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와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계획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
버스에서 바라 본 한탄강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오랫만에 서울에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그 유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면서 매년 올랐던 산행을 취소하고 올해는 서울에서 새해를 맞는다.
어디를 갈까? 아무 계획이 없다.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다. 지하철1호선을 타고 끝까지 가보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자. 한강을 건넌다. 이미 해는 중천이다. 언제나 처럼 특별하지도 않는데 사람들과 나는 새해 일출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왔다.
버스에서 바라 본 한탄강
용산역 우동집에서 평소 1만원짜리 우동을 먹다가 새우튀김과 새알이 들어가는 1만 4천원짜리 우동을 시켰다. 4천원 차인데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오늘은 나를 위해 최대한 귀한 대접을 하자.
우아한 아침 식사를 느긋하고 여유롭게 조금은 쓸쓸해도 홀가분하게 먹었다. 이렇게 아침을 먹어 본 적이 얼마만인가? 늘 시간에 쫒겨 허둥대는 식사였지않았나? 무엇이 그리 바쁘게 살도록 했을까?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을 그리 죽자 살자 살았나 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나를 위해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다.
◎ 대방역 - 연천역
서울 1호선 마지막 연천역을 알리는 안내
그래 커피도 한 잔 하자. 커피점으로 향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달달하게 시럽을 넣고 느긋하게 연천행 지하철 1호선을 기다린다. 아마 연천은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북쪽일 것 같다. 처음길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백마고지역까지 갈 수 있으려나?
굳이 오늘 여행의 목적을 민족 통일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길 걷기"로 하자. 연천 신탄리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는 평화의길이다. 평화의 길은 코리아 둘레길의 일환으로 DMZ을 경계로 경기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만들어 놓은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민족의 아픔이 서린 한국전쟁의 상흔을 둘러보고 어떻게 남북이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길 바란다.
연천 들녁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백마고지는 철원 땅으로 청정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한 곳이다. 두루미들도 둘러 보고자 한다.
연천역 도착
언제부턴가 이런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무 제약 없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혼자서 그냥 바람부는데로 떠나고 싶었다. 이쯤해서 혼자만 호사를 부린 것 같아 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살면서 가족에게도 할 만큼 했다. 이제는 가끔 나 홀로 이렇게 나를 위해 그냥 떠나보자.
남도에서는 경기 북부는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여행지다. 서울에 있는 동안 훌쩍 떠나면 갈 수 있는 경기 북부와 강원지역을 돌아다녀 보자. 늘 혼자가는 여행이 초라하게 보이고 뭔가 아쉬워 실행하지 못했다. 언젠가 맘 편한 친구가 있으면 함께하고자 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세월만 부질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라도 떠나자. 커피를 마시는 옆자리에 목포로 떠나는 여행자들이 수다를 떤다. 서울 사람들은 남도로 떠나는 것이 로망인가 보다. 나는 북쪽으로 가고 싶다.
이 나이에 남을 의식하는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아니 의식하고 싶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아무려면 어쩌냐? 어떤 모습이라도 당당하고 자신 있는 나이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당당하지 않으면 무엇이 당당할 것인가? 거짓말 하지 않고 남 괴롭히지 않고 진실하게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내 모습이 어떠한들 당당하지 않겠는가? 연천 들녁 철새에게 물어보리라. 내 모습이 어떠냐고? ㅋㅋ 그녀석들도 활짝 웃겠지? 그래 그녀석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지? 연천 마을 구멍 가계에서 철세가 좋아하는 빵부스러기나 뭐 어떤 것을 사가지고 가야지?
연천역 3번 출구로 나와서
꿈을 꾼다.
훨훨 날으는 철새 날개 위에 앉아 북녁 땅 곳곳을 둘러보는 꿈을 꾼다. 걸어서 오르고 싶었던 북녁땅 백두대간도 둘러보고, 걸어서 백두대간을 타고 오르고자 했던 금강산도 이제 둘러봐야지. 서산대사가 만년에 수행했다는 묘향산도 둘러봐야지. 초등학교 때 늘 사회과 부도에 나오는 개마고원은 어떤 모습일까? 북녁 산하 골짜기 마다 질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동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 옛날 수나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 왔을 때 을진문덕 장군이 적을 모두 수장시켜 대승을 거둔 살수대첩 청천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는지?
