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2. 보성 오봉산 칼바위-용추폭포 산행
1. 일자 : 2025.06.22.(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 구간 : 득량남초교 - 189 - 260 - 오봉산주차장갈림길(도새등) - 259.6 - 조새바위 - 336 - 337 - 359 - 칼바위 - 청암갈림길 - 풍혈 - 오봉산(324) - 용추산성갈림길 - 용추폭포 - 칼바위주차장 - 용추교(오봉산주차장)
◎ 오봉산(324m) 이야기
아름다운 기암괴석에 원효대사가 넋을 잃었다는 오봉산(五峰山 324m)은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하며 남해바다 다도해와 많은 기암괴석을 조망할 수 있다.
봉우리가 다섯개 모여 있는 오봉산은 산 아래 다가설 때까지도 그리 독특하지 않지만 파고들면 점입가경,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는 듯 가야동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하고, 산등성에 솟은 암봉과 암벽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고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작은 산의 심오한 자연미에 감탄한다.
오봉산의 참 멋은 오봉산에 다가들어야 알 수 있는데, 오봉산의 으뜸은 칼바위다.매끈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능선과 그 끝에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보여준다.칼바위는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기암이기도 하다.
원효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를 닦았다 한다. 30여m의 칼바위는 참으로 기묘하여 마치 손바닥을 위로 세우고 손가락들을 모아서 45도 각도로 굽힌 모양 같기도 하고, 선 채로 깊숙이 허리굽혀 인사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끝이 날카로운 칼 모양이기도 해서 보통 칼바위라 부른다.
그러나 칼바위 일대는 거대한 바위들이 엉켜 있고 바위봉우리들이 솟아 있기 때문에 개구리바위, 호랑이바위, 버선바위 등 갖가지 바위들이 있으며, 조선 태조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해서 태조바위라 부르는 바위도 있다.
큰 바위들이 많이 엉켜 있기 때문에 돌을 던져 넣으면 득량만 바다로 나온다는 마당굴과 정재굴, 독굴 등 굴도 많다.
또 칼바위 아래는 사방을 높은 바위벽이 둘러싼 공간이 있다. 50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이로 바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 독방과 같다.
그밖에도 기남천을 막아 만든 해평저수지 위의 골짜기는 협곡을 이루고 있고, 탕건바위, 각시바위 등의 이름이 붙은 바위들이 있어서 경관이 좋다.
또 이 골짜기의 막바지에 있는 용추폭포는 양편과 앞이 바위벽을 이루고 있는 통속 같아 신기하다. 용추폭포는 10여m 높이로 그 아래는 소를 이루고 있으며, 여름 장마철에는 장관을 이룬다.
남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 다도해 섬들과 수인산, 제암산, 존제산, 모후산, 조계산, 금전산, 제석산, 천관산 등이 조망된다.
◎ 오봉산(392m) 산행 따라가기
득량초교 앞에서 주차하고 산행 준비
오봉산 등산로 안내도 현위치
오봉산(324m)의 유래
원효대사 자취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바위산
오봉산은 보성 득량면과 회천면 경계에 위치하며 넓은 간척지가 있는 예당평야와 득량만 사이에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통일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의 기암 칼바위가 있다. 9부능선에 위치한 칼바위에 다가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듯 올려다보면 위쪽 접근이 불가능한 곳에 원효대사 두상이라는 설과 부처님 두상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는 조각이 있다.
용추폭포는 높이 18m에 3단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며, 그 위쪽으로 오르면 왜적으로 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축조한 용추산성이 있다. 해평저수지 상류에는 고려시대 불교 중흥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흥사(터)가 있다. 오봉산은 몸에 이롭다는 맥반석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날 한옥집 방바닥으로 쓰인 구들장이 채취되어 득량만에서 열차로 전국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당시 구들장을 채취했던 우마차길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풍혈지가 군데 군데 있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기를 받는다 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다.
초입
가파른 초입 등로를 오르면서
득량초에서 0.7km.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힐 때 쯤 조양마을에서 올라오거나 이곳에서 내려가는 갈림길 이정목을 만나고
조금 더 오르면 조망터를 만나는데 예당간척지 평야가 시원스럽게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 종군길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을 받고 하동에서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해남을 거처 진도 울돌목으로 가면서 조선수군을 재건할 때 구례 곡성에서 수군을 모집하고, 순천에서 대포와 화약, 다양한 화살을 구하고, 보성에선 군량미를 많이 확보했다.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다량 확보한 곳이 당시 조양창이 있던 조성면 고내마을과 득량면 박곡마을 양산항의 집이다. 해남 울돌목으로 갈 때 이 예당평야에서 군량미를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확보하고 장흥 회진(회령포)에서 그의 부하 장수들과 피로써 죽음을 맹세하는 회령포 결의를 맺고, 원균이 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고 남은 12척을 회진항에서 만나 1척의 함선을 증선하여 13척으로 명실 상부한 조선수군의 깃발을 올리고 진도 벽파진에 진을 치고 명량해전을 준비한다.
