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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트레킹길/해파랑길

2025.12.25. 해파랑길 14코스(포항 호미곶 - 구룡포)15.3km

by 하여간하여간 2025. 12. 25.

○ 누구랑  : 광주지오트레킹(회장 김명수)

○ 걸음 : 호미곶 해맞이광장 - 다무포 하얀고래마을 - 석병2리 - 한반도 동쪽땅끝공원 - 삼정섬 - 구룡포 주상절리 - 일본인가옥거리 - 구룡포항 공영주차장(구룡포파출소 지나 100m)  : 15.3km

해파랑길 14코스는 구룡포항에서 호미곶까지 15.3km이다.
오늘 우리는 호미곶에서 시작하여 구룡포까지 역방향으로 걷는다.

○ 해파랑길 14코스로 향하면서

2025년을 마무리하는 12월 끝자락 크리스마스 날(25일)에 해파랑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포항 호미곶 14코스를 걷기로 했다.
교인들은 예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교회로 가는 날인데 나는 그냥 즐거운 날로 늘 보냈기에 올해는 특별히 연말 여행이라 생각하고 광주에서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포항 호미곶으로 향한다. 호미곶은 우리나라 동쪽 땅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이기에 겨울철 특미를 맛볼 수 있는 기대도 함께 한다.
이른 새벽 5시 30분에 광주를 출발 무려 3시 30분을 달려 포항 호미곶에 도착 아름답고 확 트인 동해바다에 흠뻑 빠져볼 생각이다. 기대되고 설렌 여행이다.

○ 해파랑길 14 코스

대게와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항에서 시작한 코스이다. 구룡포항 일본인가옥거리에는 아직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시종일관 바다를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일출 명소 호미곶에 이른다.

해파랑길 50개 코스 중에서 5개 명품코스 중 하나인 14 코스는 해안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주상절리와 해수욕장, 그림 같은 포구를 보고 걷기에 지루함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 부근, 호수 같은 영일만을 업고 있는 포항의 1경인 호미곶은 한반도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제일 명당이라 하였고,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한반도를 묘사하면서 일출 제일의 이곳을 조선십경의 하나로 꼽았다.


○ 해파랑길 14코스 출발

호미곶해맞이광장 도착 단체 기념

14코스 종점, 15코스 시작점 호미곶 안내 현 위치

해파랑길 14-15코스 안내 인증

○ 호미곶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동해면, 호미곶면에 속하며 서쪽은 영일만, 동쪽은 동해에 접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며, 호미곶 등대로도 유명하다.

호미곶 해맞이광장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

포항 호미곶은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의 배경지로 유명한 한반도 최동단 해맞이 명소이다. 이곳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신라 시대 설화로 연오랑(또는 연도랑)은 동해 바닷가 어부의 아들로, 세오녀(또는 세도여상)는 용왕의 딸이다. 이 둘이 사랑에 빠져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로,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동상이 있다.

전국 최대 가마솥

이 가마솥은 2004년 1월 1일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이곳 호미곶에서 개최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 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새해 아침에 직접 떡국을 끓여 먹는 체험 행사용으로 특수 제작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솥입니다.

○ 상생의 손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은 오른손이고 높이 8.5m 무게 18 ton

광장에 있는 손은 왼손 높이 5.5m 무게 13 ton

상생의 손은 호미곶 광장에 위치한 기념물로 인류가 화합하고 화해해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호미곶 상생의 손에 손맞춤을 하고

○호미곶 등대

호미곶 느린 우체통과 등대

이 등대는 대한민국 광무 5년(1901년)에 일본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의 팔각형으로 서구식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기초에서부터 중간 부분까지 곡선을 그리면서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며, 다른 고층건물과는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등대 내부는 6층으로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럇꽃 모양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2022년 세계등대유산 호미곶등대

호미곶 등대는 날렵하게 위로 솟아오른 외곽선, 정교한 박공지붕, 오럇꽃 문양의 천장, 이중벽 구조 설계로 신 고전주의 미학, 구조적 안전성 그리고 대한제국 등대로서의 정체성들을 통해 등대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2022년 IALA 세계등대유산이다.


호미곶 호랑이상


○ 출발

동해 바다 날씨는 화창하고 싱그럽다.

파도

확 트인 수평선

갈매기의 꿈

은빛 윤슬

설렘

환희

반가움

파도를 따라

비상

여유로움

기쁨

벅참

왠지 모를 눈시울

떠나간 그리움

감사

대보1리 항구

대보1리

대보1리 항구

육각 쉼터

돌아본 대보1리 항구

격정

열정

사랑

너그러움

휴식

해녀 화장실

해녀 화장실 내부

이제 이 화장실을 이용한 해녀는 없다.

