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는 5개의 기도처인 5대가 있다. 동대에 관음암(관세음보살), 서대에 수정암(대세지보살), 남대에 지장암(지장보살), 북쪽에 미륵암(미륵보살), 중대에 사자암(비로자나불)을 말한다. 오대산 5개의 기도처를 거느린 사찰이 상원사와 월정사이다.
먼저 상원사를 들려 본다.
상원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저 있는 적멸보궁이 있다. 상원사 적멸보궁인 줄 알았는데 월정사 적멸보궁이다. 전국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저 있는 대표적인 적멸모궁이 있는데, 태백산의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등 강원도 내 4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상원사에는 조선시대 세조와 문수보살에 얼킨 설화와 고양이가 세조를 지켰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시절은 생명의 촉기가 가득한 연초록의 푸르름이 만발하고 있고, 전날 내린 비로 오늘은 더욱 나뭇잎이 싱싱하다. 먼 걸음 빈 수레로 달려온 산꾼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고즈넉한 상원사를 둘러보는 여유롭고 행복한 호사를 누린다.
◎ 오대산 상원사 입구 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국립공원 상원사 탐방지원센터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도
오대산 주차장 앞 오대산 공립공원 주변 안내
◎ 오대산 상원사 입구 관대걸이
관대걸이
관대걸이를 지나쳤다. 다른님 블로그에서 퍼옴
이 곳은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러둔 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아래와 같은 문수동자와 얽힌 전설이 전한다.
세조가 피부병에 걸려 쉽게 낫지 않자 오대산 상원사에서 부처님께 낫기를 기원하였다. 어느 날 상원사 앞 오대천에서 목욕하다가 지나가던 한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세조가 목욕을 미친 후 동자승에게 "그대는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고 하니, 동자승은 "대왕은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렇듯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피부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그때 만난 동자승을 조각하였고, 이 동자상이 상원사 문수동자상이다.
◎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 진여원(眞如院)
상원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상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 말사이다. 705년(성덕왕 4)에 창건하여 진여원(眞如院)이라 한다. 이 진여원은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의 두 왕자가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에 들어간 두 왕자 가운데 형인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 터 아래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北臺)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두 형제는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고 오대에 나아가 항상 공경스레 예배를 드렸으며, 날마다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茶)를 달여 1만 진신(眞身)의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공양하였다.
마침 신라의 왕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오대산으로 와서 두 왕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보천은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을 모시고 서울에 돌아와서 왕위에 추대하였다.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지 표지석
그 뒤 20여 년이 지난 705년 3월 8일 진여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信行結社道場)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였다. 또, 결사의 이름은 화엄사(華嚴社)라고 하였고 복전(福田) 7원(員)을 두게 하였으며, 그 경비는 가까운 주현(州縣)에서 주었다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 표지석 인증
고려시대는 어떠한 역사를 거쳤는지 거의 알 수가 없다. 다만, 『동문선』의 「오대상원사승당기(五臺上院寺僧堂記)」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고려 말 이 절은 극도로 황폐해 있었다. 그때 나옹(懶翁)의 제자 영령암(英靈庵)은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보고 중창(重創)의 원을 세웠다. 판서 최백청(崔伯淸)과 그의 부인 김씨(金氏)가 그 뜻을 듣고 재물을 희사하였으며, 1376년(우왕 2)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가을 낙성을 보았다.
그 해 겨울 선객(禪客) 33명을 모아 10년 좌선(坐禪)을 시작하였는데, 5년째인 1381년 5주년 기념법회를 열자, 승당의 불상이 방광을 하고 향내음을 풍겼다. 중창주 김씨 부인은 이 사실을 목도하고 더욱 불교를 믿는 마음이 지극해졌고, 토지와 노비를 시주하여 상원사가 영원히 존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상원사로 오르는 숲길
조선시대에는 척불정책 속에 전국의 사찰이 황폐되었지만, 오히려 이 절은 더욱 발전하였다. 척불정책의 대표적인 왕이었던 태종은 1401년(태종 1) 봄 상원사의 사자암을 중건할 것을 권근(權近)에게 명하여 불상을 봉안하고,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할 3칸 집과 2칸의 목욕소를 만들었다. 그 해 겨울 11월 태종은 사자암에 왕림하여 성대한 법요식(法要式)과 낙성식을 베풀었다.
