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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2021.04.08. 나주 불회사(대웅전-건칠비로자나불좌상-소조보살입상-석장승-원진국사부도-불회사 동백숲)

by 하여간하여간 2021. 4. 9.

1. 일자 : 2021. 4. 8(목)

 

2. 나주 불회사 소개

불회사는 덕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찰이다 주변의 산세에 순응하고 조화롭게 건물들이 배치되어 훌륭한 경관을 연출한다. 대웅전 뒷편으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이, 앞쪽에는 활엽수림이 우겨져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춘불회, 추내장 즉 봄 경치는 불회사가 최고이고 가을 경치는 내장사가 최고라는 뜻으로 불회사 신록은 최고의 선경을 제공한다.
불회사는 불호사중창단청문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1년 인도스님 마라나타께서 초창하였다' 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마라나타께서 영광 법성포에 도착하여 불갑사를 창건하고 다시 불회사를 창건한 후 백제의 도성으로 갔다는 설도 잇다. 조선시대 들어와 대대적인 중창은 1403년(태종3년)에 나주 출신 원진국사께서 시행하고, 1664년(현종 5), 1747년(영조 23), 1798년(정조 22) 등 세차례 화제를 당하였으나 1808년(순조 8) 대대적인 중창을 벌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때 당초 불호사였던 이름을 불회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 불회사에는 불회사 대웅전(보물제1310호), 건칠비로자나불좌상(보물제1545호),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1호), 원진국사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 소조보살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등 소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3. 불회사의 역사

불회사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였고, 당나라 현경 초에(서기 656년) 신라의 희연조사(熙演祖師)께서 재창하였으며, 원말 지원(至元) 초 (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덕룡산에 큰 불이나 사찰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고, 1808년에 전각을 모두 복원였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인해 몇 개의 전각만을 남겨두고 모두 모두 소실된 것을 불회사 회주 정연스님이 1991년에 주지로 부임하여 25년 간의 불사를 통해 6.25때 소실된 것을 모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서를 보면 불회사는 과거에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로 불리다가 1808년(순조 8)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로 절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회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원진국사는 한때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호랑이의 도움으로 경상도 안동 땅에서 시주를 얻어 대웅전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공사가 이루어지자 원진국사는 좋은 날을 택하여 상량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일의 추진이 늦어져 어느새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이에 원진국사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를 하여 지는 해를 붙잡아두고, 예정된 날짜에 상량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때 원진국사가 기도하던 자리가 바로 일봉암이라고 합니다.
(불회사 홈페이지 발췌)

우리나라 불교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진나라에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처음 전래하였다. 왕은 385년, 마라난타를 위해 새 도읍 한산주(漢山州/현, 경기도 광주시)에 절을 지어주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

 

4. 불회사 둘러보기

 

4-1. 일주문

전형적인 일주문 형태로 불교가 맨 먼저 들어 온 곳이라는 뜻의 ‘초전성지덕룡산불회사’가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摩羅難陀來佛會( 마라난타래불회)  마라난타존자가 이곳으로 오시어 불법을 여셨으니
慈悲光明發四海( 자비광명발사해)   자비 광명이 온 나라에 퍼지도다.

일주문 주련(柱聯)

摩羅難陀來佛會(마라난타래불회)  마라난타존자가 이곳으로 오시어 불법을 여셨으니

慈悲光明發四海(자비광명발사해)  자비 광명이 온 나라에 퍼지도다.

 

마라난타는 인도의 승려로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스님이다. 인도 스님 마라난타가 전남 영광군 백수읍 구수리 법성포(法聖浦)에 도착하여 영광에 불갑사(佛甲寺)를 짓고 나서 나주 불회사(佛會寺) 와서 법회(法會)를 열었다고 전하고 있다.

 

 

4-2. 불회사 석장승

연꽃무늬가 있는 불회사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나주불회사 석장승을 만난다. 중요민속자료 제11호이다.

나주 불회사 석장승
중요민속자료 제11호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마신리 212

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데 이 장승 역시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수문신상이다.
불회사 석정승은 오른쪽이 남장승이고, 왼쪽이 여장승인데 하반신이 땅에 묻혀있다. 남장승 하원당장군은 얼굴조각선이 깊고 인상적이며 입 좌우에 치아가 각 1개씩 노출되어 있다. 머리가운데가 솟았고 커다란 돌기형 코 선이 특징이다. 원래 하자가 새겨졌는데 누군가 추가로 새겨 정자로 보인다. 여장승 주장군은 남장승에 비해 얼굴이 온화하며 웃는 인상이 부드럽고 평면적이다. 이 석장승은 이웃한 운흥사 석장승의 조각형태와 수법이 비슷하다. 이로 보아 운흥사 석장승이 만들어진 숙종 45년(1719)을 전후하여 만든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와 토착신앙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문화재이다.
당자는 사당가는 길을 뜻하며, 주자는 꼬불꼬불한 길을 뜻한다. 

