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2024.11.10. 해남 두륜산 - 대흥사 단풍산행

하여간하여간 2024. 11. 12. 09:09

1. 산행일자 : 2024.11.10(일)

2. 누구랑 : 광주원산우회

3. 산행구간 : 오소재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 - 두륜봉 - 진불암 - 대흥사 - 주차장(7.0km)

 

 

◎ 오소재 산행 준비 후 오심재를 향하여

오소재약수터에서 출발 단체 인증

 

오소재에서 산행 출발하면서

 

오심재까지 1.6km 거리다.

 

두륜산 도립공워 안내도 현위치/오소재약수터

 

오늘 산행 코스는 오소재 - 오심재(1.6km) - 노승봉(0.8km) - 가련봉(0.2km) - 만일재(0.5km) - 진불암(0.8km) - 표충사(1.25km) - 대흥사 - 유선관 - 주차장 코스이다.

 

오심재 오르는 산길에 산악회 표지기 무성하다. 오심재 오른 길은 울창한 활엽수 숲길이다. 동백 나무가 무성하고 아직도 초록 초록 한여름이다. 가을은 언제 오려나~

 

이 길은 여러번 올랐다. 해를 거듭할수록 해남군에서 도립공원 답게 산길을 잘 정비하여 놓았다. 산길 옆으로 수많은 간절한 돌탑이 즐비하다.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고픈 욕망이 있나 보다. 기복적인 주술과 상징으로 간절히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고 그 소원이 이루어질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돌맹이 하나를 올려 놓았지만 그 정성은 하늘이 안다.

 

꾸준히 오른 산길 1.6km 거리는 사뭇 초입에 진땀이 나오는 거리이다. 완만한 오름길이지만 목이 마른다. 저기 끝 오심재가 먼 발치에 가물거리는 산길을 어디에서나 즐겨 볼 수 있는 친근한 구절초가 지키고 있다.

 

 

 

◎ 오심재

 

오심재는 고계봉과 노승봉 사이의 고개로 오소재 약수터에서 대흥사로 넘어가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용해왔던 재이다. 이 고개는 '쐐기재'라고도 부르는데 대흥사의 옛기록인 「대둔사지」에서는 소아령이라 하였고 강진로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말 대흥사의 12대 강사인 아암 혜장선사가 북암에 주석하면서, 당시 강진의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기 위해 넘어 다녔던 재로 추정하고 있다.

재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주작산과 강진만, 북서쪽으로 고계봉, 남동쪽으로는 노승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오심재에서 노승봉으로 오른다. 노승봉-가련봉-만일재로 향한다.

혹여 북미륵암으로 가려는 사람은 이곳에서 북미륵암 방향의 길을 택해 가길 바란다.

 

오심재에서 대원님들과 함께

 

오심재에서 노승봉까지는 0.6km 급경사 오름길이다.

 

◎ 두륜산(輪山)을 오르며

 

남녁에 가을 바람 소스라치게 불어 억새 휘날리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왠지 시리고 을씨년스런 심난한 마음 가눌길 없어 하염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다가 애라 모르겠다 무작정 떠나자 남쪽으로~

 

하늘이 시리도록 높고 날씨가 무척이나 청명하여 설렌마음으로 산악회 버스에 몸을 실어 무조건 남녁으로 향한다.

 

영암 월출산 암릉의 수려한 경관을 다 보는가 했더니 벌써 강진 덕룡산과 주작산 암릉 산줄기을 따라 눈길을 때지 못하고 있을 때 버스는 해남을 지나 거대한 두륜산 초입 오소재에 도착한다.

 

남녁으로 향하는 마음은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어머님를 만나러 가는 설레는 마음이다. 어머님의 포근한 품에 안겨 심없이 어리광 부릴 때 어린시절 마음이다. 그래서 남녁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돌아가신 어머님을 뵙는 것 같은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더구나 단풍이 붉게 물들고 노오란 빛깔의 단풍이 고운 자태로 춤을 출때는 더욱 그렇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는 거대한 두륜산을 향한 경외로움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 두륜산 흔들바위(동석)

 

두륜산 오심재와 노승봉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흔들바위(동석)는 약 400년 전에 편찬한 「죽미기」(죽미기, 1639 중관해안)에도 등장하는 역사가 오래된 바위다. 대흥사의 첫 사지인 「죽미기」에는 동석대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1823년 초의의순이 편찬한 「대둔사지」 유관편에도 '동석'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는 "북암의 뒤에 있으며, 한사람이 밀어도 움직이지만 천 사람이 굴리면 넘어자지 않는다." 고 되어 있다.