조선이 얼마나 한심했는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도 수군세력이 미약하니 수군을 철폐하고 육군에 편입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순신은 이 명령을 보성에 머물면서 받는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함선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조정마저 수군을 버린 상태에서 오직 이순신과 그 휘하 장수들 그리고 호남 백성들의 열렬한 협조로 조선 수군은 재건되었고 1척을 더 증선하여 모두 13척의 함선으로 진도 울돌목에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세계 해전사에 없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조선 수군이 일본 왜선을 물리쳤기에 풍전등화 조선은 그나마 살아날 수 있었다.
저기 드넓은 예당평야를 바라 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하동 구례 곡성 순천과 보성 강진 해남 완도 진도 남해안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했던 역사적 순간을 생각해 본다. 위대한 땅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조선)는 없었다" 고 한 이순신장군의 말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189 봉우리에서 바라본 가야할 오봉산 능선길
오봉산은 득량만쪽으로는 급경사 절벽으로 이루어진 반면 안쪽으로는 비교적 완만한 형국을 하고 있다. 마치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는 듯, 가야동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 정읍 내장산과 순창 강천산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 용추계곡을 끼고 오봉산 등선에 솟은 암봉과 암벽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고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작은 산의 심오한 자연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6월의 오봉산 숲길은 울창하게 우거져 녹음이 짙다.
원시림 같이 울창한 숲길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자란 해송과 활엽수가 울창하게 잘 자라고 있다.
도새등이다. 오봉산주차장에서 올라오면 이곳에 도달한다. 체력이 좀 약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이거나 초보자 들은 일반적으로 오봉산주차장까지 차로 와서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이곳 주차장갈림길 도새등으로 오른다.
참나리가 곱게 피었다.
참나리
득량만을 옆에 두고 낭떨어지 절벽길을 걷다 보면 언제부턴가 누군가 쌓아 놓은 수 많은 돌탑을 만난다. 이곳이 그 옛날 맥반석으로 된 구들장 돌이 전국적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난방 방법이 개량되어 구들장 보다는 보일러 난반으로 방바닥을 만들다 보니 구들장은 아 ~ 옛날이여가 되었다.
아마 그 때 구들장을 만들고 남은 돌조각들이 여러 곳에 산재 되었고 이 돌조각들을 사용하여 이렇게 정성스런 돌탑을 쌓았나 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쌓았는지 안내가 없으니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이 돌탑을 쌓은 분의 정성과 간절함이 온 몸으로 전해 온다.
나도 기념 한 장
득량만을 배경으로 한 장
찔레곷
이곳에서 부터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돌탑이 즐비하다. 해평저수지가 바라보이는 해평리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수비대 같다.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아름답다. 오봉산 산행은 이런 정성과 간절함이 묻어 있는 돌탑을 감상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많다.
잠시 쉬어 갑시다.
잠시 먹걸리 한잔으로 쉬어가자
원형과 사각형의 돌탑이다. 무슨 이유일까? 원형은 중간 이후로 두 줄기로 쌓아 마치 소의 뿔처럼 쌓아 놓았다.
옛사람들은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몸통을 제작할 때 아래쪽은 평평하게, 위쪽은 둥글게 했다. 그런가 하면 종묘나 사당에 모시는 조상의 신주함도 아래쪽은 방형으로, 위쪽은 원형으로 만들었다. 또한 궐내 정원에 연못을 조성할 때도 호안을 사각형으로 구축하고 그 중심에 원형의 섬을 두었으며, 궁의 누각이나 침전을 건축할 때도 원기둥과 네모기둥을 적절히 조합하였다. 그 뜻은 건축물 치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주의 존재 원리와 운행의 이치를 인간사에 적용하여 우주와 그 지위를 나란히 하려는 데 있었다.
둥근 하늘, 네모난 땅
우주와 함께 항상 거론되는 것이 천지, 즉 하늘과 땅이다. 『주역』에서 '땅의 도는 지극히 고요하며 덕이 방정하다'(坤道至靜而德方)고 말한 것에서부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 탄생하게 되었고, 원형과 방형이 하늘과 땅, 나아가서는 우주의 모형이 되었다.