연천역에서 출발하는 시간표를 확인한다.
집으로 되돌아 가려면 오후 5시 36분 지하철을 타면 좋겠다.
오랫만에 이어폰을 끼고 요새 유행하는 한일가왕전 가요를 듣고 가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위로 받고 싶은 것이 있다. 열심히 살지만 잘 안되는 것이 허다한 것이 인생 아니던가? 아무리 애써봐도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상처 받고 슬프고 외롭고 가슴 답답할 때 누군가의 어께에 기대어 보고 싶고, 누군가 따뜻한 품에 안기어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은 늘 그렇게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하다. 꼿꼿하면서도 흐느적거리고 흐느적 거리면서도 꼿꼿히 서서 바람이 불면 뚝 뿌러지기도 하고 이리 저리 휘어지기도 한다. 대중가요를 들어며 가슴을 후벼파는 유행가 가사와 맘을 휘어 잡는 멜로디에 순간 순간 자신만의 사연으로 위로를 받는다. 이 시간이 참 좋다.
연천역내에 있는 연천군 관광안내도
청량리를 지나면서 부터 기차 안이 텅빈다. 서서히 도심을 빠져나가나 보다. 하늘이 보인다.
엄마 엄마는 왜 그리 자식들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가? 며느리 흉 좀 보지마소. 자식들이 이런 저런 불만스런 이야기를 하면 듣고 잘 조정하고 자식들이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부모 역할 아닌가? 늙으막에 어머니는 늘상 큰 형님이 서운하게 한다고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며느리가 구박을 한다고 또 서럽게 울었다. 아들 녀석들이 서운하게 한다고 오살할 놈들이라고 악다구를 쓰면서 뱃심있는데로 욕을 퍼대곤 했다. 그러다가 또 눈물을 훔친다. 막둥이로 엄마의 서러운 맘을 모르는 일은 아니지만 똑같은 역정을 하루에도 서너번씩 들어야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들어주기 곤혹스러워 한마디 한 것이 또 엄마의 서러움 항아리를 깨뜨렸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가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냐? 아이고 서러워라. 새끼도 다 소용 없다. 이 억울한 세상을 어찌 다 말할꼬. 내 애간장을 누가 다 알아줄까? 아이고 내 신세야. 눈물 콧물 흘리다가 이내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른다.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던 때는 주먹으로 앞 가슴을 마구 치면서 그 설움을 이겨내곤 했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가족묘로 이장을 할 때 유난히 앞 갈비뼈만 시커멌던 모습에 무척이나 죄송하고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울대를 타고 올라와 가슴이 멍멍해 한없이 울었던 어머니다.
연천역내 연천군 주요 관광 명소 안내
그런 엄마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황당하다 못해 그동안 못다한 불효만 생각나 상여 뒤를 따라 가면서 꾸역 꾸역 애고 애고 서럽게 울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서서히 엷어지고 있을 즘
그때는 몰랐다. 엄마의 행동이 왜 그리 부당하고 아이들 같이 행동했던가를~ . 50대에 지아비를 잃고 홀로 살면서 7남매 자식 새끼를 먹여 살리느라 세파에 시달리고, 섬 구석 갯가에서 철석이는 파도 소리에도 애닮은 한을 풀어내지 못한 서럽고 한스러운 세상을 위로 받고 싶었다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사연과 모양은 달라도 세상의 모든 엄마는 또 그렇게 한스런 삶을 살아갈 것이고 또 그런 한스러움을 오살할놈들이라고 험한 욕을 해대며 풀어내겠지?
이제 그런 엄마의 한스런 오살할놈들 타령을 듣는다면
그래 엄마 맘 다 알아. 참 힘들었겠네. 엄마 덕분에 우리가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 고맙고 감사하네. 늘 감사하네. 엄마 하고 싶은대로 하소. 나는 무조건 엄마편이네. 우리는 엄마같이 억척스럽지 못할 것이네 우리 엄마 최고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난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박인로 시인이 노래했지만
떠나고 없는 어머님을 청량리를 지나는 지하철 차창 밖 먼 창공에 그려보는 시간이다. 사무치도록 그립고 보고프고 죄송스럽다.
