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6. 화순 화학산-개천산-천태산 연계산행
1. 일시 : 2020.04.26(일)
2. 누구랑 : 원산우회 번개
3. 산행구간 : 청룡마을-약수터-화학산-접팔재-능선삼거리-깃대봉-등봉재(임도갈림길)-개천산-홍굴재-천태산헬기장-천태산-거북바위-개천사
4. 산행 개념도

5. 산행소감
연분홍 산철쭉이 방긋이 고개 내밀 때면 우리는 안다. 봄이 완연하다는 것을~~~
온갖 생명이 용트림을 하며 기지개를 펼때면 우리는 안다. 봄이 이미 와버렸다는 것을~~~
화순 화학산 고산 철쭉 군락지를 지나 연초록 싱그러운 세상이 만발하는 개천산을 지나서
무등 월출 용암 조망 터진 천태산을 오른다
백아산을 거쳐 경남 산청으로 스며들어 지리산 골짜기로 흘러들어간 지리 빨찌의 첫 루트 화순 화학산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통째로 안은체 말없이 연분홍 산 철쭉만 그대로 그자리에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완연한 봄 온갖 생물이 기지개를 펴는 연녹색 생명의 향연!
원 대원들의 정겨움 가득~
행복 밧데리 가득한 즐거운 하루~
개천산 정상 일보직전에서 잘난체하다가 정상 인증 실패는 두고두고 반성 또 반성
함께한 두 대원님에게 머리숙여 죄송
6. 산행안내
화학산은 산세가 굽이치듯 유연하고 완급의 경사를 펼친 솜씨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화학산은 험한 능선으로 이어진 산세와 장흥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학혁명 당시에는 동학군이 주둔하기도 했으며, 동학농민전쟁 이후에도 의병전쟁, 6.25전쟁 등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화학산은 생각보다 지형이 험하지는 않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수종도 거의 잡목이다. 주능선에도 바위지대가 없이 유순하며 산세는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줄기처럼 기다란 주능선이 남북으로 길 게 뻗어 있다.
화순군 춘양면과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눈 개천산(開天山 497.2m)은 천태산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며, 산줄기의 북쪽 산봉을 천태산이라 부르고 그보다 남쪽에 있는 산봉을 개천산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탓에 인근 마을에서는 문필봉(文筆峯) 혹은 필봉(筆峯)이라고도 부른다.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도암면 등광리의 경계로서 분수계를 이룬다.
개천산의 유래는 통일 신라 말에 형성된 개천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개천사라는 지명만 나온다. 개천산은 천태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어 전체 산줄기는 남북 방향으로 뻗으면서 화순군 춘양면, 도암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물줄기는 동서 방향으로 분수되어 동쪽 큰 골은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 지류 중 하나인 춘양천의 발원지가 된다. 서쪽의 큰 골은 나주호로 유입되는 봉학천의 지류를 이룬다. 정상에서 보면 서쪽으로 영산강 4대 댐인 나주호가 보이고, 동쪽으로 이양 분지가 보이며 그 너머에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보인다. 북서 방향으로 유명한 천불천탑의 운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천태산(天台山 497m)도 화순군 도암면과 춘양면의 경계를 이루며 개천산으로 이어진다. 남쪽의 개천산과 천태산을 마을사람들은 하나의 산으로 보고 있다.
<동국여지지>에 "개천사(開天寺)는 천불산 동쪽에 있다. 절 뒤에 석봉이 있는데, 이를 천태봉이라 한다. 구전에 의하면,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동서쪽 산기슭에는 완수루(椀峀樓)가 있고, 또한, 청연과 백연이라는 두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개천사가 망일산 남쪽에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천태산은 북쪽으로 능주읍치 서쪽에 있는 봉미산과 남쪽으로는 해망산으로 각각 이어지고 동쪽으로 예성산과 연결되어 있다.
화학산(華鶴山 613.8m)
화학산은 풍수지리학상 지형이 큰 화학산 작은 화학산으로 한자웅의 학이 날개를 활짝펴고 나는 형상을 하고
있는 華鶴歸巢形이라 하여 화학산이라 부른다 수많은 능선이 새의 깃털 같아 마치 황금 새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화학산은 명산으로 아들딸을 낳고자 소원을 빌었고 소원성취를 위해 만사형통 산신제를 올렸으며 농경시대에
가뭄이 들면 화학산 정상에서 기우제를 올렸으며 임진왜란 정유재란 6.25사변때는 정상고지에
방호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환경의 아름다운 경치를 관광만끽하고 등산객의 쉼터와 산불감시초소로 활용하기 위해
화순군수로부터 2005년 오색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철에 화학산전망대를 설치하였다"
" 개천산[497.2m]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와 도암면 등광리에 걸쳐 있는 개천산[497.2m]은 천태산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며, 산줄기의 북쪽 산봉을 천태산이라 부르고 그보다 남쪽에 있는 산봉을 개천산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멀리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탓에 인근 마을에서는 문필봉(文筆峯)
혹은 필봉(筆峯)이라고도 부른다.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도암면 등광리의 경계로서 분수계를 이룬다.
개천산의 명칭 유래는 통일 신라 말에 형성된 개천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 지지 자료』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개천사라는 지명만 나온다.
개천산은 천태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어 전체 산줄기는 남북 방향으로 뻗으면서 화순군 춘양면, 도암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물줄기는 동서 방향으로 분수되어 개천산의 동쪽 큰 골은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 지류 중 하나인 춘양천의 발원지가 된다. 서쪽의 큰 골은 나주호로 유입되는 봉학천의
지류를 이룬다.
1982년 10월 15일 화순 천태산 비자나무 숲이 전라남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8월 9일에는
천연기념물 제483호로 변경되었다. 11만 8,800㎡의 숲을 개천사에서 관리한다. 비자나무 숲은 과거 사찰
주변에 조성했던 비자나무가 확산되어 만들어진 숲으로 개천산과 천태산 개천사 주변에서 자생한다.
개천사
개천사는 화순 천태산 중턱에 있다. 통일신라 헌덕왕 말기(809-825년) 도의선사가 창건했다
는 설과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 되었다가 복구
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용화사로 불리웠다. 천불전이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
었다. 1963년에 주지 김태봉이 주민들의 협조로 대웅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사찰 입구에
는 나무벅수가 무심히 서 있고 주변산에는 비자나무숲(도 지정 기념물65호)이 우거져 있다.
개천사에는 석종형과 팔각원당식 부도가 5기 있다. 모두 18-19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해발 494m의 천태산 중턱에 자생하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개천사 사찰림(약 15정보)과
사유림(약 6정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자생하고 있는 비자나무는 대개 둘레가2m
이상으로 서수령은 약 3백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