이때 태종은 권근에게 명하여,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佛恩)에 젖고 유명(幽明)이 함께 의지하기 위함이니, 경은 기문(記文)하여 구원(久遠)한 세대에게까지 알게 하라.”고 하였다.
상원사 입구
상원사는 일주문이 없다. 왜 일까?
상원사는 세조가 문수동자(文殊童子)를 만나 괴질(怪疾)을 치료받고, 고양이에 의해 자객의 습격을 피하는 등의 일화가 서려 있는 세조의 원찰(願刹)이기도 하다.
이러한 깊은 인연 속에서 세조는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의 권유로 상원사를 중창하게 된다. 1465년(세조 11) 학열이 공사의 총감독을 맡았고, 인수대비(仁粹大妃)는 경상감사(慶尙監司)에 명하여 쌀 500석을 내어 강릉부(江陵府)로 운반하게 하고, 비단 1,000필을 함께 내어 공사비에 충당하게 하였다. 1466년상원사의 낙성식을 가졌는데, 크게 동서로 나눈 가람형식에 각각 상실(上室)을 지었다.
오대서약
하나. 다른 생명을 아끼면서 함께 살아 갑시다.
둘. 남의 것 욕심 내지 말고 자기 살림을 아낍시다.
셋. 맑은 몸과 정신을 지니고 바른 행동을 합시다.
넷. 남을 존중하고 말씀을 아낍시다.
다섯 . 밝은 생활을 하면서 좋지 못한 것을 하지 맙시다.
상원사 현판
2층은 청풍루이다.
남쪽에는 다섯 칸의 누각을 짓고 범종을 안치하였으며, 동쪽에는 나한전(羅漢殿), 서쪽에는 청련당(淸蓮堂)을 지었다. 청련당의 서편으로는 재주실(齋廚室)을 지어 승당(僧堂)과 선원(禪院)으로 삼았다.
석조(石槽)와 집기(什器)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유물들은 이때에 마련된 것이다. 그 뒤 인수대비는 탱화를 봉안하기 위하여 다시 조(租) 150석을 하사하고, 신미를 초대 주지로 모시게 하였다.
세조도 상원사의 역사가 이룩된 다음 상원사에 들러 의발(衣鉢)과 좌구(坐具) 등 수선(修禪)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사하였다. 그 해 52명의 선객을 모아 수선을 시작하였다.
예종은 세조의 뜻을 따르기 위해 1469년(예종 1)상원사를 세조의 원찰로 삼고, 전대에 하사한 전답에 대해서는 조세(租稅)하는 것을 금하였다. 배불정책을 펴온 조선왕조의 보호를 받으며 발전되어 온 이 절은 1946년 선원 뒤에 위치했던 조실(祖室)에서 시봉(侍奉)의 실화(失火)로 건물이 전소되었다.
1947년 당시 월정사의 주지였던 이종욱(李鍾郁)에 의해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의 건물을 본떠서 중창하였다. 동북 45도 방향의 이 절은 전면 8칸, 측면 4칸의 ‘ㄱ’자형 건물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ㄱ’자형 선원을 중심으로 승당인 소림초당(少林草堂), 영산전(靈山殿), 종각인 동정각(動靜閣), 후원(後院) 등이 있다. 선원은 청량선원(淸凉禪院)이라고 하는데 오대산을 일명 청량산(淸凉山)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6·25전쟁 때는 이 절을 지키면서 수행 정진하던 당대의 고승 한암(漢巖)에 의해 월정사 등의 다른 오대산 사찰과는 달리 전화를 면하였으며, 현재까지 전국 수도승들의 요람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적멸보궁과 선원, 승당인 소림초당(少林草堂), 영산전, 종각인 동정각, 후원 등이 있다.
◎ 청풍루
법신충만문수보살화현문
천고의 지혜 깨어있는 마음. 오대광명 받으세요.
이 뮛고? 나는 누구인가?
화두를 던진다.
"법신충만문수보살화현문"을 지나면 문수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청풍루
계단을 올라 뒤돌아 보니 청풍루 현판이 보인다.
청풍루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설법 집회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나 보다.
◎ 상원사 동정각
동정각
보통 범종이 있는 곳을 범종각이라 한다.
상원사는 왜 동정각이라 했을까?
가운데 법종이 국보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범종이다.
