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 명산

2022.10.30. 무주 적상산 단풍 산행

by 하여간하여간 2022. 10. 31.

1. 일자 : 2022.10.30.(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서창마을-장도바위-서문-갈림길-향로봉(왕복)-갈림길-적상산기봉- 갈림길-안렴대(왕복)-갈림길-안국사-적상호전망대(왕복)-송대폭포-치목마을(12.5km)

 

 

 

4. 산행소감

 

무주 적상산은 처음이다. 적상산 단풍이 일품이란 것은 익히 알고 있다. 10월 끝자락에 마지막 단풍을 보고 싶어 적상산으로 향한다. 적상산은 1000m가 넘는 산이지만 오르는 등로는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아 한결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적상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 흔적과 아픔이 많은 곳이구나! 직감한다. 산 중간 8부능선에 직벽의 암릉이 적상산 주위로 빙둘러 있어 천혜의 요새를 형성하고 산 정상에는 너른 분지로 된 경사면이 많아 군사적 요충지대 요소를 잘 갖추고 있었다. 마치 진안 천반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넉넉한 정상 산줄기를 따라 걷는 길은 힐링길이다. 단풍은 이미 지고 마지막 자취를 달고 있었지만 하산 중에 들린 안국사부터는 울긋불긋 진한 단풍을 만날 수 있었다. 안국사 절집 규모가 제법 컸다. 오랫만에 절집 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적상호수전망대를 거쳐 송대계곡을 내려오는 하산길에 만난 노란 단풍은 황홀 그 자체였다. 마침 오후 햇빛에 빛나는 노란 단풍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기분 좋은 산길을 선물한다. 힐링이다.

   

 

5. 산행 추억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덕유산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 후 단체 인증

 

예향천리 백두대간 마실길 안내판

 

 

단풍으로 물들은 서창마을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모두들 단풍을 향하여

 

서창 마을에서 올려다 본 적상산 향로봉

 

 

마을 입구에 황국이 우리를 반긴다.

 

마을에서 올려다 본 적상산! 서쪽 8부 능선은 직벽 암릉으로 천혜의 요새이다.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지-의병장! 눈이 번쩍 뜨인다. 임진왜란 의병장 장지현 장군!

 

의병장 장지현(張智賢 1536~1593)의 자는 명숙(明叔)이고 호는 삼괴(三槐)이며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의 아들로 충청북도 영동읍 매천리에서 태어났다.

장지현 의병장은 1590년(선조 23) 지략(智略)으로 천거를 받아 전라도 병마절도사 신립(申砬)의 부장(部將)이 되고 이듬해 감찰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을 인정받아 비장(裨將)으로 발탁되어 이듬해 부하 2천 여명과 황간의 추풍령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고, 영동의 화암서원(花巖書院)과 무주의 죽계서원(竹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장지현 장군 순절비와 사당은 출생지인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의 전적지에 있고, 묘는 무주군 적상면 서창마을 입구에 있으며, 사당은 자손이 살았던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모셔져 있다.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槐木里)의 명칭은 장지현 장군의 호가 삼괴이고, 3그루의 괴목나무를 심어 괴목리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서창소나무!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소 아래에 아담한 자태로 품격을 뽐내고 있다.  

 

건강하고 싱싱히  잘 자라고 있다. 수령 400~42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써 주변 식생과 잘 어울러져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대체로 생욕이 왕성하고 둘레가 250cm 높이 8m 정도의 아담한 크기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적상산성 서문으로 통하는 사천리 서창마을 동쪽 어귀에 서식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새운 장지현 장군 묘 앞에 위치, 일명 장군송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한참을 올라오면 본격 산행 입구가 나온다

 

서창공원지킴터에 세워진 덕유산국립공원 안내도

적상산을 중심으로 덕유산국립공원 적상지구로 이곳부터 국립공원으로 접어 든다. 

 

입구에서 아름다운 단풍나무 군락지를 만났다.

 

서창탐방지원센터에서 향로봉으로 향하는 국립공원 입구이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오면 계곡을 만난다. 조그마한  목교를 건너다 독특한 암릉층을 보았다. 다층 표면의 형태로 보아 자갈층이 퇴적암으로 변했나 보다. 먼 옛날 덕유산을 비롯한 이곳 지형이 융기되면서  형성된 퇴적층이 오랜 풍화에 씻겨 직벽 암릉을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이미 적상산 전체는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단풍길을 걷는 마음이  즐겁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한다. 나이탓인가?

 

동행한 여산우님들이 단풍길을 축하 해준다.