동양에서 원형과 사각형의 의미
원형(원, 圓)
• 원형은 동양에서 하늘, 우주, 신성함을 상징합니다. 이는 유교의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서 잘 드러나는데, 하늘은 둥글고(원형), 땅은 네모지다(사각형)는 관념입니다.
• 원은 또한 완전함, 순환, 무한, 조화, 영원함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자연의 주기(계절, 달의 변화 등)도 원형으로 표현됩니다.
• 명상이나 종교적 상징(만다라 등)에서도 원은 신성한 영역, 우주의 중심, 내면의 통합을 나타냅니다.
사각형(방, 方)
• 사각형은 땅, 현실, 인간 세상을 상징합니다. 경계와 질서, 현세적 틀, 정착과 제한의 의미가 있습니다.
• 사각형은 집, 마을, 들판 등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의 틀을 나타내기도 하며, "여기, 지금, 나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 동양 철학에서 원형(하늘)과 사각형(땅)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관계로, 그 사이(예: 팔각형)는 인간의 영역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건축, 미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두 도형의 상징성은 전통적인 우주관과 인간관을 반영합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며 걷는 오봉산 산길에 참나리가 참으로 예쁘게도 피었다.
오봉산 산행길은 줄곤 득량만 쪽으로 깍아지른 절벽길이다. 위험 표시줄을 따라 걸으면서 시원하고 아기 자기한 득량만 풍광을 감상하며 걷는 것도 오봉산 산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앞에 보이는 섬 같이 보이는 땅이 고흥 반도 두원면이다. 저기 하늘금엔 팔영산 쯤 될까?
조새바위 이야기
득량면 오봉산에 있는 바위로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 안에 속을 긁어내는 데 쓰이는 연장인 "조새" 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새바위라고 불린다. 일명 황새 바우라고도 하는데 바다 건너 마을에서 바라보면 황새가 마을을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마을 주민들이 자주 다투는 일이 많아 마을 인심이 흉흉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조새바위 때문이라고 생각한 마을 주민들이 오봉산으로 구름 같이 몰려와 몇 날 밤을 새워 조새바위를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위가 너무 커 꿈쩍도 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이 손을 쓰지 못하고 모두 돌아갔다고 한다.
조새바위 현위치
절벽
오름길에도 원형 돌탑이 든든하게 산길을 지키고
참 정성스럽게 잘도 쌓았다.
아슬 아슬 절벽길을 걸으며 득량만의 풍요롭고 아늑한 풍광에 젓어드는 산길이다.
오봉산은 봉우리가 5개 있어서 붙여진 아름이다. 전국에 오봉산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이 많다. 봉우리마다 대부분 오르내림이 심하여 산행하는 맛이 절로 난다. 이곳 오봉산도 산은 낮지만 5개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묘미가 솔솔하다.
앞에 놓인 봉우리가 제법 거대하다. 봉우리 정상엔 돌탑이 보이고 오늘 오르는 봉우리 중 가장 경사가 심한 봉우리가 아닌가 한다. 저기 봉우리를 지나고 나면 오봉산의 상징 칼바위가 나올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세 미인들이 푸른 창공에 학처럼 꿈나래 미소를 화려하게 펼치고
나는 천지인을 관장하는 삼신의 세돌탑에 정성으로 인간 조화와 평화의 기원하며 고흥반도를 배경으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득량만 풍광을 담아 본다.
지나온 산길
예당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337봉우리 정상에 돌탑이 하늘속에 경이롭게 서 있고
사각형 돌탑은 이 땅의 신묘함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사각탑 위에 원형탑을 배치한 것은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의미하며 탑위에 무엇인가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돌이 얹어 있지만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힘들게 오른 봉우리 정상엔 한쪽은 방형 돌탑이 한족쪽 원형 돌탑이 정성스럽게 세워져 있다.
옛 동양인들은 인간은 우주 가운데서 태어나 우주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했다. 소우주인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우주는 또한 대인간(大人間)이라 할 수 있다.
우주와 인간은 극대 극소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속성을 지닌 존재다. 때문에 우주적인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 안의 일이 되고,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와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는 천인합일 사상의 요체다.
오봉산 돌탑을 쌓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돌탑은 기본적으로 원형과 방형으로만 쌓은 것을 보면 이 분은 틀림없이 원형의 하늘과 방형의 땅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행운과 행복을 기원했는지 모른다.