신탄리 철도 건널목에서 바라 본 고대산
동두천을 지난다.
한때 한국전쟁 후 미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고 지역경제가 사그라들어 지금은 어렵게 지내지만 그래도 동두천은 옛 명성을 그런대로 지니고 있다. 청량산과 소요산 마차산 감악산으로 둘러쌓인 넓은 분지로 경기 북부의 주요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휴전선으로 가로 막혀 그 교통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 통일이 되어 남북으로 철길이 열리고 찻길이 열리면 교통의 요충지가 되고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전곡역이다.
전곡읍은 한탄강이 태극모양으로 휘어도는 지역이다. 차쯤 연천에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곧 한탄강을 지난다. 한탄강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흐르는 강이다. 남과 북이 반절씩 건설한 승일교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리로 한탄강을 가로 지른다.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우고 도읍을 철원으로 정한 것은 한탄강이 철원 평야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고 풍요로운 들녁이 있었기 때문이다. 궁예는 이곳에서 억조 창생을 꿈꿨지만 나중에 관심법이라는 이상한 주문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민심이 흉흉해지고 정신 이상 증상을 일으키면서 부하 왕건에게 나라를 건네주게 된다.
2시간을 타고 연천역에 내렸다. 공기가 상큼하다. 어디로 가지? 한가한 연천역 플렛폼을 나온다. 연천역에서는 노인들만 내린다. 가끔은 가족단위 여행객들도 보이지만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곳도 농촌은 노인들만 사나 보다. 전국 어디고 농촌은 노인들만 살아가니 향후 농촌은 누가 지킬까? 연천역은 새로 최근에 지었나 보다. 건물이 새 것이고 모든 시설이 새 것이다. 더 이상 기차는 달리지 않는다. 연천역이 종점이다. 철도는 백마고지역까지 개설되어 있다. 경원선이다. 백마고지역까지 예전엔 운행했는데 2019년부터 중단했다고 한다. 내년에 재 개통할 예정이란다.
구 연천역사 인증 한 장
연천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를 타면 백마고지역까지 갈 수 있단다. 39-2번 버스란다. 다시 돌아가는 시간표를 확인한다. 여행에는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5시 36분 지하철을 타면 좋겠다. 연천역에는 구 연천역사와 신 연천역사가 공존한다. 옛 증기기관차 문화재가 인상적이다. 연천역사 앞 넓은 광장에는 악기를 들고 공연하는 악사 두분의 조형물이 있다. 평화의 상징이다. 일제가 한반도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개설한 경원선 철도가 이곳을 지나 간다. 그 때 기차는 증기기관차로 보일러에 물을 붓고 석탄이나 장작을 피워 물을 끓여 나온 수증기를 증기로 만들어 엔진을 돌리는 증기기관차이다. 중간에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주는 시설이 남아 있다. 인상적이다.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 경원선
경원선은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로 1905년 착공하여 1914년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총 길이는 223.7km이다. 1899년 대한제국은 철도부설권을 국내 철도용달회사에 주었으나 자금사정으로 착공하지 못하던 중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군사상의 목적으로 일본이 부설권을 강압적으로 요구하여 승인받았다. 군사적 목적으로 일본에 의해 철도가 완성되었으나 경원선의 개통으로 한반도 간선철도가 X자형을 이루게 되어 동서, 남북 간의 물류이동이 원할해 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은 국토 분단으로 인해 용산에서 신탄리 사이의 89km 구간만 운행되고 있다. 실제로는 연천역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 연천역 급수탑
이 시설물은 경원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급수탑으로, 현재 상자형과 원통형 2기가 남아 있다. 상자형 급수탑은 콘크리트조로 기단, 벽체부, 지붕부 3단으로 입면을 형성하였으며, 아치형 출입구를 두었고, 외관에 줄눈을 그려 조적조인 것처럼 구성하였다. 원통형 급수탑에는 급수관 3개와 기계장치가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고, 탑 외부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증기기관차 관련 철도 시설물로 가치가 높다.
연천역 상자형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상자형과 원통형)
경원선 설명 안내
연천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개설된 경원선.
현재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연천역 원통형 급수탑
급수탑 작동 원리
증기기관차 문화재
연천역 신역사.
넓은 광장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조형물이 있다.