 

흔들바위는 큰 암반위에 올려져 있으며 흔들바위 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처럼 자연석 굄돌이 받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흥사가 한눈에 내려다 부여 조망하기 매우 좋은 곳이다.

 

흔들바위에서 노승봉을 향해 한참을 오르다 보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잠시 쉬어 간다.

 

두륜산 도립공원 안내도

 

두륜산도립공원은 난대림의 보고로서, 한라산이 자생지로 알려진 왕벚나무(천연기념물 173호)를 비롯해 동백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차나무  등 11과 837종의 식물자원이 분포하고 있다. 

 

동백나무를 비롯한 난대성 상록 활엽수림이 뛰어나 1979년 12월 26일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910㎢이다. 

 

노승봉 거대한 암릉 아래를 지나서 가파른 노승봉을 오른다.

 

두륜산은 중앙아시아 곤륜산에서 시작한 기운이 백두산에 이르고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장수 영취산에서 금호남 정맥을 타고 흐르다가 전북 진안군 부귀면 주화산에서 다시 호남정맥으로 갈라져 남쪽으로 굽이쳐 뻗어내려 화순 청풍면 국사봉 바람재 갈라져 해남 땅끝으로 치닿는 땅끝기맥으로 변해  활성산 - 풀치 - 월출산 - 월각산 - 벌뫼산 - 장군봉 - 서기산 - 덕룡산(서봉) - 주작산 - 오소재로 흘러오다가 해남 두륜산에서 마지막 그 기새를 몰아 하늘로 충천하다가 다시 땅끝에서 태평양으로 스며든다.

 

반대로 말 한다면 태평양 해양기운이 대륙으로 뻗어 오를 때 그 첫번째 기운이 솟는 곳이 해남 두륜산이다. 거대한 태평양 해양기운이 두륜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월출산에서 두번째로 솟구쳐 광주 무등산을 거쳐 장수 영취산과 무주 덕유산으로 백두대간을 타고 중앙아시아 곤륜산을 거쳐 하늘로 솟구쳐 승천한다.

 

만약에 이 기운이 하늘로 오르는 황룡이라면 수억년 태평양 깊은 바다에서 긴 잠을 자고 일어난 황룡이 그 기운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형국이며 실제 그런 기운이 흐른다고 생각할 때 해남 두륜산의 기운이 얼마나 쎈지를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기운찬 두륜산을 품고 있는 절집이 해남 대흥사이다. 대흥사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그 정상에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부처의 높은 도가 흐르는 산이지만 정상은 정작 두리뭉실하기 그지 없다.

 

또한 머리 두(頭)자에 바퀴 륜()자를 쓴 두륜산(輪山)은 온세상 모든 사물의 생명 탄생의 변화와 인과 관계가 무극에서 태극으로 음과 양 그리고 천, 지, 인의 끝임없는 순환법칙이 한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는 무극대도를 구현하는 으뜸 산이란 의미이다. 

 

 

거대한 노승봉 암릉을 오르다 보면 확트인 해남 북평면 들녁과 강진만이 나타나고 올망졸망 완도 일원 섬들이 조망된다.

 

오늘 붉게 물든 단풍 옷을 갈아 입고 있는 두륜산을 오르니 그 감동이 절정에 이른다.

 

노승봉을 오르는 대원님들

 

맞은편 케이블카정류소가 있는 고계봉과 해남읍 방향

 

올망졸망 완도일원 섬들을 좋아하는 동화나라님

  

고도를 높일수록 아름답게 다가온 해남 북일면 들녁과 강진만 그리고 완도 고금도 풍광

 

노승봉 정상에 선 동화나라님

 

◎ 노승봉(685m)

 

해남 두륜산은 해남군 삼산면, 북일면, 북평면, 현산면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대흥사에서 바라보면 고계봉(638m) - 노승봉(685m) - 가련봉(703m) - 두륜봉(630m) - 도솔봉(672m) - 연화봉(613m) - 혈망봉(379m) -향로봉(469m)  등 8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룬다.  고계봉, 가련봉 거쳐 향로봉까지 8개봉우리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는 산이다.