정교하게 쌓은 원형의 돌탑. 한쪽 끝에 쌓아 하늘의 정기를 받치고 있다. 기암 절벽 오봉산길과 천지인 돌탑이 어울어져 인간의 풍요로움을 기원하고 있다.
저기 청명한 하늘을 보라. 하늘의 뜻과 땅의 기운이 끝임 없이 순환하며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끝임 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우주의 본성을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또한 소우주이기에 서로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와 너가 하나라는 대 우주의 질서와 합일하여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너가 나이고 나가 너라는 대 우주의 본성에 부합하여 살아야 한다.
좀더 올라와서 돌아보니 기암 절벽에 쌓아 놓은 저 방형과 원형의 돌탑을 쌓은 사람은 득량만과 예당들녁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풍요를 기원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폭의 산수화다.
오봉산을 지키는 사자 같기도 하다. 고려시대 남해안에 왜구가 자주 나타나 약탈을 일삼을 때 나라가 백성들의 안위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저 약탈당하고 억울하기만 할 때 스스로 자기를 방어하고자 스님들과 산성을 쌓고 행여 왜구들이 쳐들어 오면 이 산성으로 피신하여 중앙에서 군사를 보내 왜구들은 물리쳐 낼 때까지 산성에서 자신들의 안위를 지켰다. 남해안의 절벽을 끼고 있는 산성은 대부분 그때 만들어졌다. 이곳 오봉산도 절벽을 이용하여 산성을 쌓고 스스로 백성들이 자기 안위를 지키며 살았다.
6월의 오봉산의 기암절벽은 짙은 녹음속에 묻혔다. 아마 가을이나 겨울철 낙엽이 다 지고 속살이 보일 때는 더 거대한 기암절벽이 보일 것이다.
오봉산 가는 길목 조망터에서 득량만을 바라 본다. 저기 보이는 곳은 고흥반도 두원면 일대이다.
?
참나리
절벽 산길엔 원형 돌탑이 군데 군데 반긴다.
철웅성 같은 절벽이 오봉산을 지키고
득량남초에서 3.5km 지점 봉우리를 오른다. 이제 칼바위까지는 0.6km 남았다.
오봉산 산속 군데 군데 돌탑이 즐비하다. 사실 저 아래쪽에는 훨씬 많은 돌탑들이 무리지어 쌓여져 있다.
350m 봉우리를 돌아오니 칼바위 조망터가 나온다.
350봉 칼바위 조망터에서 바라 본 칼바위
원래 한덩어리인 바위를 칼로 무우 자르듯 내리쳐서 쪼겨 놓은 형국이다.
한참을 내려와 칼바위 속으로 들어간다.
칼바위 안에서 무아지경
보고 또 보고
칼바위
오봉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를 거느렸다 하여 오봉이라 불리운다. 오봉산의 칼바위는 직각의 단애와 함께 칼날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것이 칼을 세워놓은 것 처럼 보인다 하여 칼바위라 한다. 산 정상에 날카롭게 서 있은 형상이 칼날처럼 예리해 보이는데, 하늘과 구름을 갈라놓을 것 같은 모습이 섬뜩함마저 든다. 칼바위는 통일 신라 때 고승 원효 대사가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기암이기도 하다. 원효 대사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를 했다고 한다. 칼바위의 구부러진 앞쪽 벽면을 유심히 관찰하면 음각이 되어진 화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설속의 원효대사 모습을 새기었다고 한다.
칼바위로 들어가는 입구
오봉산 칼바위 마애불상(국가 산림 문화자산, 산림청)
지정목적 및 사유
오봉산에 있는 칼바위는 그 모습이 산 정상에 날카롭게 서 있는 칼날처럼 아주 예리한 모습을 갖추어서 하늘과 구름을 갈라놓을 것 같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칼바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측면에서는 새의 부리처럼 보이고, 아래 방향에서는 두꺼비의 얼굴처럼 보이는 등 여러 모습으로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30m 높이의 칼바위 정상에 새겨진 형상의 암각화는 당시 작업방법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울러 통일 신라 때 원효대사가 칼바위에 올라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칼바위의 암각화에 대해서는 원효대사의 모습이라는 설과 부처님의 형상이라는 설이 전해지는 등 인문학적으로도 우수하다.
안에서 바라 본 칼바위
암각된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
마애불이 암각된 칼바위
칼바위 안쪽
안쪽에는 사람 장정 50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사방이 거대한 바위조각으로 애워쌓여 아방궁 같은 공간이다. 아마 이곳에서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께서 수행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칼바위와 헤어지고 이제 오봉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우리만이 아는 칼바위 최고의 조망터에서 행복한 순간들
후미 대원님들과 함께
조금 더 올라와 능선에서 바라 본 칼바위 풍광
너무나 아름다워 보고 또 보고
사진 놀이 삼매경
지나가는 산우님이 한 컷 담아 준다.
