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둘레길,트레킹길

2023.05.07. 오대산 선재길(상원산-월정사) 9km - 연초록 신록이 우거진 오대천을 따라 걷는 힐링 산길

by 하여간하여간 2023. 5. 8.

1. 일자 : 2023.05.07.(일)

2.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

3. 트레킹 구간 : 상원탐방지원센터 - 상원교 - 동피골 오대산장- 연화교 - 오대산사고 갈림길 - 섶다리 - 보메기 - 회사거리 - 반야교

 

 

 

4. 산행소감

 

오대산 선재길은 오대산 상원산에서 월정사까지 오대천을 따라 걷는 숲길이다.예나 지금이나 스님들이 상원사와 월정사를 오가면서 걷는 깨달음의 길이요 명상의 길이다. 5월 초 온 산하가 연록색 푸르름으로 물들 때 오대천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오롯이 걷는 오대산 선재길은 정말이지 별천지 같았다. 심산유곡이라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깨끗하고 한적하고 싱싱하고 여유로운 이 청정한 녹음과 맑은 물소리의 길을 걷노라면 자연스레 순수 그 자체가 된다.

예전에 오대산을 오를 때 6번 국도 오대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부터 월정사를 거쳐 긴 계곡을 따라 상원사탐방센터 주차장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언젠가 이 길을 걸어 보면 참 좋겠다 했는데, 이번에 광주지오트레킹에서 그 곳을 간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전날 밤 11시에 광주를 출발하여 무박으로 상원사에 아침 6시에 도착,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아침 9시부터 선재길을 걸었다. 참으로 행복한 힐링시간이였다. 누구든 숲길을 걷고 싶걸랑 오대산 선재길을 걸어보라. 강추한다.

  

 

5. 산행 추억

 

어제 저녁 밤 11시에 광주 출발 아침 6시에 상원사 상원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 후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표지석 앞에서 오늘 트레킹 대원님들!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오대산 선재길은 아침 9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국립공원 오대산 깃대종인 긴점박이 올빼미 조형물 앞에서 부터 시작한다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원사와 월정사 그리고 정동진 바다부채길을 걸을 계획이여서 시간이 바빠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오대천의 흐름을 따라 걷기로 한다. 아무래도 내려가면 걸음이 쉽고 시간이 단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대산 선재길 시작 입구에서 인증 

 

1400년 전, 자장이 걸었던 길을 걷는다.

월정사 위편 오대산 중앙에  자리한 중대 적멸보궁이 터를 잡은 이래, 세월은 흘렀고 세월은 모든 것을 지운다. 길도 잊혀졌다. 잊혀진 옛길을 자장율사가 발자취를 남긴 1,400년 만에 다시 숨쉬기 시작한다. 전국 트레커들이 찾고 있다.

2003년 정념스님(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주지)은 '오대산 천년 숲길' 걷기 대회를 열고 옛길을 살리기 위해 정진, 10년만에 자장율사가 걷던 옛길은 선재길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깨달음과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 입구에서 대원님! 깨달음을 얻을려나? 깨달음은 스님들의 길이고 우리는 치유의 길을 걷는다.

 

깨달음은 온갖 괴로움과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다. 한적하고 생명 가득한 숲길을 따라 걷노라면 혹여 순간 그 깨달음의 경지를 터득할 수 있을까? 

 

선재길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에서 유래한다. 선재동자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보살이 될 수 있을까’하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문수보살을 시작으로 53명의 현인을 만나러 세상을 떠돈다. 아마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선재동자 처럼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는 스님들에게 이 길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길이였는지 모른다.

 

구도의 길을 걷는다. 부디 깨달음의 순간이 번쩍 오길~ ㅋㅋ

 

문수보살은 몰려온 사람들에게 법문을 말하여 주려고 먼저 그들의 마음을 살피다가 그 가운데서 선재동자를 발견하였다. 선재동자는 전생에서 보살도를 닦으며 착한 일을 많이 하였고, 이 세상에 태어날 적에는 여러 가지 보배가 하늘에서 내려와 여러 광에 가득 찼으므로 선재라고 이름지었다.

 

연록색 숲길과 청량한 오대천 물소리를 따라 걷는 선재길은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싱싱하고 청명하고 싱그러운 선재길을 걷는다.

 

왕의길 5구간이다. 

세조는 상원사 입구 계곡에서 목욕을 하던 중 문수동자를 만나서 피부병을 고치고, 자주 행차하여 문수보살과 관련된 많은 전설을 남겼다.  

