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5. 영암 월출산 죽순봉-주지봉-문필봉
1. 산행일자 : 2021.09.05(일)
2. 누구랑 : 원산우회원 12명(4인 3팀)
3. 산행구간 : 죽정마을-문산재-양산재-책굴-왕인석상-월대암-죽순봉-주지봉-문필봉-주지골-왕인박사유적지-죽정마을(원점)
4. 산행소감
영암 월출산 주지봉과 문필봉은 지난해 오른적이 있다. 그러나 왕인박사 유적이 있는 죽순봉 능선을 늘 가보고 싶은 곳이였지만 아직 못갔다. 오늘 오르련다. 설렌 마음으로 베냥을 맨다. 늘 달리는 남도의 들녁을 바라보며 영암 월출산으로 달린다. 월출산은 언제 보아도 그 당당함이 하늘을 찌른다. 활화산 처럼 솟아 있는 기암과 암릉으로 이루어진 월출산을 지나 월출산 남녁에 자리 잡고 있는 죽순봉-주지봉-문필봉을 오르기 위해 영암 군서면 죽전마을에 주차한다. 이곳 구림리 일대는 왕인박사의 유적이 깃들인 곳이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이를 비둘기들이 보호하여 살아서 자란 후 백제의 석학이 되고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어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해 일본 아스카 문화의 시조가 된 왕인박사의 얼이 깃든 곳이다. 왕인박사가 어릴적 공부하면서 노닐던 죽순봉을 오른다. 일기예보는 맑음으로 예보하였는데 가을을 예고하는 생채기나 하는 듯 산행 내내 흐리고 가끔씩 흩날리는 빗방울과 강한 바람으로 산행하기가 어려웠지만 대원들과 즐겁게 다녀온 힐링 산행이였다.
5. 산행 추억
왕인은 백제가 낳은 대학자이다. 일본 응신왕[應神王]의 초빙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조정의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데리고 간 기술자를 통해 여러 가지 기술도 전했다고 한다.
왕인박사는 백제인으로 일본 응신왕(應神王)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백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왕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는 화이길사(和邇吉師), 일본서기에는 왕인이라고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상(日本文化史上)의 성인(聖人)으로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왕인(王仁)
백제의 근초고왕 때 학자로 논어 10권과 천자문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유풍(儒風)을 천명 하였으며,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일본의 역사책 고사기(古事記)에는 그의 이름을 와니키시라 하였고, 일본 서기(日本書記)에는 와니(王仁)라고 나와 있지만, 우리 나라 역사에는 그의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구림리는 백제 때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해 아스카 문화의 시조가 된 왕인박사,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 고려태조 왕건의 책사인 최지몽 등이 태어난 곳으로 3사가 나왔다는 우리 옛 3대 고을 중의 하나다.
오늘 어려운 산행이였지만
오를 수 있어 감사한다.
함께한 산우님들이 있어 행복하다
세상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은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오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 마음이 평안하도록 세상의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
살아보니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다 부질 없는 바람이더라
그냥 있는 그대로가 진리요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이 행복임을 이제야 알아 차린다.
다 부질없는 허망한 껍질에 연연하지 말자
인생 다 별것이더냐
잠시 생겨 흩어지는 흰구름인 것을
잠시 스쳐 지나간 바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