 

남장승은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시되었고, 머리 위에서는 상투를 올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입 가자장자리에는 송곳니가 아래로 뽀족하게 돌출되었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얕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미소 띤 얼굴에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원래 명칭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이란 이름이 있다.

 

4-3. 사랑나무 연리목 보호수

연리지 사랑나무

연리지 사랑나무 보호수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음양수인 본 연리목은 마치 바위에 두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처럼 보아고 있는 희귀수목으로 나라의 경사,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성등을 상징하는 나무로 고려사와 삼국사기에도 연리목을 기록할 정도로 희귀하고 경사스런 나무로 천년의 새월을 넘어 이곳 나주 다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주 상스러운 일로 보호수로 지정코자 한다 - 전라남도 나주시

 

바위에 두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의 연리목 보호수다

일명 사랑의 나무, 연리목(連理木). 연리(連理)는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 현상을 일컬어 말한다.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로 천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하는 음양수인 불회사 연리목은 큰 나무뿌리 밑에서 자라난 두 나무가 바위 위에 누워 자라다가 한 몸이 되었고 한 몸이 된 나무는 네 갈래의 가지를 하늘로 뻗은 형상이다.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4-4. 원진국사 부도

원진국사통조지탑

나주 불회사 원진국사부도

-전라남도 유형뮨화재 제225호/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산 212번지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해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이 부도는 높이가 총 175cm로 탑신 앞쪽에 7cm크기의 해서체로 "원진국사통조지탑"이라 음각되어 있으며 또 탑신 축면 아래쪽에는 "연우4년정사5월일입"(서기 1317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과 조성연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원진국사부도는 그 조형기법이 빼어나지는 않지만 14세기 초반, 고려말의 부도 양식이 통일신라 9세기경에 발달했던 팔각원당형 부도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천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연우4년정사5월일입"(서기 1317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과 조성연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4-5. 진여문

진여문은 정면1칸,측면3칸의 세로로 긴 평면이다. 진여문 뒤로 바로 붙여서 정면3칸,측면2칸의 천왕문을 덧붙여지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을 이룬 독특한 형태의 산문이다.
진여문!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본체로서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진리를 찾아감을 의미 한다.

 

4-6. 사천왕문

천왕문은 2002년에 건립하였는데 사천왕상 4위를 조각상이 아니라 탱화로 그려 봉안한 흔치 않은 방식이다.
지국천왕(동방)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안민의 수호신으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라는 궁전이 있는 천궁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국천왕은 착한이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이에게는 벌을 내려 언제나 중생을 골고루 보살피고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얼굴은 푸른색을 띠고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왼손에는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위 휘하에는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신인건달바와 부단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증장 천왕(남방)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유리타라는 궁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천왕은 자신의 위덕을 증장시켜 만물을 소생시킨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증장천왕은 오른손에 용을 쥐고 왼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로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살짝 쥐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광목천왕(서방)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황은 수미산 중턱의 백은타라 궁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천왕은 몸이 백성으로 장식되어 있도록 웅변을 통하여 온갖 나쁜 이야기룰 물리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다른 천왕과는 달리 입을 벌린 형성을 취하고 있다. 눈을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을 몰라낸다 하여 광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천왕의 서원은 죄인에게 벌웅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는데 오른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왼손은 보탑을 들고 있다. 이 보탑 속에는 보물이 많이 간직되어 있는데 이를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복과 덕을 얻게하였다. 그의 휘하에는 용신과 비사사가 있다.

 

다문천왕(북방)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이는 수미산 중턱 북쪽 수정타라는 궁전에 살고 있으며 언제나 부처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고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의 역할은 암흑계에 사물을 관리하며 불교에 귀의한 후 광명신이 되었다가 다시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수미산 중턱 북쪽을 관장하는 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몸은 흑색이며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가락으로 비파줄을 튕기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흰 이빨을 드러낸 체 미소를 띠면서 비파를 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진리를 다문함으로써 샘섯게하는 법열을 모든 중생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4-7. 대양루

대양루

대양루는 정면 5칸, 측면3칸의 익공계 팔작집이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전면은 2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단층이다. 원래 이 터에는 대양문이 있었으나 2000년에 지금 건물을 건축하였다. 상층은 천수전, 하층은 가운데 칸을 열어 통로로 사용하고 우측 공간은 종무소, 좌측 공간은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비로다경실이 있다.