동해 해파랑길 추억 한 장

갑작스러운 우회도로 안내를 따라 차도인 호미로 까지 걸어 우회한다.

우회노선 끝지점 현 위치

우회노선 현 위치에서 다무포 고래마을을 향하여

강사 2리 마을을 향해

강사 2리 표지석

강사 2리 마을회관

낭만

우정

후미대원들

다무포하얀마을 표지

과메기 말림

다무포 마을

고래가 머무는 다무포하얀마을

다무포고래마을

흰고래의 희망

고래의 푸른 꿈 동해바다로~

○ 고래마을

고래가 머무는 다무포하얀마을

강사2교차로 점심

다무포 쉼터

새로움

포근히

기대

희망

탄성

언니 동생 늘 고마움

나눔쉼터

석병2리 어촌계 자율관리어업공동체

오징어의 꿈/가오리의 꿈

꿈은 무슨 꿈! 죽어 서러운데
그래도 한때는 동해바다 왕자가 되어 주름잡던 시절

동해의 행복한 푸른 꿈을 꾸었지

이제 이렇게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니 천당에라도 갈려나 극락에라도 갈려나
  

돌아본 해파랑길

동쪽 땅끝마을 석병리

대한민국 육지 동쪽 땅끝마을 전망대

구룡포읍 석병리 대한민국 동쪽 땅끝 현 위치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섬을 제외한 대한민국 최동단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로 표기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바다라는 전설을 품고 있는 구룡포 그 끝에  위치한 석병리는 긴 해안선의 깎아 놓은 듯한 기암절벽의 모습이 마치 병풍을 세워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민국 최동단에 위치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해맞이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동쪽 땅끝 기념탑 인증

이곳 동쪽 땅끝 기념탑은 중간에 해수양식장(제이에이치수산)이 있어 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 그냥 지나가기 너무 아쉬워 출입금지 금줄을 넘었다. 약간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 비난을 감수하고 나는 죽기 전에 꼭 한반도 최동단 땅끝을 밟아 봐야 할 것 같다. 너무나 간절하기에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리라. 그냥 해수양식장을 가로질러 한반도 최동단 땅끝을 밟았다. 시원하다. 가슴 벅차다. 환희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이 따가워 잠깐 인증 사진을 찍고 물러난다.

한반도 동쪽 땅끝 기념탑

지리적으로 이 귀중한 곳을 양식장으로 가로막는 일은 참으로 분통 터질 일이다.

포항시에서 별도의 통로를 만들어 꼭 한반도 최동단 땅끝 기념탑을 알현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동해 양식장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원래 암반이었던 곳을 사각형 박스 모양으로 깎아내어 깊은 저수지를 만들고 그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하여 동해 어류를 양식하는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남해나 서해에서는 바다 한가운데 그물로 사각형 망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어류를 양식하는 것과 사뭇 다른 모양이다.

한반도 동해 땅끝 기념탑이 있는 곳이 마치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암초 같이 보이지만 원래는 육지땅으로 한반도 최동단 땅끝이었다.

땅끝마을펜션 고미곰탕

이곳에서 곰탕 메뉴에 점심을 드신 회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

석병1리를 향해서

해파랑길은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일출로를 따라 오르다가 김판수과메기 회사 지점에서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출로 210번길과 204번길을 따라 석병1리 마을로 향한다.

석병1리 마을 해안

포항 석병1리 어촌 마을

이곳 마을은 "갯마을 차차차"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마을이지만 많은 마을 거주민들이 쓰레기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어요.
멋진 바다를 보러 오신 방문객분들, 다음 방문객들과 주민들을 위해 지켜주세요.

- 지정된 장소에 쓰레기 버리기
- 수산물 무단 채취하지 않기
-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다 즐기기

오죽하면 이런 안내문이 걸렸을까? 힐링한답시고 자동차로 쌩하고 와서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고 해산물 무단 채취하고 고성방가 시끄럽게 하고 쌩하고 가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GNP 3만 5천 달러 국민답게 선진국 수준의 품격을 지켜야 할 때이다.

멀리 삼정리 포스코수련원이 보이고

석병1리 마을 앞 해수욕장을 지나

석병1리 마을 앞 해안 방파제에 '우리 ○○마을로 상상하다.'

옛 마을길을 지나

석병1리 두일포 해안을 지나

갈매기가 한가로이 놀고 있는 해안에

포스코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다.

포스코수련원 안에 있는 바람개비 설치 작품

포스코수련원을 지나

시원한 해안길을 걷는다.