 

 이 산의 최고봉은 두륜산의 두륜봉이 아닌 가련봉이 주봉으로 703m이다. 1979년 12월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두륜산은 대둔사(大芚寺)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大興寺)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두륜의 뜻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둥근머리산’, 또는 날카로운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노승봉에서 가련봉을 배경으로 셀카

 

가련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예쁘게 피어 연분홍 빛깔을 뽐내고 있는 구절초가 앙증스럽다.

 

◎ 가련봉(703m)

 

노승봉에서 바라 본 가련봉의 웅장함

 

가련봉(703m) 인증

 

대흥사에서 바라보는 두륜산은 마치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이다. 두륜봉이 부처님 머리이고 가련봉과 노승봉은 부처님 몸체에 해당한다. 인자하신 부처님께서 하늘을 향해 고요히 눈을 감고 삼매에 들어 있는 모습이다. 해남 땅은 그 어느때라도 삼재가 없는 땅이라고 했는데 아마 두륜산 저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다.

 

그나저나 부처님은 깊은 삼매에 들었으니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리석은 대중이 소갈머리 없이 가련봉 정상에 서서 환희에 기쁨을 만끽한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가련봉을 떠나면서 완도와 그 일원 다도해 섬들을 배경으로 한장

 

가련봉에서 바라본 대흥사 절집

 

좀더 가까이 당겨보고

 

두륜산 품속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대흥사 풍광

 

만일재를 향하면서 바라본 도솔봉 - 연화봉으로 뻗어내린 땅끝기맥  산줄기

 

만일재를 향해 하산하면서 돌아본 가련봉 대원님들

 

만일재를 행해 가는 암릉길은 두륜산 산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두륜산에서 바라 본 해남 현산면과 저 멀리 진도까지 선명히 조망되는 아름다운 남해안 풍광

 

만일재를 행해 가는 암릉에 선 햇살 총무님/ 그녀는 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훌륭한 리더쉽 소유자이다.

 

도솔봉과 연화봉 산줄기

 

오늘 처음 참여한 신입 대원은 그저 환희에 차 기쁘단다. 늘 산행을 하면서 건강을 잘 지키길 바란다.

 

투구봉에서 두륜봉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 바로 앞은 완도 본섬이다.

 

해남 북평면 일대 들녁과 완도 고금면 일대 환상적인 풍광.

 

저기 앞에 보이는 바다는 강진 마량에서 만들어진 항아리를 가득 실고 남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무역을 했던 뱃길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청해진 장보고 장군이 활동한 해상왕국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그 옛날 한양에서 제주로 귀양갈 때 육지를 떠나 제주로 향하는 눈물의 귀양 뱃길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함선으로 일본의 330척을 격파한 명랑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목포 고하도에서 60척으로 함선을 증강시켜 동으로 그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금도에 본거지를 옮겼던 곳이다. 

   

진도 해남 강진 완도 일대의 남해안 뱃길은 물류통상이나 군사적으로 천혜의 요지이며 많은 역사적 흔적이 세월과 함께 흐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을 지켰던 남해안의 뱃길에는 수 많은 남해안 백성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예나 지금이나 가장 헐벗고 가난한 백성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다. 중앙의 호의호식 고관대작들은 그저 지 목숨 살려고 이리저리 피신하기 바빴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팔아 먹는 비겹한 짓을 서슴치 않았으니 그 얼마나 통탄할 일이 아니던가?

 

남해안을 지키는 투구봉과 완도 본섬 그리고 해남 북일면 들녁과 남창 그리고 저멀리 소안-노화- 보길도 방향 풍광

 

만일재로 내려가면서 앞서간 찬찬님이 멋진 포즈를 취한다.