이런 추억이 있어 단풍길이 즐겁다. 이 가을! 늘 건강한 마음으로 노오란 단풍길을 걷는다. 이런 저런 마음속 쌓인 일상의 찌거기들을 비운다. 불필요한 욕심의 흔적을 비워낸다. 이 아름다운 단풍을 받아드릴 수 있으려면~ (동화나라님 작품)

 

동화나라님이 아름다운 단풍길 추억을 잘도 담아주신다. 늘 감사한다.

 

온 천지가 노오란 단풍으로 물들었다. 마음이 환해진다. 이 순간만은 이 아름다운 풍광에 푹 빠진다. 행복하다.

  

서창마을에서 1.4km 지점을 통과한다. 아직 향로봉까지는 2.1km가 남았다. 

 

노오란 단풍이 늦가을 햇빛에 더욱 아름답다. 그 본연의 모습으로 빛난다.

사실 단풍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기존 잎파리를 버리는 작업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려고 싱싱한 자기 잎파리를 버리는 고통의 시간이다. 녹색 엽록소가 잎파리에서 빠져나가면 이렇게 노오란 색깔의 잎파리가 남는다. 빨간 단풍도 마찬가지다.   

 

엽록소가 빠져나간 단풍은 고유의 색깔로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매말라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무 가지에서 뚝 떨어진다. 바람결에 스치면서~ 그 순간 나무는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일부를 떠나 보내는 아픈 마음이 우주 저 창공을 넘어 메아리친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자연순환 법칙에 순응하는지도 모른다. 딩구는 낙엽이 다시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거대한 자연순환 법칙 말이다. 내년 새 봄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는 아픔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위대한 아픔이여! 새로운 생명은 이런 아픔을 통해서만 탄생하나보다. 생명이나 환희나 무엇이든 고통 없이 오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보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기쁨은 기쁨이 아니다. 고통과 기쁨은 따로가 아니고 하나인지 모른다. 기쁨이 고통이고 고통이 기쁨인가? 

 

 

한참을 올라왔나. 거대한 암릉들을 만난다. 적상산엔 이렇게 8부 능선에 직벽 암릉이 많다. 

 

무주 적상산은 1000m가 넘는 산으로 급경사 비탈능선을 가지고 있지만 산길은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참을 올랐나 숨이 찰 무렵 쉼터가 운치 있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에 시름을 잊는다.

 

계속된 오름길에 노오란 단풍으로 흠뻑 젖는다.

 

 

장도바위

고려 말 최영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깍아 세운 암벽에 띠를 두른 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장상에 오르게 되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절벽 같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자, 최영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 하여 장도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장도바위 인증

 

예전엔 저 바위 틈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는데 국립공원에서 새로 안전한 데크길을 만들어 놓았다.

 

주변은 온통 깍아지른 바위들이다.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산성을 쌓았나 보다. 전국의 산성은 대부분 이런 깍아지른 암벽을 이용하여  산성을 구축하고 국가 변란에 대비하여 요새화 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군사요충지이다. 

 

적상산성 서문지이다. 적상산성은 동서남북에 출입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서문이 있는 자리이다. 

 

산성이 구축되었을 때는 2층 3칸의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무주 적상산성은 적상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창리, 포내리, 괴목리, 사천리 등 4개 리에 걸쳐 있고 적상산 위의 분지를 애워싸고 있는 절벽들을 이용해서 석성을 쌓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구축 연도는 고려 중엽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축성 방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백제에서 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  멸망 후 방치되었다가 고려 중기 거란과 왜구 침입으로 다시 백성들의 피란처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조로 와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요지가 되었으나 경술국치(1910) 이후 사고는 폐지 되고 그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성벽 일부의 보존과 함께 유지가 남아 있다.

 

무주 적상산성 서문지 사적 제 146호 표지석

 

지금이야 선조들의 자취를 보고 노오란 단풍에 낭만스럽게 이길을 지나지만, 처음 이 산성을 축성한 백제 백성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이 험준한 직벽 암릉 위로 이 많은 돌들을 주어다 석성을 쌓았으니 그 수고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죽으나 사나 이 고통스런 노동을 감당한 사람은 이 일대 일반 백성이나 천민이였을 것이니!  그들 어께에 부르터진 피멍들의 아픈 하소연이 가슴 절절히 후벼파고 든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 긴나긴 세월 동안 수 많은 국가 변란에 이 강토가 지켜지고 있지 않는가? 숙연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걷는다. 

  

무주 적상산성 석성이 가을 낙엽과 어울러져 고즈넉하다.

 

산성 안으로 접어 들면서 산의 정상은 분지 같이 경사면이 완만하고 산길은 평지길이다.