 

대양루 주련

精進修定及智慧 (정진수정급지혜)  선정禪定과 지혜를 열심히 닦고 힘써

行菩薩行心調伏 (행보살행심조복)  보살행 수행하여 마음을 조복調伏 받고

以諸相應方便智 (이제상응방편지)  모두에게 융합하는 방편의 지혜로

導衆生到安隱處 (도중생도안은처)  중생을 인도하여 편안한 데 이르게 하여

無量方便求究竟 (무량방편구구경)  한량없는 방편으로 마지막 경지를 좆아

成就一切大聖法 (성취일체대성법)  모든 큰 성인의 을 다 성취하네.

 

4-8. 천수전

천수전

천수전은 2000년대 들어와서 지어진 건물로서 대양루의 2층에 자리잡고 있다. 내부에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을 사천왕과 함께 통판을 조각하여 정 중앙에 모시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며 중생의 고통을 잘 알고 연민과 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이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천수전 주련

影掃揩塵不動(죽영소개진부동)  대 그림자 뜰 쓸어도 먼지 일지않고
月倫穿沼水無痕(월륜천소수무흔)  둥근달 연못 뜷어도 물결 일지않네
水流任急境常靜(수류임급경상정)  강물 급히 흘러도 강둑은 고요롭고
花落雖頻意自閑(화락수빈의자한)  꽃잎 덧없이 날려도 마음 여유롭네

 

관세음보살님

 

4-9 대웅전

대웅전(보물 제1310호)

대웅전은 보물 제1310호(지정일 2001.4.17)로  상량문 및 건축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조선후기의 화려한 다포집이다.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 어간문에는 통판으로 좌측에 수생동식물 우측에는 육상동식물들이 조각되어 있고, 양 측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으로 조성되어 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건칠비로자나불(보물1545호)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소조보살입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7호)이 함께 봉안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로 매우 드문 것이다.

 

 

대웅전 주련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  죄에는 자성이 없고 마음 따라 일어나니

心若滅是罪亦亡(심약멸시죄역망)  마음이 소멸될 때 죄 또한 없어지니

罪亡心滅兩俱空(죄망심멸량구공)  죄가 없어지고 마음이 소멸되어 둘다 비워지면 

是卽名爲眞懺悔(시즉명위진참회)  이것을 진정 참회라 이름한다네

 

건칠비로자나불(보물1545호)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소조보살입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7호)
대웅전/관음대참회도장 현판

불회사 대웅전엘 들어가서 뭔가를 제대로 보신 분들은 '지권인'에 주목을 한다.

어? 손 모양이 저런 것은 비로자나 부처님인데...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셔야 하는데...

이런 말은 화엄사 대웅전에서도 나타난다.

 

비로나자부처님을 주불로하는 곳은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이라고 해야 함에도 화엄사나 불회사는 왜 비로자나부처님을 주불로 하면서 대웅전이라 하고 있을까? 여러가지로 살펴 볼 일이다.

 

 

4-10. 나한전

나한전

1797년(정조23)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되었다. 부처님과 16나한을 모시고 있으며, 우측면에는 불회사를 중창하신 원진국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부처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때문에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회사를 중창하신 원진국사의 진영

맹호보은원진국사도(猛虎報恩圓眞國師圖)

 

불회사는 원진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는데 국사는 어떻게 하면 대웅전을 크게 지을 수 있을까하고 매일 시주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절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호랑이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는 겁내지 않고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고 호랑이를 꾸짖었는데 호랑이는 입을 벌리며 뭔가 애걸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입속에 뭐가 걸렸구나 생각하며 걸린 것을 꺼내보니 여자의 금비녀였다. 이에 호랑이는 사라지고 몇 달이 지났다.

 

소복차림의 처녀추운 겨울날 밤 절 마당에 호랑이가 소복차림의 처녀를 데려다 놓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처녀는 경상도 안동고을의 김공철(金公喆)의 딸이라 하였다. 국사는 처녀를 비구승으로 변장시켜 같이 안동으로 떠났다. 그 집에 당도하니 딸이 호식(虎食) 당한지 일 년이 되는 날이라 온통 슬픔에 잠겨 있었다. 딸이 살아 돌아오자 온통 그 아비는 국사에게 보답하겠다고 했다.

 

국사는 바랑에 하나 가득 시주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하니 처녀의 아버지는 그러마 하고 곡식을 부었는데 아무리 부어도 가득 차지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여 이유를 물으니 국사가 웃으며 소승의 절이 헐어서 대웅전을 신축하려는데 이왕 주려면 건축비용만큼 시주하면 바랑이 찰 것이오 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랑에 부어지는 곡식을 도술로써 불회사로 단번에 옮겼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의 보은으로 지었다 하여 호랑이가 지은 절이라 하여 불호사라고 불렀다 한다.