동해안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각

동해안 풍어제는 동해안 어촌 마을에서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전통 제사로, 별신굿 형태로 행해진다.

동해안 별신굿은 최소 1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무당이 주관하는 용왕굿, 심청굿, 손님굿 등이 중심이며, 며칠간 이어진다.

마을 어촌계가 주최하며, 뱃노래와 꽃노래로 신을 즐겁게 하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삼정3리 어촌계 사무실을 지나

삼정섬이 보이는 삼정3리 방파제

삼정2리 앞에 있는 삼정섬(관풍대)

삼정섬은 동해안에서 드문 소나무 숲이 자생하며, 바람이 맑고 달 밝은 밤에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과거 태풍 피해로 일부 시설이 훼손되었으나, 최근 관풍교를 설치하여 통행이 가능해졌다.

동화나라님은 벌써 다녀오신다.

삼정항 표지

삼정항

삼정1리 삼정리 마을 표지

멀리 언덕 위에 제각이 있다. 용왕당일까? 서낭당일까? 성황당일까?

☆ 제각과 사당의 차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는 주로 제각에서 지내며, 사당은 조상이나 성현을 모시는 곳으로 구분된다. 제각은 마을 수호신이나 산신 등을 대상으로 한 공동 제사 공간으로, 마을 전체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역할을 한다.

해안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해송이 애처롭기보다 강인하게 보인다. 깊고 험난한 동해안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해안 사람들의 강인함과 같다. 소나무나 사람이나 처해진 환경을 이겨내며 질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매 일반이겠지?

갈매기 때가 볼만하다.

구룡포 주상절리

구룡포 주상절리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 위치한 자연 지형으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암석이다. 이곳은 용암이 분출되다 멈춘 듯한 형태로, 다른 주상절리와 차별화된 모양을 보여준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빠르게 식으며 생긴 5~6각형 기둥 모양 암석으로, 여기서는 화산 폭발 직후 멈춘 듯한 세로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제1전망대(벤치와 소공원)와 제2전망대(데크로 가까이 접근 가능)에서 관람하며, 물이 맑아 바다 아래가 보인다.

절리는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 판상절리와 주상절리로 나뉜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굳는 속도에 따라 단면의 형태가 사각형 내지 육각형의 다면체 돌기둥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화산암 암맥이다. 응결응회암 등에서 주로 생긴다.

주상절리 방향은 냉각이 진행되는 방향과 일치하는데 용암이 지표로 분출하여 급속히 냉각될 때 아래로는 지표면 위로는 공기와 접촉하여 냉각이 이루어짐으로써 형성된다.
구룡포 주상절리는 다른 지역과 달리 화산이 폭발하는 모양을 연상할 수 있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사선으로 용암이 분출하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되어 있어 흡사 당시 용암 폭발 지점과 분출 장면이 그대로 사진에 담긴 듯 멈춰있어 신기함이 그지없다.

구룡포 주상절리 설명 안내

제1전망대(벤치와 소공원)

구룡포 주상절리 소공원

전망대

포항과학기술고등학교가 보이는 해안 데크길을 따라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를 향하여

구룡포항이 아련하다.

한참을 걸었나 구룡포항에 도착
일본인 가옥거리를 살펴보자.

○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통상장정 이후 일본인이 조선으로 와서 살았던 곳이다. 일본이 구룡포항을 만들고 동해권역을 관할하면서 많은 일본인 어부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조선인들의 어업권을 수탈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이 마을에는 47개의 일본식 목조 건물이 남아있어 2010년 포항시에서는 역사를 기억하는 산 교육장을 만들고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조성하였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10m, 구룡포공원 120m,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450m이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일본풍이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이 건물은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거옥이다. 해방 후 개인주택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을 포항시가 매입•수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내부에는 100여 년 전 모습들이 잘 남아 있으며 당시 생활모습을 다양한 전시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오족지유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변형 또는 오독된 형태로 보이는 표현으로, 불교와 도교 사상에서 유래한 '나는 오직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는 탐욕을 버리고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지혜를 강조하는 말이다.

일본 놈들이 조선을 침탈한 것이 탐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헛웃음이 나온다. 나쁜 놈들  

구룡포의 전설

전시물

안방 생활

화장실

구룡포 엘도라도

일본 가가현의 가난한 어부들의 조선 출어는 1880년~1884년경에 시작되었다.
당시 세토 내해에는 좁은 어장에 많은 어부들이 몰려들어 크고 작은 분쟁이 끓임 없이 벌어졌다.