 

서창마을에서 2.4km 지점을 지난다. 향로봉은 1.1km 더 가야 한다.

 

 

완만한 분지는 마음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한다. 이미 유명한 적상산 붉은 단풍은 옷을 갈아 입고 지고 없다. 

 

마지막 적상산 능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향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향로봉까지는 0.7km 이다. 이곳에서 향로봉을 찍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서창마을로 내려가는 사람을 위해 국립공원에서 2.8km 붉은 이정표를 세웠다. 우린 향로봉으로 향한다.

 

향로봉 가는 길은 이렇게 평지이다. 저기 나무가지 사이로 향로봉 정상이 보인다.

 

 

드디어 향로봉이다. 해발 1,024m 이다. 적상산 정상인 기봉(1,034m)은 출입통제 구역이다. 그래서 일반 산꾼들에게는 이곳이 적상산 정상 역할을 한다.

 

 여러 각도에서 무주 적상산 향로봉 추억을 담는다.

 

동화나라님이 담아 주셧다.

 

함께한 대원들과 인증 샷

 

 

다시 돌아온 갈림길 삼거리! 이제 안국사 방향으로 안렴대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평지 같은 안부를 걷는다. 편안하다. 죽은 참나무에 그루터기가 심한 나무를 만난다. 일종의 나무로 보면 암덩어리이다. 안스럽다. 건강을 잘 챙겨야지!!! 괜한 생각일까?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적상산 정상 단풍은 그 시기를 다하고 낙엽으로 딩군다. 단풍이 절정이였을 때는 참으로 장관이였을 것 같다.

 

편안한 힐링길이다.

 

안렴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우린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안렴대를 보고 다시 돌아와 적상산 정상 기봉을 가보리라

 

 

안렴대 가는 중간에 조망터가 있어 적상산 향로봉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을 남긴다.

 

함께한 대원들과 함께 추억 한장

 

조망터에서 바라본 적상산 향로봉

 

적상산은 붉은 단풍으로 갈아 입고 서서히 아래로 내려 가고 있다.

 

안렴대이다. 

적상산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낭떨어지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시대 거란이 침임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러지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1636~1637) 때는 적상산사고실록(이조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조왕조실록을 여러 본 카피(필사)하여 전국 여러 곳에 분산 보관하였다. 국란이 있어 한 곳의 실록이 없어지더라도 다른 곳의 신록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최근 카카오의 서버 화재로 일시에 정보를 관리하지 못한 일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안렴대에서 덕유산 향적봉을 배경을 추억을 담는다.

 

적상면 들녁과 운장산 방향의 산그리매

 

오랫만에 찬찬님이 오셨다. 찬찬님은 작년에 내가 원산우회 회장을 맡았을 때 총무를 맡아 굳은일 좋은일 마다 않고 참 잘해 주셨다. 반갑다. 반가운 기념 한장을 남긴다.

 

 

적상산 안렴대에서 왼쪽 덕유산 향적봉과 구천동 방향의 산줄기 들이 너무 아름다워 한장을 남긴다.

 

핸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하여 이 아름다운 풍광을 길게 담아 본다.

 

파노라마로 잡은 풍광!

 

덕유산 향적봉방향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번 더 담는다.

 

 

다시 돌아온 안국사 갈림길이다. 우리는 적상산 정상을 가기 위해 곧장 이 갈림길을 지난다.  

 

안국사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 간다.

갈림길로 다시 돌아왔다. 적상산 정상 기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적상산 정상 기봉으로 가는 길은 출입금지다. 금지선을 넘는다. 양심을 판다. 부끄럽다. 국공에게 걸리면 벌금이다. 그러나 산꾼에겐 어쩌랴! 적상산 정상 기봉을 기어이 가봐야 하겠는데~ 에라 모르겠다. 금지선을 넘었다.

 

적상산 정상 기봉은 나즈막한 언덕이다. 저곳이 적상산에서 가장 높은 1,034m 정상이다. 정상에는 통신시설이 있다. 그래서 출입금지인 것 같다.

 

양심을 버리고 적상산 정상 기봉을 밟는다. 적상산 정상에는 장상석이 없고 정상임을 표지하는 나무로 된 정상목이 세워져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선행자들의 흔적이 외처롭다.

 

이곳 갈림길을 통과할 때 먼저 적상산 정상을 들렸다가 안렴대로 가는 것이 좋았을텐데! 안렴대로 바로 가는 바람에 다시 이곳까지 돌아와야 했다. 후행자는 이곳에서 적상산 정상 기봉을 보고 안렴대로 가길 바란다. 적상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출입금지임을 명심하라!