고맙고 감사하다.
긴 걸음을 하고 오봉산 정상
오봉산에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 풍혈이 군데 군데 있다. 사람들은 맥반석이 기반이 된 바위 틈에서 나오는 풍혈을 맞으며 기를 받는다고 한다.
오봉산에서 내려오면서 바라 본 용추폭포
수량이 적을 때 용추폭포은 두 줄기 폭포이였는데
오늘은 어제 비가 와서 수량이 많아 한줄기 장쾌한 폭포가 되었다.
오봉산 아래 자락에는 이렇게 누군가 정성을 들여 돌탑을 쌓았다. 인도의 성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하늘을 상장하는 원형 돌탑과 땅을 상징하는 방형 돌탑도 있고 방형에 원형을 쌓은 돌탑도 있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이다.
기념 한 장 남기고
하산길에 독립문 같은 돌탑도 만나고
소원을 빌어보세요
호남정맥의 최남단에서 휘감아 도는 봉화산의 정기를 이어 받아 득량만을 끼고 남쪽 바닷가로 이어지는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다섯개의 봉우리가 있는 오봉산은 신령스런 산맥의 정기가 흘러 산 정상능선 여러곳에서 추운겨울에도 쏟아져 나오는 따듯한 풍혈이 몸에 기운을 돋고 머리를 총명하게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상에는 직각인 단애와 함께 칼날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것이 칼을 세워 놓은 것 처럼 보인다고 하여 칼바위라고 하며,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이 곳에서 소원을 빌고 수도를 한 후 큰 일을 이루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칼바위와 돌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다.
나는 무슨 소원을 빌어 볼까? 가족의 건강과 손자들이 무럭 무럭 자라길 기원한다.
멋진 돌탑군이다.
또 만난 풍혈
정말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온다.
저 깊은 곳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시원한 공기가 주변의 공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불어 나온다.
기 받는 풍혈지
오봉산은 바위가 많은 산으로 산꼭대기 능선에 여기 저기 바위틈 사이로 기운이 나오는 풍혈지가 산재되어 있다. 이 곳 풍혈지는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추운 겨울에느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다. 오봉산 능선과 중간지점에 위치한 풍혈지의 바람은 남쪽에 위치한 득량만에서 부터 불어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눈이 내린 추운 겨울에도 풍혈지 주변에는 상록고사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이 곳 풍혈지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아방궁 같은 용추계곡은 정읍 내장산이나 순창 강천산 계곡 같은 느낌을 준다.
개망초가 활짝핀 칼바위주차장
칼바위 주차장 이정목을 지나 용추교(대형주차장)까지 해평저수지 수변을 걸어가자
칼바위주차장 현위치
해평저수지 수변길을 걸어서 용추봉주차장까지 힐링길을 걷는다.
이 곳 수변길에도 돌탑은 즐비하고
잘 정비된 수변 데크길을 따라 짙은 녹음 속으로 걸어간다. 힐링길이다.
소나무가 잘 자란 해평저수지 수변길
해평저수지
용추봉주차장에서 마무리한다.
용추봉주차장에 있는 오봉산 종합안내도
오봉산 모든 등산로는 100년 전 "우마차 길"을 따라 만든 것이다. 산정상까지 갈지자로 만든 우마차 길
◎ 보성 오봉산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오래 전에 한번 올랐던 오봉산의 추억을 안고 다시 오른 오봉산은 역시 시원한 예당 들녁을 바라 보면서 부터 시작했다. 득량만의 잔잔하면서 풍요로운 넉넉함을 등에 짊어지고 절벽길을 오르는 동안,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어울러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원형과 방형의 수 많은 돌탑을 보면서 탑을 세운 사람의 간절함과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기원하며 세웠을까? 그가 되어보고자 했던 힐링 산길이였다. 산 정상부에 웅장하게 서 있는 칼바위는 정말이지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오봉산 만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바위이다. 그 수려함과 바위에 얽힌 원효대사의 전설 그리고 절벽에 암각되어 있는 마애불상은 경이롭기까지 한다. 시원한 풍혈을 맞으며 들어선 용추계곡에 있는 용추폭포의 시원함과 해평저수지 수변의 잘 자란 소나무 숲길은 두고 두고 오봉산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힐링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