평화를 상징한 분위기다.
◎ 연천역 - 신탄리역
연천우체국 앞 버스 정류소
백마고지역을 가기 위해서 연천역에서 39-2번 버스를 탄다. 버스는 신탄리역까지만 간다. 신탄리역에서 부터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구역은 평화의 길이다. 평소 코리아둘레길을 걷고자 했다. 코리아 둘레길은 동해 - 서해 - 남해와 DMZ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반도 가장 자리를 걷는 길이다. 그 중에서 DMZ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둘레길이 평화의길이다. 평화의길 중에서 오늘은 신탄리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를 걸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동두천역에서 신탄리역까지 운행하는 39-2번 버스.
나는 연천역에서 이 버스를 타고 신탄리역까지 갔다.
버스에서 바라본 차탄천
신탄리 마을에 있는 경춘 막국수 집에서 메밀국수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평화의길을 따라 백마고지역까지 걸었다. 막걸리 한 잔에 거나한 마음으로 흐느적 흐느적 한국전쟁 이전의 우리네 선조들의 마음으로 걸었다.
이곳도 사람사는 동네이고 남북 분단이 없었다면 한반도 중심 마을로 얼마나 평화로운 마을이였을까? 적어도 9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그저 땅에서 나온 농작물을 일구고 서로 격려하며 협동하고 철원을 넘나들며 저 북쪽까지도 자유롭게 걸어갔거나 말을 타고 갔거나 달구지를 타고 갔거나 암튼 이웃과 오손 도손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산
지금도 마을은 평화롭다. 지금은 남북 분단의 휴전선이 생겨 대한민국의 변방이 되었다. 어쩐지 전쟁의 상흔이 드리워저 을씨년스럽고 발전의 사가지대에 있는 것 같다.
찰옥수수 생먹걸리를 한 잔 걸친다. 이곳은 경기 북부지역으로 고대산 줄기이며 강원도 산골처럼 밭농사가 대부분이고 옥수수 농사를 주로하는 곳이기에 옥수수 생막걸리 맛이 입맛을 돋군다. 이곳 신탄리는 평화의길이 지나는 곳이다. 경기둘레길인 평화마루길이기도 하고 평화자전거길이기도 하다.
신탄리역
평화길과 평화누리길을 같이 안내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인 연천고대산캠핑리조트 안내
새로운 희망의 바람이 부는 통일을 고대하는 마을이다.
신탄리마을 주변 볼거리
◇ 신탄리의 유래
신탄리는 '새숯막'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전부터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 자원을 목재,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이다. 여지도서에도 신탄이라 적혀 있으며 경원선 철도가 부설된 뒤로는 숯가공이 더욱 번창하였다. 또한 '새숯박'이라는 지명이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 하여 '새술막'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 우리마을(신탄리)은?
우리 마을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60년간 경원선 마지막역이자 철도중단점이었던 신탄리역 주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등산으로 유명한 고대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차탄천이 흐르는 청정지역이다. 우리마을은 향후 경원선 복원 시 북방경제 협력의 중추적 기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희망의 바람이 부는 마을이다.
◇ 중단에서 이음으로 신탄리역
역 이야기 / 38선 이북, 휴전선 이남의 역
신탄리역은 1942년 12월 1일 경원선의 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45년 남북 분단으로 한 때 북한관할로 변경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 7월 1일 영업을 재개하였다. 현재의 역사는 1961년 12월 30일 삼각형 지붕의 전형적인 옛 역사의 형식으로 신축되었다. 역명은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과 숯이 유명했던 마을 이름인 신탄리에서 유래한다. 역사 출구에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넝쿨나무인 다래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이용객의 눈길을 끈다. 역 구내에 있는 '신탄정' 우물은 더운 날씨에 등산객과 여행에 지친 마른 목을 채워주는 남다른 친구이다.
지역이야기 / 철도 중단점에서 통일 이음길로
신탄리역은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사실상 남한의 경원선 종창역이였다. 끓어진 철길과 총탄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은 자리에 1971년 세원진 철도중단점 표지판은 오랫동안 남북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였다. 그러나 2012년 백마고지역이 들어서면서 철도중담점 표지판은 백마고지역으로 옮겨지게 디었다. 신탄리역은 DMZ 평화누리길 12길 통일이음길의 일부인데, 이 구간의 경원선 폐터널 안에서 거꾸로 자라나는 고드름은 겨울에만 볼 수있는 이색적이고 특별한 볼거리다.