 

'오대산사기'에 따르면 세조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1418~41)의 저주 때문에 피부병(창병)을 얻었다. 강원도 순행 2년 전인 1464년(세조10년) 백일기도를 마치고 상원사 앞 계곡에서 혼자 목욕을 하던 중 동자를 만나 등을 밀어달라고 한다. 세조는 동자에게 "어디가서 왕의 등을 밀었다고 얘기하지 마라"고 했다. 동자 역시  "왕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주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했단다. 

세조는 병을 고쳤고 화공에게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여 상원사에 봉안토록 했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할 때 어의를 걸었다는 '관대(冠帶)걸이'가 있다. 

 

선재길은 오대천 계곡을 오가며 산림철길 1구간 - 조선사고길 2구간 - 거제수나무길 3구간 - 화전민길 4구간 - 왕의길 5구간 으로 5개 테마로 이어진다. 나는 상원사에서부터 내려가는 코스이기에 왕의길 5구간 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상원사를 거쳐 내려오는 오대천 물소리가 힘차다.

 

근심과 괴로움 그리고 생로병사의 괴뇌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생로병사의 고뇌에 묶인 나를 떠나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해탈의 세계로 그냥 가면 된다. 사람인지라 가다가 돌아오고 또 가다가 넘어지고 또 가다가 힘들드라도 그냥 무소의 뿔처럼 뚜벅 뚜벅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곳에 서 있을 지 모른다.

  

 

신선암으로 가는 길목일까? 아무런 표지가 없다.

 

상원사에서 1.8km 지점 이정표이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선재길은 9.0km이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정신이 맑아질 수 있을까? 참으로 좋은 숲길이다.

 

오대산 화전민 터

 

오대산 월정지구의 화전민은 한때 150여 가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약 40여 가구의 흔적만 남아 있다. 화전민이 경작했던 밭을 비롯해 담장이나 집의 벽체였던 석축유구, 난방 흔적인 온돌 유구,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도기편, 자기편이 화전민 터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기차레일 같은 철편이 일부 남아 있는데, 벌목장에서 아래까지 목재운반을 위해 쌓아둔 뒤 비가 오면 터트려 나무를 한꺼번에 이송했던 보메기,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고장이 있던 자리도 회사거리라는 지명으로 아직 남아 있다.

 

출렁다리도 건너고

 

출렁다리를 지나서 깨달음과 치유의 천년 옛길 표지문 앞에서 기념 한장 

아마도 깨달음은 멀고 치유는 되는 것 같다. 모두들 즐거운 모습이다. 

 

오대산장 0.7km 지점 이정표

 

쓰러진 고목을 이용 나무조각을 해 놓았다. 오대산장 근처이다.

 

동피골 오대산장 이정표, 월정사 5.4km, 상원사 3.6km 지점 이정표

 

 

선재교를 지나서

 

화전민길 4구간

 

상원사 4.3km, 월정사 4.7km 지점 이정표

 

계곡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시원하다.

 

갈골교를 지난다.

 

초록으로 뒤 덮인 선재길

 

선재길 동피골 - 월정사 구간은 트레킹 내내 계곡을 따라 걸으며 신갈나무, 단풍나무가 울창하고 다양한 야생화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조릿대숲길과 빽빽한 전나무 숲길로 이어지며 멸종위기 희귀식물 30여종을 복원한 자생식물관찰원도 동피골에 들어서 있다. 

 

거제수나무길 3구간


우리 조상들은 '곡우'를 전 후하여 '곡우물'을 마시면 잔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다고 믿었던 풍습이 있었는데 거제수나무가 으뜸이였다고 한다. 또한 재앙을 물리치는 물을 가졌다는 뜻의 거제수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있으나 신뢰하기 어렵다.

 

계속되는 생명의 길 깨달음의 길

 

청정수 오대천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리고

 

섶다리 0.7km 지점 이정표

 

선재길을 내려가는 사람 중에 오대산사고를 가려고 할려면 아래 오대산사고 안내판에서 바로 옆의 버스길을 이동하여 월정사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오대산사고 입구 이정표가 나온다. 헛갈리지 말길 바란다.

 

오대산 사고

오대산 사고는 선조 39년(1606년) 조선 후기 설치 운영된 왕실의 기록물 보관처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가 대표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 전한다.
조선 전기 각각의 사고에 보관 되었던 실록이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유실되자 실록 재 간행 봉안 작업이 진행되었다. 조선후기의 사고들은 한양의 춘추관 외에 침입이 어려운 깊은 산속에 지어졌고 전주사고본, 새로 간행한 실록 3질, 초본(교정쇄본) 1질, 총 5질의 실록이 마련되자 새로 인출된 실록은 춘추관, 묘향산, 태백산에, 전주사고본 실록은 강화에 봉안되었다. 
이때 오대산 사고에는 초본 실록이 봉안되었으며 월정사가 수호사찰로 임명되고 사고 아래쪽에 영감사를 두어 운영과 관리를 돕게하였다. 오대산 사고는 일제 강점기 사고의 전적들이 반출되며 빈채로 남아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고, 1992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루고 있다.