오른쪽 범종은 모작품으로 사용중이다.
종각 왼쪽에 왜 생뚱맞게 석탑을 세워 놓았을까? 혹시나 종소리가 울릴 때 무슨역할을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혹여 오른쪽에 모작품 범종을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종각의 균형을 맞추려 왼쪽에 이 석탑을 올려 놓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곳에 커다란 법고를 놓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주변에 운판과 목어도 같이 걸었으면 범종각 4물이 갖추어 범종각으로 할 텐데 왜 동정각이라 하고 석탑을 놓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 상원사 범종(국보 제36호)
상원사 범종(국보 제36호)
현존하는 한국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에 옮겨진 것으로 한국종의 독특한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이다.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이 있는 상대 하대 4유곽의 문양은 모두 당초문을 바탕으로 2~4인의 작은 비천상이 있는 반원권문이 새겨졌고 종복에 비천상과 교대로 있는 당좌는 8판 연화문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비천상은 경쾌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휘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고 있는데, 볼록한 두 빰,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전반의 이상적 사실풍의 불교조각 양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상대, 하대, 4유곽 등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
상원사 범종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167㎝, 입지름 91㎝. 용뉴 좌우에 오목새김된 명문에 의해 이 종이 725년(성덕왕 24)에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어떠한 목적으로 주성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루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 국명(國命)에 의하여 현 위치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종구(鐘口) 일부에 작은 균열이 생겨 수리를 거친 뒤 모작품(模作品)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 종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모작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종
종의 정상에는 용뉴(龍鈕)와 용통(甬筒)이 있다. 용은 머리 부분이 크고 몸체가 용통에 붙어 있으며 발은 정상에 버티고 있다. 용통의 표면은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두었으며, 그 사이에는 연화문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모두 아래위로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돌리고 유려한 당초문으로 장식되었으며, 드문드문 한 사람 내지 네 사람의 주악상(奏樂像)이 돋을새김된 반원권(半圓圈)을 돌렸다. 네 곳에 배치된 유곽(乳廓)은 당초문으로 장식되었고, 그 안에 연화로 돋을새김된 9개의 유두(乳頭)가 배치되어 있다.
종신에는 서로 마주보는 두 곳에 구름 위에 서서 무릎을 세우고 하늘을 날며, 공후(箜篌)와 생(笙)을 주악하는 비천상(飛天像)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또 그 사이의 서로 마주보는 두 곳에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8판연화(八瓣蓮華)를 돌리고 바깥 원의 안팎에 연주문을 돌렸으며 그 안에 당초문을 새긴 당좌가 있다.
종신은 상·하단이 모두 배가 부르고 종의 표면에 많은 공간이 있어 상하의 당초문대와도 조화를 이루며, 용통이나 유곽 등은 한국 종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이다.
범종각에 있는 석탑
구름 위에 서서 무릎을 세우고 하늘을 날며
공후(箜篌)와 생(笙)을 주악하는 비천상(飛天像)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범종의 문양을
석탑에 새겨 놓았다.
◎ 상원사 문수전
문수전
지혜보살 문수보살을 모신전당이다.
문수전 안의 문수동자와 문수보살
문수전 안에는 문수보살상과 1984년 국보(제 221호)로 지정된 목조문수동자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221호)
문수동자상은 상원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주처(住處)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이 상은 세조가 직접 친견하였다는 오대산 문수동자의 진상(眞像)을 조각한 목조좌상이다.
이 동자상의 자세·수인(手印)·의문(衣文) 등은 불상과 동일하지만 얼굴 부분만은 동안(童顔)으로, 두발을 위에서 두 가닥으로 땋아 동자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동자상에서는 총 23점의 유물이 나와서 1984년 보장유물(腹藏遺物), 보물 제793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 선실 밖의 ㄱ자 마루에 있는 신중상
상원사 신중상(동진보살)
또한, 선실 바깥 마루에 안치되어 있는 신중상(神衆像)은 일명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신중들이 탱화로서 봉안되어 있는 데 대해, 이곳만이 유독 조상(彫像)으로 조성되어 있음이 특이하다.
높이 85㎝, 무릎폭 35㎝의 목조상으로서 머리에는 구름무늬의 보관을 썼고, 좌우 손은 문수동자와 같은 수인을 취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의문은 투박하고 굵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전신을 무겁게 감싸고 있고, 가슴과 무릎, 다리 부분 등 여러 곳에 영락 등의 장엄구를 드리우고 있다.