신탄리역 내에 걸려 있는 고대산 시/ 남강 고광수
신탄리역 내에 걸려 있는 신탄리 / 이돈휘
산탄리역 내에 걸려 있는 '비무장지대에 멈춰 서 있는 녹슨 철마 '
신탄리역 인증 한 장
고대산 산촌 마을 표지석
이곳으로 평화의길을 따라 간다.
신탄리에서 바라본 백마고지역으로 개설된 경원선.
철마는 달리고 싶다.
◎ 신탄리역 - 역고드름 - 백마고지역(평화의 길)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평화의길 어디에도 전쟁이나 이념이나 충돌이나 그 어떤 긴장도 없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농촌이다. 이런 평화로운 한반도에 어찌하여 이념이 생기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상대의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 죽여 없에서 그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 증오심에 불타고 서로 적이 되어 근 70년을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쟁통에 목숨을 잃은 그 원한을 어떻게 다 말 할 수있겠는가? 한국전쟁 발발의 진실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국가 폭력 앞에 억울하게 죽어간 선량한 국민들의 억울한 죽음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역사 앞에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또 한편으로는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도와서 자국의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 아닌가?
구 경원선은 이곳 신탄리에서 중단되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경원선 철도 중단점
남북이 서로의 이념과 체제를 인정하고 적대적 행위를 하지 말며 서로 경제, 기술, 교육, 산업, 문화, 체육 등의 비 정치적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상호 신뢰와 협력속에 남북 모두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어찌하여 미국의 힘과 러시아의 힘이 필요한가? 우리 스스로 평화롭게 잘 살아가면 누가 우리를 나무라며 싸우라고 부추기겠는가?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협력하여 사회주의 북한도 발전하고 민주주의 남한도 발전하는 서로 상생하는 모델을 전 세계 만방에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이념과 체제가 달라 통일 어렵다면 서로의 체제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협력하여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수 있도록 서로의 백성을 잘 살 수 있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놈의 이념이니 사상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백성들이 어떤 체제든 잘 살면 되지?
중국과도 국교를 맺고 러시아와도 국교를 맺고 지구 정 반대편 국가와도 국교를 맺는데 남북이 무엇이 그리 어렵다고 국교를 맺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서로 전쟁하지 말고 서로 체제를 비방하지 말고 서로 정부를 전복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도와서 남북이 국교를 맺고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아 갈 수있도록 하는 것이 남북 통치자들이 해야할 일 아닌가?
북한의 리더자도 자국의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남한과 국교를 맺고 남한의 앞서간 기술과 경제적 노하우를 배워서 자국의 백성들이 잘 살게 하면 좋은 것 아닌가?
남한도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빌리고, 다른 나라 이주민들이 들어와 산업현장의 노동력을 제공하 듯 북한의 우리형제들이 들어 와서 돈 벌고 그 돈으로 북한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여 북한 주민이 잘 살게 되면 남한도 좋은 일 아닌가? 혹여 통일이라도 할라치면 남북이 경제적으로 비슷한 경지에 도달할 때 통일 경비도 적게 들고 남한도 그만큼 좋은 일이 될 것 아닌가?
남한이 잘 산다고 북한을 무시하거나 무력으로 북한을 제압할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잘 못된 일이다. 반대로 북한도 핵무기를 앞세워 남한을 무력화 시킬려는 허망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떤 경우도 민족간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북한도 불필요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핵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핵이 없어도 서로 적대시 않으면 필요가 없는 것이 핵무기이다. 설령 미소가 전쟁을 하도록 부추긴다 해도 우리 스스로 못 한다고 거부하고 전쟁을 하지 않으면 된다.
서로 으르렁 거릴때 도워주는 척하면서 결국은 전쟁을 하게 하고 결국은 우리 민족만이 목숨을 잃고 건물이 파괴되고 산업이 두 동강이가 나는 것은 뻔한 일 아닌가? 미국과 러시아 백성이 죽고 미소의 건물이 파괴되고 산업이 파괴되는가?