힘없고 가난한 일본의 어부들은 더 넓은 어장을 찾기 위해 세토 내해를 벗어나 먼 곳의 바다로 향했다. 이들은 더 넓고 좋은 어장에서 만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해를 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 이 체결되면서 일본 어민들은 본격적으로 조선에서 고기를 잡았다.

*조일통상장정 : 1883년 7월 25일(음력 6월 22일)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통상 관련 불편등 조약으로,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의 부칙으로 시작된 무역 규칙을 정비한 문서다.

이 조약은 일본 상인들의 재조선 활동을 확대하며 조선의 관세 자주권을 일부 인정했으나,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해 불평등 요소를 강화했다.

임오군란(1882) 후 조선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일본은 협상을 재개하며 묄렌도르프(조선 재정고문)의 도움을 얻어 체결을 추진했다. 강화도조약의 무관세 문제를 보완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편 수입 금지(제31관)와 방곡령 시 일본 영사관에 1개월 전 통보(제37관). 수출입 관세 규정 설정과 조선 화폐로 납부(제40관), 일본 상인에 최혜국 대우(제42관). 5년간 유효하며, 기존 무역 규칙 폐지.

이 장정은 조선의 개항 후 일본 중심 무역 체제를 공고히 했으며, 이후 갑신정변 등 정치적 혼란의 배경이 됐다. 조선은 관세율을 일부 회복했으나, 일본의 경제 침투가 가속화됐다.

1908년경 가가와현의 가난한 마을 오다 어촌의 어부들과 오카야마현의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구룡포로 이주했다.
구룡포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은 대표적인 일본 어부로는 구룡포 공원 내 공덕비 주인공인 도가와 야스브로와 하시모토 젠기치가 있다. 오카야마현에서 이주한 도가와 야스브로와 가가현에서 이주한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 일본인 이주 어촌의 두 기둥이 되었다.
구룡포의 풍부한 어자원은 일본 어부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황금빛 엘도라도 구룡포는 가난한 일본인 어부들에게 새 시대, 새 삶을 열어 주었다.

구룡포 일본역사관에 안내되어 있는 내용을 읽고 있노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포항시는 정말 반성하고 즉시 내용을 시정해야 한다.

마치 일본의 가난한 어부들이 먼 항해를 해서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고 그들이 꿈을 실현하는 곳이 구룡포이다라고 일본인들의 조선 영토와 어장 침략행위를 미화하고 있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1883년 지극히 불공정한 일본의 일방적 조일통상장정* 체결로 조선 땅을 유린하고 어장을 침략해 간 일본과 일본 어민들을 찬양하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그때 우리 조선 어민들은 황금 같은 어장을 빼앗기고 말 한마디 못하고 속수무책 당한 역사적 아픔을 우리 시각으로 기술해야 함에도 침략자 일본인의 시각에서 영웅시 한 설명은 도대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구룡포의 역사적 아픔을 이렇게 해도 되는가? 다시 묻고 싶다. 구룡포 시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곳에는 역사학자도 없는가? 아니 대한민국 역사학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많은 역사학자가 이곳을 들려갔을 텐데 이대로 놓아두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기분이 더러워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나머지는 볼 필요도 없다.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희희낙락거린 젊은이 들이여! 100년 전 조상들이 힘없는 나라 백성으로 얼마나 억울하게 뺏기고 당했는지 똑똑히 보고 정신들 차려라. 일본은 늘 경계해야 할 이웃임을 똑똑히 알고 살아라.
  

옛 일본가옥 전도

이직 일본인가옥들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힘없는 나라에서 뺏기고 침탈당한 역사적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다시는 일본에게 당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 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거리를 거릴 때
그저 좋다. 새롭다. 일본식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보다 왜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는지? 살펴보고 또 살펴볼 일이다.

일본인 가옥거리

일본인 가옥거리

다음 구룡포 공원을 향해 오른다.

구룡포 공원 입구 계단 돌기둥

이곳 공원입구 계단 돌기둥들은 1944년도 일본인들이 세웠으며 돌기둥은 왼쪽 61개 오른쪽 59개 등 모두 120개이다. 돌기둥에는 구룡포를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패전으로 일본인들이 떠난 이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세웠다. 그 뒤 1960년 구룡포 주민들이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할 충혼각을 세우는 과정에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다시 앞뒤를 돌려 세운 돌기둥에 새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원하다. 시멘트로 기록을 없애고 거꾸로 처 박았으니 말이다.

역사의 흔적은 남기되 그 흔적에서 새겨야 할 역사적 사실을 외지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백성의 입장에서 철저히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구룡포 공원에는 구룡포 충혼각도 같이 있다.