 

4-11. 명부전

명부전 

명부전은 대웅전 우측으로 한단 낮은 축대에 자리잡고 있다. 1799년(정조23)에 나한전과 함께 지었으며 정면 3칸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내부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에 동자 2위와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비롯한 시왕상, 판관, 녹사, 사장당, 금강역사상을 각각 양쪽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4-12. 삼성각

삼성각

1799년(정조23)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된 것으로서 대웅전 좌측에 위치해 있다. 1979년에 조성된 칠성탱화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1979년 제작된 산신탱화를 왼편에 1994년에 제작된 용왕탱화를 모셨다.

 

칠성탱화

칠성탱화는 중앙에 보륜을 들고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좌우 상단에 칠성여래를 나누어 묘사하였다. 좌우 협시보살의 주위로는 태상노군, 좌보필성, 우보필성 등의 성중들이 배치되었다.

 

산신탱화

산신탱화는 중앙에 부채를 들고 있는 백발의 산신이 반가좌의 자세로 호랑이 등에 걸쳐 앉고, 그 오른편으로 처녀2분과 주전자를 받쳐 든 동자가 표현회었다.

 

용왕탕화

용왕탱화는 산신탱과 같은 크기로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을 용을 타고 있는 용왕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4-13. 극락전

극락전

나한전과 삼성각 보다 한 단 아래에 위치한 극락전은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한 영구위패를 모시기 위해 2013년도에 건립되었다. 극락정토의 주재자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4-14. 괘불대

대웅전 앞마당에 3종류의 괘불대가 있는데 이것은 불회사의 오랜 역사와 이 지역에서 사찰로써의 역할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오른 쪽 풍상의 마모가 가장 많이 된 것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제일 먼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다음에 있는 가장 웅장하고 잘 조성된 것은 아마도 3창주 원진국사 시절에 이루어 졌으며, 그리고 네 짝으로 완전한 형태를 지닌 맨 왼 쪽의 것은 아마도 제 4창 당시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대웅전 뒤편에 괘불을 보관했던 함이 있는데 그 규모로 보아 그 당시에 불회사에 웅장한 괘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15. 기타  

사운당
응향각
비로선원
심검당
범종각
흑조수

흑조수

이 나무 둥지는 불회사 남암터 뒤편에 있던 두 그루의 잣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나무를 잣나무의 한문이름인 백수로 부르지 않고 흑조수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800여년전 불회사의 원진국사께서 말년에 남암에 머무르시면서 생긴 일화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스님께서 ‘까만 새가 날아와 이 잣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면 뜰에 나가시어 그 까만 새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여 이때부터 이 잣나무를 흑조수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3-15. 불회사 동백숲

한국의 재래종인 애기동백이 대웅전 뒤로 부채꼴로 펼쳐져 숲을 이루고 있다. 수령은 300~400년 정도이며 3~4월에 꽃을 피운다.

 

3-15.비자나무 숲

 

불회사 비자나무! 불회사 비자나무는 산림청에서 국가산림 문화자산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보호림으로 지정된 비자림은 301,457제곱미터에 약 3천 그루가 자리하고 있으며, 수령은 300~400년 정도이다.

 

3-16. 차밭

 

마한시대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불교를 전하면서 함께 심은 것으로 알려진 불회사 차밭은 덕룡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ha정도이다. 비자나무 아래에서 사시사철 비자나무 이슬과 비자향기를 머금고 자라고 있으며, 순수 야생상태에서 무농약 유기농으로 관리되고 있다.

 

3-17. 산내암자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불회사에는 남암, 북암, 서암, 동암, 일봉암 등 총 5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는 일봉암만 2013년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봉암

 

3-17. 불회사의 봄

불회사를 감싸고 있는 덕룡산은 특별히 모난 산세는 아니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능선과 봉의 오르내림이 산의 깊이를 더 하고 있습니다.
봄비 내리는 날 대웅전 뒤편의 동백숲에서 느끼는 봄기운 
계곡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진여문을 들어서면 대양루가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이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한전 좌측에는 응향각이 동향으로 자리 잡고, 주요 불전 영역보다 낮은 지대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심검당과 사운당이 각각 동향,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향으로 자리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같은 남향의 삼성각, 나한전이, 우측에는 서향으로 자리한 명부전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비자나무와 측백나무숲이 상쾌함을 더하고, 절 주위의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등이 자리한 숲은 아늑하고 편안한 힐링의 숲입니다. 
덕룡산 산자락에 자리한 불회사는 경사진 대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전각을 배치하여 개방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5월쯤 연두빛으로 막 피어나는 둥그런 산 속에 들어 앉은 대웅전의 모습은 놓치기 아까운 풍경입니다.
지형을 적절히 다듬어 석축을 쌓고 건물을 세울 기단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곳곳에 계단을 두어 각각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에 늘씬한 측백나무들의 옹위를 받으며 부도전이 있고, 한참 지나쳐 들어오면 좌우에 퉁방울눈의 석장승이 참배자를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