 

오대산 사고와 사명대사


사명대사는 선조 19년(1586년) 영감암에 머물며 종봉이라는 암자를 지어 자신의 호로 삼았고 이후로도 영감암에 머물며 월정사 중수 불사에 착수 1589년 법당을 고쳐 완성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강원감사가 사고설치와 관련하여 오대산을 직접 확인하는 시기 이전 대사가 오대산에 머물며 수행한 기록 등이 있어 오대산사고가 설치되는 데에는 스스로 오대산인라 칭하였던 대사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오대산사고의 의궤와 실록의 특징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의궤>는 외서고 중 가장 많은 242종 454책에 달하며 반차도 등 왕실의 행차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오대산사고의 <조선왕조실롣>은 2가지 형태로 봉안되었는데 초기 설치 시 봉안되었던 태조부터 명종대까지의 초본과 이후의 정본이다. 특히 초본에는 붉은 글씨와 검은 글씨의 교정 부호가 남아 있어 실록편찬과정과 한자 자형을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계곡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암반이 있다. 암반속에 핀 수달래가 예쁘다. 

 

 

바위틈새 기대어 피어난 저 아름다운 수달래를 보라!  생명을 뿌리내리는 곳으로 얼마나 악조건인가? 그래도 틈이 있어 아무 불평없이 그곳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자연의 기운을 받아 붉은 색의 아름다움을 힘껏 내뿜고 있지 않는가?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사는데로~ 그렇게 자연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저기에는 근심도 괴로움도 생로병사의 고통도 없다. 해탈 세계가 아닌가?    

 

 

유유히 흐르는 오대천 물줄기가 기운차다.

 

오대천변에 활짝 핀 연달래 아래 김명수 회장

 

오대천에는 줄곧 수달래가 만발 했다.

 

섶다리에서 

 

선재길을 올라오는 사람 중에 오대산 사고를 보러 갈 사람은 이곳에서 섶다리를 건너서 버스길을 따라 상원사 쪽으로 가다보면 오대산사고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이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11월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리를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너다니는 다리로 이용한다.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 가므로 '이별다리'라고도 한다.

 

조선사고길 2구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조선후기 5대 사고 중에 하나로 오대산사고본은 교정 실록으로 교정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실록의 편찬 과정과 한자 자형을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선재길 데크가 허물어져서 위험하다.

 

서로 잡아주고 의지하면서 위험 구간을 지난다.

 

산림철길 1구간

일제 강점기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산림철)을 깔아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갔다는 기록이 있다.

 

 

회사거리는 일제감정기 때 오대산 울창한 산림을 벌목하여 나무를 제재하는 장소이다. 일제는 상원사까지 철길을 놓아 오대산의 울창한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벌채하여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가슴 아쁜 역사의 현장인가? 참을 수 없는 격분이지만 어쩌랴! 구 한말 왕을 비롯한 조정의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의 아니한 정세 판단과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일제 앞잡이와 간신배 역적들의 간계로 을사늑역이 채결되고 국권을 빼았겼으니!일제감정기의 뼈 아픈 흔적은 어디 이뿐인가? 전국의 곳곳이 난도질 당하고 무고한 백성이 억울하게 죽고 어린이와 여성이 강제노역으로 끌려가고 어린소녀들은 위안부란 이름으로 전쟁통에 성희생자가 되었으니 이 참담함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까? 5000천 역사의 찬란한 문화재를 강탈 당하고 민족의 혼을 빼았겼으니 참담하기가 말해 무엇하랴?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민족의 스승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위정자들의 세계정세 판단 능력과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의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져야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해방 후 70년 간 산림녹화를 잘하여 울창한 숲이 다시 우거져 다행이다. 

 

반야교를 지나면서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을 마감한다.

 

 

6. 선재길 야생화

 

산괴불주머니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벌깨덩굴

 

철쭉(연달래)

 

족두리풀꽃

 

 

 

고깔제비꽃

 

 

 

멸가치

 

산괴불주머니

 

개족두리풀

 

말발도리

 

미치광이풀

 

벌깨덩굴

 

둥근잎천남성

 

피나물

 

홀아비바람꽃

 

연영초

 

피나물

 

당개지치

 

당개지치

 

벌깨덩굴

 

회리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