미국과 러시아의 위정자들은 안전 벙커에 앉아서 커피나 마시면서 작전을 하고 있지만 전장의 현장에서 죽어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일반 백성이요 죄없는 우리민족의 귀한 아들 딸 청년들 뿐이다.
제발 이런 무모한 전쟁은 하지 마라. 전쟁을 정 하고 싶으면 두 정상들 끼리 전장에 나와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목숨을 담보로 총질을 하면서 전쟁을 하거라. 지네들 목숨은 귀중하고 일반 백성 목숨은 파리 돼지 만도 못하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을 일으킨 놈은 역사의 영원한 죄인으로 철저히 극형에 처하고 역사에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그 죄값을 전할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걷다 보니 백마고지역에 다 도달한 것 같다.
백마고지역이 있는 율이리는 참으로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다. 철원 5대 쌀이라는 명성에 걸 맞게 청청하고 공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가꾼 친환경 쌀이다. 들녁 논 바닦에는 철새가 때를 지어 먹이 활동을 한다. 철원 들녁을 두루미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두루미의 먹이 활동을 보호하고 있다. MDZ를 남북평화 공동지역으로 설정하고 원시적 생태로 변한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잘 보존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한국전쟁의 아픔이 깊지만 그로 인해 오랫동안 사람 왕래가 없는 탓에 자연 그대로의 생태로 변한 DMZ는 세계에서 보기드믄 생태환경이 잘 보전된 가치가 있는 지역이 되었다.
평화의길 양 옆에 인공 돌탑이 서 있다.
북한군이 쳐들어 오면 양 옆에 설치해 놓은 돌탑을 무너뜨려 탱크의 이동을 지체하고자 한 군사 시설이다.
남북 분단의 상흔이 역력하다.
?
경기도 끝집 고드름 쉼터
도로 주변에 설치된 탱크 차단 돌기둥
해가 서산으로 기울린다.
경원선은 백마고지역까지 개설되었다.
고대산 역고드름 갈림길이다.
고대산 역고드름 설명 안내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고대산 자락에 위치한 폐터널에 일제 강점기 시절 용산과 원산을 잇는 공사로 진행되었던 터널이 일본의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이 탄약창고로 사용하면서 미군의 폭겨을 받게 되었고 그러한 폭격으로 인해 터널 위쪽에 생긴 틈과 독특한 자연현상이 맞물리면서 역고드름이 생성되었다.
길이 100m, 폭 10m의 터널 바닥에는 역고드름 수백 개가 솟아올라 있는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가 매우 다양하며,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볼 수 있다.
평화누리쉼터
◇ 차탄천 구 경원선 교량
경원선은 서울~원산 간 223.7km를 잇는 철도이다. 1899년 6월 17일 국내 철도 용달회사가 철도 부설권을 얻었으나 자금 사정으로 착공하지 못하던 중 러-일 전쟁으로 군사상의 필요성을 느낀 일본이 강압적으로 철도부설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이관 받아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철도 고사에 착공하여 1914년 8월 14일 완공하였다.
여기서 부터 강원도 입니다.
강원도 철원을 말한다.
차탄천 구 경원선 교량은 경원선의 119개소의 교량 중 한 곳이다.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차탄천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휘어져 남쪽으로 흐르는데, 차탄천을 따라 진행하는 경원선 철도는 이곳에서 차탄천을 횡단하는 교량을 통과해 북쪽의 철원지역과 연결된다.
차탄천
교량 다리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나 외부에 연천과 철원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현무암을 네모나게 다듬어 쌓아 미려하게 마감 처리하였다.
평화의길, 평화누리길, 평화자전거길 안내판
◇ 평화의길
한반도 최고의 청정 환경을 자랑하는 DMZ를 거닐며,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 'DMZ평화의길'은 한반도의 마지막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총 35개 코스, 510km의 걷기여행길이다. DMZ 초입인 민간인통제선 인근에 자리한 최전방 마을, 전적지, 평야와 강, 산악지형을 지나며 한반도 중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다. DMZ 평화의길은 자유롭게 방문 가능한 상시횡단노선과 투어 예약 후 방문가능한 예약황단노선과 테마노선으로 나뉜다.