 

  

안렴대로 가는 길

 

적상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

 

안국사로 가는 길! 우리는 이 길로 안국사를 향해 간다.

 

고즈넉한 안국사로 가는 이정표이다. 안국사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사람은 이 길을 택해 가면 좋을 듯하다.

 

안국사에는 붉은 단풍이 활짝 폈다. 황홀하다.

 

동화나라님은 아름다운 단풍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안국사 단풍

 

절정에 있는 안국사 단풍길

 

절집과 붉은 단풍이 절묘하게 아름답다.

 

절집과 붉은 단풍

 

인증 

 

맘씨 좋은 동화나라님이 작품을 만들어 준다.

 

행복한 순간이다. 아름답다. 적상산 단풍을 정상에서는 못 보고 안국사에서 만났다. 

 

절집과 붉은 단풍

 

절집과 붉은 단풍

 

절집과 붉은 단풍

 

절집과 붉은 단풍

 

절집과 붉은 단풍

 

절집과 붉은 단풍

 

안국사 극락전! 오랫만에 안국사 절집 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안국사 절집의 자세한 내용은 절집이야기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단히 극락전으로 안국사를 마감한다.

 

 

안국사 극락전 뒤들에 붉은 단풍이 그야말로 붉게 물들었다.

 

 

안국사 극락전 뒤 붉은 단풍

 

안국사 극락전 뒤 붉은 단풍

 

 

안국사 극락전 뒤 붉은 단풍

 

안국사 삼신각 옆 붉은 단풍

 

안국사 삼신각 옆 붉은 단풍

 

안국사 삼신각 앞 붉은 단풍

 

안국사를 나와 일주문으로 향하는데 남쪽 적상산성이  바로 앞이다.

 

안국사 앞에  있는 사적 제146호 적산산성 표지석

 

안국사 일주문 "국중제일정토도장"

 

적상호수 전망대로 향한다. 이곳은 차도이다.

 

차도를 따라 길게 붉은 단풍이 예쁘게도 피었다. 올해 붉은 단풍 구경은 안국사에서 다 한 것 같다.

 

안국사 차도길 붉은 단풍

 

안국사 차도길 붉은 단풍

 

적상호수 전망대 가는 길에 호수 주변에서

 

붉은 단풍을 만난다. 동화나라님 작품

 

 

적산호수 전망대에서 다시 돌아와 이제 치목마을로 가는 삼거리에서 송대푹포를 거처 치목마을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안국사 부도군을 만났다. 청운당과 봉골탑은 숙종43년(1717)에, 월인당 대사 영골탑은 영조 26년(1750)에, 보운당 사정탑은 영조29(1753)에 각각 세워진 것이다.

 

 

 

 

치목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

 

하산길엔 노오란 단풍이 절정이다.

 

아늑한 산길은 그리운이 그립기만 하다.

 

단풍은 그 아름다움을 입고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노오란 단품 (동화나라님 작)

 

노오란 단풍 속으로 들어간다.

 

 

하산길 노오란 단풍

 

 

이곳도 8부 능선에서 직벽 암릉이 있다.

 

 

송대폭포

 

좁은 협곡사이로 물줄기가! 송대 폭포이다.

 

 

남쪽에는 이런 협곡을 비롯한 직벽 암릉이 넓게 펼쳐저 있다. 

협곡 절벽

 

협곡 안쪽으로 깊게 들어와 보았다. 송대폭포이다.

 

 

송대폭포를 지나 하산길 나무가지 사이로 직벽 암릉이 길게 보인다. 이곳 적상산은 이렇게 산 주변에 직벽 암릉이 즐비하여 이를 이용하여 산성을 구축하고 국란을 이겨낸 곳이기도 하다.

 

드디어 치목마을 적상산 산행 종점에 도착했다. 

 

산행 종점이지만 이곳에서 출발한 사람에게는 이곳이 입구이다.

 

치목마을로 향하는 마을길

 

마을길 너머 덕유산 자락에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덕유산도 단풍으로 물들고 있네!

 

적상 치목마을 버스정류소

 

치목마을 안쪽

 

치목마을 노인정과 쉼터

 

치목마을 비닐하우스 너머 산 자락에 붉은 단풍을 마지막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처음 와본 적상산이만 초입에서 의병장 장지현 선생을 만나고, 서창소나무의 고품격과 장도바위 위용을 만나고, 적상산성과 안렴대 실록 산실 등 역사 문화적 숨결을 만나고, 안국사 절집 삼매경과 붉은 단풍을 만나고, 하산길에 오후 햇살에 빛나는 노오란 단풍에 빠진 힐링 그야말로 힐링 하루다. 몸은 피곤해도 맘은 하늘을 난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