 

자꾸 눈길을 사로 잡는 완도 일원 풍광

 

가을을 가장 먼저 전하는 옷나무 단풍이 붉게 물들고 있다.

 

동화나라님

무슨 생각에 저리 골똘할까? 심성이 참으로 착한분이다. 늘 배려하고 양보하고 어려운 산꾼과 함께한 모습이 존경스럽다.

 

나도 따라가 보자. 배려하고 양보하고 어려운 사람과 함께해 보고자 노력하자.

 

만일재로 하산하면서 만난 붉은 단풍

 

동화나라님과 함께 한장

 

용담

 

철 잃은 철쭉

 

엉겅퀴

 

구절초

 

쑥부쟁이

 

신입대원님 앞으로 건강히 산행을 잘하길 기원한다.

 

만일재 억새 밭에서

 

만일재에서 가련봉을 배경으로

 

동화나라님

 

신입대원

 

지난주 내장산 산행에 이어 오늘도 금동영우 회장님께서 손수 낚은 삼치를 냉동하여 직접 회를 떠 준다. 얼마나 맛있는지? 고맙고 감사하다.

 

함께 걷고 아름다운 자연을 정원 삼아 함께 한 점심은 꿀맛이다. 각자가 가져온 반찬에 여러가지 음식이 모이니 이렇게 풍성하고 맛있는 점심이 또 어디 있겠는가? 편안하고 즐거운 우정이 가득한 점심시간 

 

구절초

 

만일재 억새

 

가련봉을 담고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봉도 담고

 

◎ 만일재

 

누가 물었다. 만일재가 왜 만일재입니까? 대답을 못했다. 만일재에 있는 안내판 설명을 읽어 본다.

 

만일재는 두륜산도립공원의 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에 있다. 북일면 사람들이 대흥사로 넘어왔던 재이며, 산악인들이 가련봉과 노승봉, 두륜봉, 도솔봉을 오르면서 쉬어가는 곳이다. 

천년전설을 간직한 천년수가 서 있는 만일암터서 만일재의 재이름이 유래되었다. 재에서 동쪽을 바라다 보면 장흥 천관산이 보이고 완도의 다도해가 장관을 이룬다.

가을이면 억새가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답고,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소원을 기원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드라도 만일재를 설명하기에는 명쾌하지 않다.

 

만일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만일암에서 유래했다면 만일암지에 있는 천년수 유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일암 : 해를 당기는 암자, 만자가 당길 만자이다.) 

 

◎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 전라남도 문와재자료 제246호)

 

두륜산 정상부인 가련봉 아래 만일암지에 조성된 석탑이다. 만일암지의 흔적을 말해주듯 주변에는 석등 부재 등 많은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석탑의 현 상태는 단층기단의 5층이나,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층기단이라 단정 지울 수없다.

또한 1층 탑신을 보면 한번 해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층부(탑의 곡대기 부분)는 남아 있지 않고 석등의 부재가 올려져 있다. 전체 높이는 5.4m이다.

 

이 석탑은 튼튼한 기단부의 구성, 조층 탑신을 세로로 세워서 결구한 기법, 옥개석(지붕돌) 상면 네 귀중이의 우돌마루를 도드라지게 한  기법이 옛 백제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중반기(12~13세기)로 보고 있다.

 

◎ 천년수

수종 느티나무(괴목), 수령 1,200~1,500년, 흉고 9.6m, 수고 22m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느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해야 하는 일이였다. 지상으로 쫓겨난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만일암(만일암: 해를 당기는 암자, 만자가 당길만이다)터 앞 천년수 나무에다 끈으로 해를 매달아 놓고 천녀는 북쪽바위인 북미륵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인 남미륵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서있는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하였다. 미륵불을 완성해 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완선하지 못하는 천동을 기다리다 못한 천녀는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으로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목이다.

북미륵암의 조성시기가 고려시대 전반기인 11세기경이며 여러 구전과 수목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천년수의 수령은 1,200~1,500년인 것으로 추엊된다.

천년수는 2018년 3월 21일 전라남도 정도천년을 상징하는 천년나무로 지정되었다.

 

진불암을 향해 새로난 콘크리트 길을 따라 하산한다.

