔 스님의 조카인 임선행이 세웠다. 받침돌과 부도의 윗 부분에 불교의 상진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 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설흔 스님은 정조 8년(1784년)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이 지역 불교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분으로, 안국사 극락전 내 불상 뒤의 그림도 스님의 감독하에 조성되었다.
◎ 덕유산 백련사 정관당 부도(白蓮寺 靜觀堂 浮屠)
전라북도 무주군, 백련사 천왕문 앞에 자리한 정관당 일선선사(1533∼1609)의 사리탑이다. 1982년 8월 30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
이 부도는 정관당 곽일선(1533∼1609) 스님의 사리탑이다. 일선선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서산대사의 제자이며 전북지역내의 불교 보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탑은 연꽃을 두른 원형의 받침돌 위로 길쭉한 종모양의 탑신을 올린 간략한 형태이다. 탑신 표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다만 맨 끝부분을 마치 팽이처럼 뾰족하게 조각하여 마무리하였다.
탑신의 아래에 ‘정관당 일선탑(靜觀堂 一禪塔)’이라는 탑이름이 있고, 바닥돌 윗면에 ‘만력 37년건(萬曆三十七年建)’이라 적혀 있어, 조선 광해군 원년(1609)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
◎ 덕유산 백련사 사천왕문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절에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건립하는 까닭은 절을 외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수호신들에 의해서 도량 내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려는 데도 뜻이 있다. 또한,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수미산 중턱에 살며 동방을 수호하고 비파를 들고 음악을 관장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중턱에 살며 남쪽에 있는 장도를 들고 유리 지방을 관장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수미산 중턱 서쪽에 살면서 많은 용을 권속으로 서방을 지킴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을 들고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는 천왕
사천왕문을 지나기 전에 따듯한 커피 한잔
◎ 우화루(설법을 위한 법당)
우화루로 오르는 계단
우화루 앞 은행나무가 인상적이다.
우화루는 신도들에게 불법을 설하는 강당이다.
◎ 법종각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북으로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범종각 풍경
◎ 덕유산 백련사 대웅전
대웅전 문이 닫혀 있다. 대웅전 안의 석가모니 불을 알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아쉽다
항상 사찰의 중심을 이룬다.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 좌우에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 삼세불(三世佛:석가모니불·미륵보살·갈라보살)과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삼신불은 대개 법신인 비로자나불, 보신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웅전에는 선종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노자나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무주 백련사 대웅전 현판 : 한석봉 글씨
선행한 분의 블러그 자료를 활용하였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 무주 백련사 대웅전 주련
南無大方廣佛華嚴經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 화엄경에 귀의합니다.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천상천하 어느 누가 부처님과 견주리오.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시방세계 둘러봐도 비길 자가 전혀 없네.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살피어도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부처님을 따를 자가 천지간에 없습니다.
◎ 덕유산 백련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곳이다. 세간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겪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큰 자비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므로 관세음(觀世音), 모든 현상을 두루 관찰하듯이 중생의 구제도 자재하므로 관자재(觀自在),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두루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원통대사(圓通大士)라고 한다. 그래서 관음전(觀音殿)을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덕유산 백련사 원통전 주련
圓覺山中生一樹(원각산중생일수) 두렷이 깨달은 산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있어서
開花天地未分前(개화천지미분전) 꽃은 피었는데 천지가 아직 나눠지기 이전이네.
非靑非白亦非黑(비청비백역비흑) 푸른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데
不在春風不在天(부재춘풍부재천) 봄바람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네.
◎ 덕유산 백련사 명부전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덕유산 백련사 명부전 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대성인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은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항하사겁 동안 설해도 다하기 어려워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잠깐 동안 우르러 예배드려도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그 이익은 한량이 없네
◎ 덕유산 백련사 이모 저모
대웅전 모습
종무소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풍광
대웅전
대웅전 한쪽 마당에서 내려다 본 풍광
명부전 한쪽켠에서 바라본 풍광 파란 하늘에 햇살이 아름답다.
대웅전 마당 담벽에서 내려다 본 백련회관 및 요사채
덕유산 백련사 조실당과 요사체
대웅전 마당 기와 담벽
대웅전과 명부전을 담았다.
강력한 햇살아래 고즈넉한 백련사 눈길이 한적하다.
백련사 풍광
백련사 풍광
백련사 풍광
◎ 덕유산 백련사 삼상각
사찰에 가면 대웅전 뒷켠에 삼성각 또는 삼신각이 모셔져 있다 어떤 사찰에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의 세 전각이 있기도 하다. 불교와 관계없는 한민족 고유의 신앙이다. 불교가 이땅에 들어오면서 전통종교를 포용하여 사찰 부근에 삼신을 함께 모신 것이다. 불교의 포용력을 보여주고 았다
◎ 덕유산 백련사 계단
전라북도 기념물 제 42호
자연석 받침 위에 세워진 이 계단은 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윗부분에 남아 있는 스물다섯 개의 여의주 문양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계단은 불교의 계법을 전수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불경 연구를 위해 당나라에 다녀온 자장 스님이 지금의 통도사인 구룡연에 금강계단을 만든 것이 그 시초이다. 자장 스님은 이곳에 당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후 불교의 계율을 설법하였다. 이후로는 전국의 큰 사찰마다 계단을 설치하고 승려들의 계율의식을 행하였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681~691) 때 백련 스님이 은거하던 곳으로, 하얀 연꽃이 피어나 절을 지었다고 하며, 구천동 열네 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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