◇ 평화누리자전거길
백마고지역 방향 평화의길 이정목
저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혹시 고대산 줄기이고 그 뒤로 금학산 줄기 일까?
이곳도 태양광 발전시설이 많다.
해는 너울 너울 서산으로 기울고
평화의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한다.
돌아보는 뒤안길에 기울어가는 햇살이 훤하다.
멀리 3번 도로에 버스가 지나 간다.
1시간 간격을 있는 버스가 지나 간다.
아이고 좀더 빨리 걸었으면 저 버스를 타고 갈텐데 아쉽다.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평화의길 이정목
버스도로 삼거리
이곳에서 평화의길은 곧장 도로를 건넌다.
새로운 궁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 큰 돈을 들여 휴양처를 만들고 있나 보다.
되돌아보는 길목에 기울어가는 햇살은 서양으로 기울고
이제 율이리 들녁을 바라본다.
평화의길 백마고지역 이정표
율이리 들녁에 서서 들넓은 철원땅을 바라보고
마침 두루미 한쌍이 반긴다.
들녁엔 철새들이 무리지어 이리 저리 옮겨가며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하늘금엔 고대산 줄기와 그 뒤로 금학산 줄기가 선명하다.
백마고지역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마지막 율이리 들녁을 바라보며
때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철새무리
이곳에서 평화의길은 마무리 한다.
DMZ두루미평화타운 방향으로 가는 평화의 길은 다음에 만나기로 하자.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마지막 걸음을 재촉한다.
저기 태극기가 휘날리는 언덕이 백마고지이다.
◇ 백마고지 전투 개요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6.25~1953.7.27.) 기간 중 가장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을 전개했던 1952년 10월, 철원에 위치한 작은 고지를 놓고 국군 제9병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쟁탈전을 벌린 끝에 제9사단이 승리한 전투를 말한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불과 395m 밖에 되지않는 고지를 빼앗기 위해, 중공군 1만여명이 전사상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도 총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발사된 포탄의 수는 아군 219,954발, 적군 55,000발 등 총 274,954발이다.
결국 세계 전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처절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을 10일 주야로 반복한 끝에 이 고지를 아군이 차지했다.
철원백마고지역 백마상
◇ 백마고지 명칭의 유래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하는 중요지정물로 유명해진 곳이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 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 이라고 대답하여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격전을 치루고 난 후 처절한 산의 형상이 백마의 와상과 같다하여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를 수행한 제9보병사단의 부대 애칭을 백마부대라 부르게 되었다.
◇ 백마고지역
백마고지역표지판
백마고지역사
백마고지 철원군농특산물판매장
백마고지역사 내부
백마고지역 안쪽
백마고지역 철길은 지금은 멈춰있지만 내년에는 개통할 예정이라고 한다.
백마고지역 철도중단점
철마는 달리고 싶다.
신탄리역에 있던 철도중단점은 백마고지역이 새로 개설되면서 이리로 옮겨왔다.
백마고지역 탑승지
◎ 백마고지역(평화의 길)에서 돌아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시간이 많이 지났다.
백마고지역에서 강원도 철원 13번 마을 버스를 이용하면 경기도 연천 신탄리역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강원도 철원지역 마을 버스가 다행히 백마고지역에서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역까지 연장하여 운영하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신탄리역으로 갈 수 있었다.
13번 철원지역 마을 버스
백마고지역에서 신탄리역까지 걸어와야할 거리를
덕분에 쉽게 신탄리역까지 올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신탄리역 전경
신탄리역에서는 39-2번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돌아서 연천역까지 되돌아 왔다. 연천역에서 인천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연천역에서 인천역으로 가는 지하철은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신탄리역에서 연천역까지 운향하는 39-2번 버스 운행시간표이다.
연천역에서 1시간을 기다려 지하철을 탔다.
기다리는 것이 쉬운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느긋하면 하루도 기다릴 수 있다. 믿음이 확실하면 일년을 기다릴 수 있다. 영혼에 바람이 불고 세상 이치를 깨달으면 기다리고 말 것도 없다. 그져 그려려니 하고 되는대로 살아도 마음의 거리낌이 하나도 없다. 그럴 땐 평생을 기다려도 좋다.
◎ 혼자 떠나는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오늘 계획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자주 할 것 같다. 강원도로 제주도로 그 어느곳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