 

한참을 내려와서 진불암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진불암으로 향한다.

 

진불암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를 지나기도 하고 완만한 낙엽길을 걷기도 한다.

 

◎ 진불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산내 암자이다.

 

진불암으로 가는 길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630년(인조8) 극현이 덕호와 함께 중건하였고, 1693년(숙종19) 이흥록이 덕탄과 더물어 중건하였으며, 1740년(영조 16) 온곡대사가 우일과 함께 중수하였다. 

 

그 뒤 1750년(영조 26)에 위일이, 1791년(정조 15)에 정능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응진당, 향적당, 요사채 등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의 조그마한 전각이며, 그 옆으로 약 50년 전에 건립된 요사채가 있다.

 

응진당 안에는 조선 초기의 목조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이 나한상은 50m 상방에 위치했던 고진불암에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강진에 살던 서씨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나라의 배를 만났는데, 그 배 안에 16나한상이 실려 있었으므로 두륜산방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1709년에 조성한 범종이 있었으나 암자가 폐허화될 때 대흥사 옆에 있는 청신암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현재의 규모는 작으나 영곡, 영파, 만화, 운당, 이암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

 

노오란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은행나무 앞에서

진불암 응진당 앞에서

 

진불암 담장 너머로 연화봉이 라인이 아늑하게 다가 온다.

 

◎ 표충사 구역

 

한참을 내려 왔다. 대흥사이다. 먼저 표충사구역을 지나서 대흥사를 들러보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표충사는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서 조선시대 대흥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고 그 법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선과 교의 종원으로서 자부하였다. 이에 1788년에 사액사우의 건립을 추진하여 표충사로 지정되었고 정조대왕이 직접 쓴 표충사 편액이 내려졌다. 

 

호국문과 예제문을 지나가면 표충사와 표충비각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836년에 다른 곳으로 이견되었다가 1860년 10월에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표충사는 1788년에 건립되어 정조대왕이 직접 쓴 표충사 편액이 하사되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팔도십육종도총섭으로서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중앙에 서산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양쪽으로 서산대사의 제자로 전란에서 공적을 세운 사명당 유정 스님과 뇌묵당 처영 스님의 진영을 모셨다. 현재의 건물은 1836년에 다른곳으로 이건되었다가 1860년 10월에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고 상량문은 초의선사가 썼다. 조선 후기에 불교계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국왕이 편액을 내린 사당으로는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대흥사의 '표충사'와 1794년 조선 정조 18년에 편액이 하사된 묘향사 보현사의 '수충사'가 있고,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1743년 조선 영조 19년에 편액을 하사한 밀양 '표충사'가 있다.

 

◎ 장군샘

 

 

◎ 초의선사 상

 

한 사람의 차인으로서 조선의 유교문화와 중국 차에 밀려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한국차를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 다도 중흥조라는 점입니다. 초의스님은 대둔사와 그 부속암자인 일지암에 머무시면서 한국차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동다송'을 편찬하여 우리 차문화의 역사와 우수성을 복원해 내셨습니다. 초의스님은 또 단순한 역사의 복원뿐만아니라 차를  손수 만들어 당대 사상가들에게 한국차의 정신과 맛을 알게 했습니다. 선과 차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스님의 다선일미의 정신과 맛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대흥사 성보박물관

 

 

◎ 호국보전

 

오래전에 대흥사를 찾았을 때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보니 호국대전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호국대전 양 옆으로 보현전과 문수전이 있다.

 

사실은 보현전과 문수전 사이에 호국대전을 세웠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호국대전 안쪽 거대한 부처님 탱화/ 아직 호국대전의 안쪽은 텅비었다고 해도 무망하다. 앞으로 채워나갈  것 같다.

 

호국대전 앞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혈망봉 그리고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포근하다.

 

호국대전 앞에서 두륜산을 바라본다.  부처님이 누워계신 모양이 선명하다. 아마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전각이다. 이 전각에서 많은 분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기도를 드리고 개인적으로 불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기도 도량이 되길 기원해 본다.