형태는 완전히 의자형으로서 목제의자에 앉아 있다. 두 발 역시 투박한 신발에 싸여 군의(裙衣) 밖으로 나와 있으며, 조각수법은 대체로 경직된 맛을 보이고 있으나 특이한 신중상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 상의 조성연대는 세조의 상원사 중건연대로 추정된다.
◎ 상원사 3대 대선사(한암, 탄허, 만화)
한암당 중원 대종사
한암대종사(1876~1951)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에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 24세에 경허대선사로 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평북 맹산 우두암에서 확실대오하였다. 이후 견봉사와 봉은사 조실로 계시다 50세에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오셔 3본산 승려수련원을 개설하여 승가오적으로 선통을 널리 일으키시며 열반때까지 산문을 나가시지 않으시고 중생교화하셨다. 수행오칙修行五則으로 수행가풍을 세우신 한암당 중원스님은 조계종 초대 종정이였으며 네 번이나 종정에 추대되신 근대 한국불교를 이끄신 큰 선지식으로 6.25 한국전쟁 당시 가람의 전소위기에서 지키셨으며 좌탈입망하셨다.
택성당 탄허스님(왼쪽) 과 만화당 희찬스님(오른쪽)
탄허대종사(1913~1983)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학에 능통하였고 기호학파 학통을 이는 이극동에게 수학하였다. 학문으로 해결되지 않는 도의 근원을 찾아 최고의 선승 한암스님과 3년간의 서신문답 끝에 22세에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 은사인 한암스님을 모시고 선교겸수로 수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교학전법하겼다. 43세에 월정사 조실이 외었으며 승속을 초월한 인재양성 교육불사와 화엄경 등 역경물시를 통하여 한국불교를 중흥시한 큰 선지식으로 불, 유, 도 삼교에 통달한 대석학이였으며 시대를 통찰한 사상가였다.
만화대종사(1922~1983)
평안도 덕전에서 태어나 18세에 상원사에서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 전란중에도 피하지 않으시고 한암스님을 마지막까지 시봉한 유일한 법손으로 회자된다. 34세에 월정사 주지가 되었으며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월정사를 재건하고 교단정화에 힘쓰는 등 수호가람의 표상이시며 한암, 탄허스님의 수행기증을 계승진작시킨 오대산의 버팀목이셨다.
문수전을 배경으로 총무 산우님
◎ 오대산 상원사 고양이 석상
고양이 석상
상원사 문수전 계단 아래쪽에 있는 고양이 석상으로 세조와 관련된 설화이다. 세조가 상원사를 찾아 법당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법당 안에 자격이 숨어들어 있어 이로 인해 목숨을 건진 세조는 사찰에 전답을 내리고 고양이 뜻을 기르기 위해 사찰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고양이 석상에서 한장
◎ 상원사 오층석탑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앞 5층 석탑
문수전 에서 내려다 본 오층석탑과 청풍루와 동정각
◎ 오대산 상원사 극락조 석주
극락조 석주
극락조는 극락새를 말하는 전설속의 새
머리와 팔은 사람의 모습이고 몸은 새의 모습을 한 상상의 새로서소리가 매우 아름답다고 합니다
◎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청량선원
문수전으 지나 오른쪽에 있다.
◎ 오대산 상원사 영산전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영산전은 선원 뒤쪽에 있다. 선원 화재시에 불길을 모면한 유일한 건물이다. 산내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으로서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법당에는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영산전이라 한다. 또 세조가 희사한 『고려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39함이다.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옮겨 보존되고 있다.
◎ 오대산 상원사 영산전 석탑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영산전 석탑은 기단부터 상층부에 이르기가지 탑 전체가 여러가지 무늬와 불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심하게 파손되어 탑신의 형체를 알 수 없고 층수마저도 파악되지 않은 채 보전되어 있다. 기단에는 구름과 용, 연꽃 등이 무늬와 탑신에는 통일신라 양식의 불상이 한 면에 4존씩 조각되어 있으며 비록 복원이 어려운 상태로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소박하면서도 당당하게 천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영산전의 옆에서는 화강암 석재들이 출토되어 현재 법당 옆에 쌓여 있다. 이 탑은 사방에 삼존(三尊)의 불보살을 가득 새겼으며, 옥개(屋蓋) 등에 층급을 나타내지 않고 낙수면에는 단순히 연화를 조각했을 뿐이다.
