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주 안국사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934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고려 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 무주 안국사 일주문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천불전·지장전·삼성각·호국당·일주문·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보물 제1267호인 괘불(掛佛)이 있다.
◎ 안국사 종합안내
안국사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광해군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사고(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늘려지었고 서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10년에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
1989년 적상산 양수발전 위쪽 댐 건설로 절이 수몰지역에 포함되자 원행스님은 호국사지였던 현재 자리로 안국사를 옮겨 세웠다.
◎ 안국사 절집 배치도
청하루를 지나 앞마당에 들어서면 적상산을 배경으로 단아한 모습의 극락전이, 왼쪽에는 천불전과 성보박물관이, 오른쪽에는 지장전과 범종각 등이 자리잡고 있고, 아래로는 선방과 호국당, 그리고 호국사 비가 있다. 극락전은 '인욕바라밀' 학이 단청을 하여다는 유명한 학단청 설화를 알 수 있듯 오른쪽 창방 쪽에는 단 하루분량의 단청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청하루
일주문을 지나 적성산성을 구경하면서 평온한 길로 오면 청하루를 만난다. 안국사에는 흔히 있는 사천왕문이 없다. 아마 일주문에서 청하루까지 오는 길목에 사천왕문을 세우기가 어려웠나 보다. 굳이 사천왕문을 만든다면 청하루 아랫 빈 공간이 좋을 것 같다. 마음속으로 사천왕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간다.
이곳으로 이건하기 전
청하루와 극락전 사이의 마당 양 옆으로 산성과 사고(史庫)를 지키는 승병들의 숙소인 승방이 있었다. 「중수기(重修記)」에 따르면, 안국사는 승병들이 거처할 수 있는 숙소로 건립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승방은 훼철되었고, 강당과 누문 구실을 하던 청하루는 20여년 전 해체하여 요사를 개축하는 데 사용하였다. 따라서 안국사 경내에는 극락전·산신각·천불보전·요사 등 4동의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정부의 발전소 건설계획에 따라 사찰 전체가 수몰지역에 편입됨으로써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적상산(赤裳山) 남쪽 기슭인 이곳은 안국사와 함께 산성과 사고 수비를 위한 승병들의 거처였던 호국사지(護國寺址) 옆이다. 이건하면서 기존의 건물 외에도 옛날에 있었던 청하루·지장전·일주문·종각 등을 신축하여 새로운 면모를 이루었다.
청하루 처마가 붉은 단풍에 잘 어울려 아름답다
청하루 가을
◎ 안국사 극락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2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또한, 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다.
안국사 극락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 42호
극락전은 적상산성내의 유일한 고찰인 안국사의 본전으로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으며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안국사 극락전은 다포계의 건물이면서도 맛배지붕으로 조성한 특이한 형태이며, 앞면과 옆면이 각 3칸씩으로 되어 있다. 학이 단청을 하다가 날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에 중수된 안국사의 경내에는 본전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명부전과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었고, 극락전 앞마당 전면에는 계류에 면하여 청하루(淸霞樓)가 있었다.
안국사 극락전 앞에 있는 당간지주 (오른쪽)
안국사 극락전 앞에 있는 당간지주 (왼쪽)
어간의 주간을 양 협간보다 길게 잡고 각각 4짝과 2짝의 꽃살문을 달았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주춧돌)를 놓고 세운 두리기둥은 민흘림이 뚜렷하며 기둥머리는 화려하게 용두(龍頭)가 장식하고 있다. 공포는 세부수법에 있어 조각적 수법이 강하며, 쇠서[牛舌]끝이 날카로워 후기적 수법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배면의 공포는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맞배집이지만 측면에도 공포가 배치되어 있어 본래는 팔작지붕이었으나 중수과정에서 지붕의 구조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가구구조를 볼 때 내진고주(內陣高柱)를 평주보다 뒤쪽으로 물려 세우고, 전면 평주와 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결구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측면 평주에서 보낸 2개의 충량이 걸쳐 있고, 충량 상부에 다시 대공을 세워 지붕을 지탱하는 이와 같은 가구구성은 팔작지붕의 구성방법이다.
◎ 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 1267호)
이 괘불탱화는 조선 영조 4년(1728)에 천신스님과 의겸스님 등이 제작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 7.50m, 세로 10.75m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등 네 보살과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등 여섯 분을 협시보살로 모신 석가칠존도 형식의 영산회상도이다. 보살들의 둥그런 얼굴과 밝은 표정에서 편안함이 느겨지며, 석가모니 뒤의 광채를 금색으로 채색하고 여백에 구름무늬를 넣은 점이 매우 이채롭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불교 행사를 할 때 걸어두는 그림으로, 법회의 성격, 의식의 종류 등에 따라 맞는 것을 봉안한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4년(1728), 안국사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조성한 것이다. 이 괘불은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으며,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 무주 안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茂朱 安國寺 木造阿彌陀三尊佛像)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2003년 12월 26일 지정)
안국사 극락전내에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우측에는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불상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작품의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삼존상은 모두 얼굴이 각이 지고 넓적하며, 턱은 좁고 목은 짧으며, 어께는 움츠리고 허리는 약간 구부리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과 손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록 삼존상은 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없으나, 삼존상의 형태로 볼 때, 17세기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좀더 평면화된 얼굴과 가슴, 경직성이 보다 진행된 점 등은 17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목이 짧고 움츠린 듯한 어깨에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턱이 짧아지고 각이 져 딱딱해 보이는 얼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려 엷은 미소가 번져나는 듯 하다. 오똑한 코에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법의는 통견의로서 왼쪽 팔로부터 흘러내린 소매자락은 대퇴부 쪽에서 발가락을 덮고 있다. 자연스러운 옷주름과 사실적 표현의 손으로 인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는 원만하며 높이 67cm, 무릎폭 43.5cm, 어깨폭 30cm 내외이다.