 

◎ 대흥사 단풍 산행

 

두륜산은 8개의 특징적인 봉우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고계봉(638m) - 노승봉(능허대, 685m) - 가련봉(703m) - 두륜봉(673m) - 도솔봉(672m) - 연화봉(병목안봉. 613m) -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이다.이 8개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섰다. 명찰 대흥사(과거 대둔사)는 그 원형의 능선 가운데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 5년(514년) 아도화상이 세운 대둔사(대흥사)가 있으며, 서산대사와도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절 안에는 표충사를 비롯하여 탑산사 동종 등 보물 4점, 천연기념물 1점과 수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 무염지(無染池)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곳이란 뜻의 아름다운 연못으로 향로봉의 화기를 막는다 는 풍수에 근거하고 있으며, 실제로 화재시 물공급지의 역할도 할수 있다. 특히 절에서 바라보면 마음 심(心)자 모양 연못으로 보인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만고에 깨지지 않고 삼재가 미치지 않는 산이라 할만큼 성곾처럼 둘러쳐진 산으로 외세의 침입이나 6.25동란중에도 대흥사를 비롯 여러 암자들이 여타한 피해를 입지 않은 산으로 유명하다.

 

두륜산은 보는 멋, 안에 들어가서 걷는 멋 모두 뛰어나다는 점에서 명산이라  불러 부끄럽지 않은 산이다. 산 곳곳에 기암절벽이 있으나 외양은 두루뭉실 덕스러워, 외유내강형 산의  대표격이라 할 만하다. 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대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로 대둔사로 불리었다가 대흥사로 정착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 임란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으로, 또 한국불교의 종가집으로 그 역할을 다해온 도량이다.

 

13 대종사, 13 대강사가 배출된 곳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유지 보전하고 있는 십승지(10개의 피란지)중 하나이다.

 

대웅보전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서 중생에게 설법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전각이다. 내부에 모셔진 삼존불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불이며 부처님 뒤에 있는 탱화는 1901년 대한제국 광무 5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 건물은 1667년 조선 현종 8년에 중건된 적이 있지만 1899년 대한제국광무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복원한 것이다. 조선후기 다포계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정면의 화려한 용두 장식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계단석 소맷돌 양쪽에 조각된 사자머리 한 쌍은 전각 수호의 뜻을 담고 있다.

 

 

◎ 대웅보전 현판 : 조선후기 서학자 원교 이광사의 친필

 

또 다른 이광사 친필 : 대흥사 대웅보전, 침계루,  고창 선운사 천왕문, 지리산 천은사 ,강진백련사 만경루

다산 정약용은 이광사의 친필을 꿈틀대는 용의 기세처럼 헌걸차다 했다.

추사 김정희은 조선의 글씨를 망쳤다고 비난하여 자기 글씨로 현판을 써서 걸었다가 유배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면서 대흥사에 들러 자기 현판을 내리고 이광사 현판을 다시 걸었다. 대흥사 무량수각 현판은 추사 김정희 친필이다.

 

침계루 현판 이광사 친필이다.

 

동다당 찻집

 

찻집안에서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두륜정을 지나

 

피안교를 지난다.

 

가을 단풍과 푸르른 동백나무는 이 산의 자랑거리이다. 집단시설지구에서 사찰에 이르는 2Km의 경내 도로 좌우에는 절경을 이루는 계곡이 이어지고, 산자수려한 수목이 울창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 유선여관

 

영화 서편제에서 판소리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 유명, 옛적 대갓집 같은 여관 민박집.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유흥준교수, 남도답사 일번지 자세한 소개로 더 유명한 곳.

 

 

◎ 해남 대흥사 단풍길

 

장춘리 10리 숲길 : 2km , 아홉굽이 숲길이라 해서 구림구곡이라 불림. 이곳 단풍이 가장 좋음

 

 

오늘 해남 두륜산-대흥사 단풍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래전에 여러번 올랐던 두륜산이기에 더욱 정이 간 산행이지만 오를 때마다 두륜산의 정기는 남다르다. 해남 대흥사도 전에 한번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어서 더욱 정겹고 마음이 가는 절집이다.

 

혹여 해남 대흥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려면 아래 블로그로 접근하길 바란다.  

2020.12.21.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