◎ 오대산 상원사 소림초당
소림초당
승사(僧舍)로 사용되는 소림초당으로서 전면 5칸, 측면 4칸의 일반형 팔작집이다.
◎ 오대산 상원사 백련당
백련당
백련당은 따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만화루와 연결되어 있다.
백련당 앞 정원
단풍나무와 호랑이 석상
◎ 오대산 상원사 만화루
만화루
목조 달마대사
상원사의 역사
◎ 그 밖의 전각
일원각
목우당
다실
◎ 오대산 상원사 부도전
한암, 탄허, 만화 삼화상 탑비
한암당 중원대종사 탑비
한암대종사 부도탑
한암대종사비명
탄허당 택헌대종사 부도탑
탄허당 택성대종사 탑비
만화당 희찬대선사 부도탑
만화당 희찬 대종사 탑비
◎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 가는길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안내표지
가래터골 물줄기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 오름길 입구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을 오르는 급경사 600계단
상원사에서 바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상원사에서 바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온 산우님들
◎ 오대산 중대 사자암 비로전
비로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신 전각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광명부처이며, 부처의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법신불(法身佛)이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한다.
오대산 중대 사자암 비로전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앙에 비로자나불, 왼쪽에 문수보살(청사지), 오른쪽에 보현보살(하얀코기리)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
비로전 내 벽체 사방의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하계下界에 500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세계최초로 조성된 양각으로 새긴 극락보수 삼존불상 후불탱화의 장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외경심을 느끼게 한다.
화엄경보현행원품
경내에 있는 타종
비로전 전경
지혜의 상징 청사자.
중대 사자암 전각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중대 사자암의 계단식 건축물
5층 탑을 상징하는 5층 향각으로 건축하였고, 맨 위층이 사자암의 중심 법당인 비로전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은 대적광전 보다 한단계 낮은 급이다.
* 대적광전 :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인 아미타불과 화신불인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을 봉안함으로써 연화세계를 상징한다.
적멸보궁으로 가기 위해서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가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 다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산길
거대한 바위를 만나고
석등이 인상적이다.
급경사 오름길은 이곳에서 부터 완만해진다.
용안수
오대산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산불방지 출입통제다. 기간 : 2023.03.02.~05.15.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
인증
◎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월정사 적멸보궁이라?
상원사 적멸보궁인줄 알았는데. 정작 안내판에는 월정사 적멸보궁이다.
월정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다. 태백산의 정암사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의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 등 강원도 내 4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 보궁을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낮은 한 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층인 팔작지붕의 겹치마 집이다. 건물 전면의 중앙에만 두 짝의 판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중방을 설치하고 협간 아래는 판벽을 하고, 그 위에 띠살창을 한점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그간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 건물 내부의 구조에서 15세기 후반 양식의 다포와 고식 단청, 배흘림기둥 등의 특징이 조사되어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적멸보궁은 보통의 법당과 달리 곁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라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
불상이 없다. 보통 이 경우 유리창으로 진신사리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월정사 적멸보궁은 뒷벽이 막혀 있다.
적멸보궁 내부
진신사리가 뭍혀 있는 장소에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바라보면 오대산 정상과 일직선상에 있다.
지장율사(590~658)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에게 받아왔다는 부처님 진골사리. 그는 이곳 오대산 깊숙한 중대에 한줌 뼈를 모셨다.
우리날 5대 적멸보궁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현판
월정사 적멸보궁 중대 사자암 앞에서 한장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월정사 적멸보궁을 마지막으로 상원사 탐방 후기를 마감한다.
'절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05.21.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탐방 (1) | 2023.05.22 |
---|---|
2023.05.07. 오대산 월정사 탐방 (2) | 2023.05.16 |
2023.03.12. 경남 창녕 영축산 구봉사와 충효사 탐방 (1) | 2023.03.13 |
2023.03.05. 천년 고찰 경남 통영 벽발산 안정사 - 신라 원효대사 창건 (0) | 2023.03.06 |
2023.02.26. 천년 고찰 전남 구례 지리산 천은사 탐방 (0) | 2023.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