또 구룡포 공원에는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구룡형상 있다.

구룡형상물 앞에서

ㅋㅋ 지나간 분에게 부탁했는데 너무 하다. ㅋㅋ 하필 이럴 때 찍히다니~

구룡포 공원 구룡형상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대단한 모양이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이 비는 일본인 '도가와 야스브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라고 한다.
'도가와 야스브로'는 일제강점기에 구룡포 방파제 축조와 도로개설 등에 관여한 사람으로, 일본인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일본에서 규화목을 가져와 해방 전인 1944년 경에 송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송덕비는 패전 후 일본인들이 돌아간 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하여 현재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다.

송덕비 문구가 지워졌다. 때려 부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도록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구룡포 파노라마

구한말 - 일제강점기 - 1960~1975 - 사진 속 구룡포를 연대별로 잘 정리하여 놓았다.


○ 충혼탑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신명을 바친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의 바탕 위에서 이룩되었다.
이곳 충혼탑은 6.25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을 수호하시다 장렬히 산화하신 포항(당시 영일) 지역 출신 전몰군경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0년 건립하였으나 당시 열악한 재정상황 등으로 탑신의 받침대가 일제강점기 일인들이 설치한 구조물로 그 위에 충혼탑이 설치되어 오다가 2007년 9월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재건립된 현충시설물이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치신 호국영령 앞에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 가슴속에 아로새겨야 하겠다.

○ 충혼각

이 충혼각은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60년 건립하였다. 충혼각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산화한 포항(당시 영일) 지역 출신 전몰군경을 비롯해 23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매년 현충일에 그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구 충혼탑 기단, 신사터 및 쵸우즈야

이 구조물은 '제국재향군인회'라는 명문을 지우고 '대한군인유족회'라고 다시 새겨 구 충혼탑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뒷면의 '소화'라는 연호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현재 용왕당을 신축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대정2년(1913) 이라 적힌 초석과 신사를 참배하기 전 선을 씻는 쵸우즈야가 발견되었다. 또한 포탄모양의 돌조각도 발견되었는데 일본인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승리를 위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용왕당 신축 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쵸우즈야

용왕당

이 용왕당은 구룡포 어민들의 풍어와 안전조업을 기원하기 위한 제당이다. 일반적으로 용왕당에는 여신인 '용신할머니', '용왕부인'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구룡포 용왕당은 남신인 '사해용왕'을 모신 것이 특징이다.

용왕당 건물은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하며 건립했던 신사를 철거하고 1956년 건립하였다가 건물이
낡고 노후가 심하여 2008년 철거하고 새로이 한옥 건물로 신축하였다.

다시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로 나와서

일본인 가옥거리와 작별하고

과메기와 대게로 유명한 구룡포 아라광장으로 왔다.

과메기문화거리 아라광장

온통 대게거리다.

과메기 문화거리에 해파랑길 14코스 종점이 있을 텐데 과메기에 막걸리 한잔 하느라고 찾지를 못했다. 아쉽다. 다음 13코스를 걸을 때 꼭 찾아봐야겠다.

○ 구룡포항

구룡포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부두를 만들고 방파제를 쌓으면서 항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이다. 하역능력이 33만 4,000t에 달하는 곳이다. 바로 근처에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어 일본의 전통 가옥을 볼 수 있고, 구룡포 시장도 가까워 지역 시장의 정겨운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특산물인 과메기를 판매하는 곳이 많고, 전국 최대의 대게 산지로 알려진 곳이어서 질 좋은 과메기와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 구룡포의 유래와 전설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령이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구룡포 6리 (용주리)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큰 바다에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거대한 용 열 마리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러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이후,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고 한다.

또 다른 전살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 깊은 소가 있었는데 이 소 안에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승천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해파랑길 14코스를 마무리하면서

동해의 매력은 확 트인 푸른 바다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끝없이 철석이는 흰 파도이다. 망망대해 동해를 바라보며 은빛 찬란한 윤슬의 매력은 덤이다. 오늘도 이런 매력 덩어리 해파랑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미곶 해안을 걸었다. 참으로 멋진 해안을 걸으며 힐링 가득이다.

특히 한반도 최동단 동쪽 땅끝을 내 발로 밟았으니, 그 환희를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가?

1883년 불평등 조일통상장정 체결로 일본인들이 조선을 점령한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와 구룡포 공원에서의 여러 역사적 기념물을 살펴보며 100년 전 힘없는 나라 조선 백성으로 땅과 어장을 빼앗긴 선조들이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했을까? 를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을 경계하며 당당한 이웃으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인 시간 과메기에 대포 한 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