좌협시인 관음보살상은 옷주름이 본존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처리되었으며, 손 역시 사실감이 돋보인다. 머리는 관을 쓸 수 있도록 턱을 두어 짧은 상투처럼 머리를 묶어 올렸으며, 보관 아래쪽으로만 머리칼을 표현하였는데 귓바퀴를 한 번 감아내려 어깨 위로 흘러 내리게 하였다. 높이 63cm, 무릎폭 35.5cm, 어깨폭 26cm 내외이다.
우협시인 세지보살상은 손모양이 관음보살상과 대칭적이고 불의형(佛衣形)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턱이 보다 납작해지고 허리가 좀 더 구부정한 것만 다를 뿐 얼굴 형태 및 표정, 사실적인 손, 자연스러운 옷주름 등 조각 양식의 세부 특징이 관음보살상과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높이 61cm, 무릎폭 36.5cm, 어깨폭 24cm 정도이다.
불상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구부정한 자세에 굵고 짧아진 목, 납작해진 턱과 각진 얼굴, 오뚝한 코와 근엄하면서도 엷은 미소를 보이는 얼굴표정,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주름, 사실적 표현의 손 등 17세기 불상양식을 보이고 있다.
◎ 안국사 지장전
◎ 안국사 삼성각
◎ 안국사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600여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
성보박물관 모서리에 서 있는 석불과 붉은 단풍
◎ 무주 안국사 범종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88호
이 범종은 1788년(조선 정조 12년)에 조성된 것으로써, 범종각에 안치되어 있다. 종신의 형태는 입구가 약간 벌어진 형태이며, 천판 위에 용뉴가 결실되기는 하였지만, 조선시대 범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외래 양식을 가미한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앙부 종신에 주성기가 방형곽을 이루면서 양각되어 있어, 범종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또한 주성기에 보이는 주조장인 이만중과 권동삼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이는 주조장의 계보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주 안국사 소장 범종(茂朱 安國寺 所藏 梵鍾)은 1788년(정조12)에 조성된 조선후기의 범종으로, 현재 무주 안국사 범종각 내 후면에 안치되어 있다. 2007년 5월 4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천판(天板)위에는 용뉴(龍紐)가 남아 있지 않아 원래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천판 위에 3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쌍룡(雙龍)의 용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뉴를 제외한 전체높이가 83cm에 달하는 중형의 종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천판은 나즈막하며 위에는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가운데 2개는 쌍용의 용뉴를 고정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는 音筒 대신 종소리를 위하여 뚫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종을 만든 주종장(鑄鐘匠) 이만중(李萬重)이 만든 다른 종에도 용뉴를 고정하기 위한 것 외에 음통의 효과를 갖는 구멍을 하나 더 뚫어서 천판 위에 모두 3개의 구멍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종신(鐘身)의 형태는 입구가 약간 벌어진 형태이며, 천판과 종신이 만나는 부분은 가는 條線으로 구분하였다. 상대에는 2줄의 범자문원권대(梵字文圓圈帶)로 장식하였으며, 상대 아래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유곽대(乳廓帶)와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유곽의 둘레에는 가는 선으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 유려하게 장식되었으며, 내부에는 10옆의 연화 위에 乳頭가 도드라져 있어 마치 연꽃이 피어나는 듯 하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왼쪽으로 몸을 틀고 우아하게 서있는 보살입상이 4구 주조되어 있다. 보살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합장을 하고 구름 위에 서 있는데,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보관과 유려한 옷자락의 표현은 이 보살상이 뛰어난 솜씨의 장인에 의해 조각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주성기(鑄成記)에는 주조장 이만중(李萬重), 권동삼(權東三)과 함께 각수(刻手) 처성(處性)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어 처성이 보살상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살상 옆으로는 시주자명단이 얕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부분은 후대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종신의 중앙부와 하단에는 융기된 선이 각 한줄 씩 둘러져 있으며, 중앙부의 종신에는 주성기가 방형곽을 이루며 양각되어 있다. 주성기는 모두 13개의 방형곽 안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乾隆五十三年戊申三月日 茂朱赤裳山安國寺大鐘改鑄重... 刻手 處性... 片手權東三 都片手李萬重...”이라 적혀있어 1788년에 처성과 권동삼, 이만중이 옛 종을 안국사의 대종으로 다시 고쳐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도편수 이만중은 고성 옥천사(1776년), 법주사종(1785년) 등, 편수 권동삼은 보천사종(1794년), 고창 선운사종(1818년) 등을 주조한 사장(私匠)으로서 이 종은 이만중에서 권동삼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사장계(私匠系) 주종장(鑄鐘匠)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요사채
적상산 안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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