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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2020.10.01. 고창 방장산(734m) 블랙야크 100대 명산 - 고창과 정읍 장성 황금들녁을 조망하는 행복한 하루

by 하여간하여간 2020. 10. 1.

1. 산행일자 : 2020.10.01.(목)

2. 누구랑 : 대석님과 하여간

3. 산행구간 : 양고살재-방장사-579-벽오봉-억새봉-고창고개-방장산-문바위재-봉수대-원점회귀

     

4. 산행개념도

5. 산행소감

 

방장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산중에 산일까? 가장 크고 넓은 산이 방장산이다. 지리산을 일명 방장산이라 한다. 대원사 일주문에는 방장산 대원사라고 쓰여있다.

 

방장이라는 말은 크고 넓어서 모든 것을 품어 안은다란 의미가 있는 불교적인 용어다. 방장산은 모든 것을 품어 안을 만큼 크고 넓은 산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상상의 산중에 삼신산이 있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불렀다. 호남에서는 무등산과 방장산, 지리산을 삼신산이라고 했다. 산이 거대하고 큰 산으로 지리산과 고창 방장산을 방장산이라고 부른다.  

 

서울을 오르내릴 때 호남고속도로 저 멀리에서 유난히도 우뚝 솟은 산이 방장산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상경하면서 보아도 유난히 크고 거대하게 다가오는 산이다. 아마 주변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7백여m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은 거대한 산으로 느껴졌나보다. 

 

방장산을 처음 접할 때가 무척이도 오래된 것 같다. 산행 초보 시절 겨울 흰 눈이 무릎까지 빠지면서 장성 갈재에서 오른 쓰리봉까지의 눈길 급경사 경험은 방장산이 무척이도 힘들었던 산으로 기억되며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로도 몇번의 겨울 산행은 늘 흰눈이 쌓인 방장산이였다. 겨울 서해안 수증기가 차가운 기온을 만나 정읍을 거쳐 내장산과 입암산 그리고 방장산을 넘으면서 하얀 눈으로 변해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무더히도 많은 눈이 내린 곳이 방장산이다. 그래서 산꾼들은 겨울에 설화와 설경의 진면목을 감상하려고 겨울에 방장산을 오른다.

 

오늘은 추석날이다. 코로나로 성묘도 자제해야 하는 시국때문에 고향 성묘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평소 늘 함께한 대석님과 마음속에 늘 그리고만 있던 방장산을 오르기로 한다. 늦 여름일까? 초 가을일까? 산행 내내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산꾼의 고단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고창과 정읍 그리고 장성의 황금 들녁을 유난히도 눈부시게 아름답게 조망한 하루다.

 

방장산은 날씨가 좋아야 하는 조망 산행인데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개스가 가득한 산하는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흐려서 오늘 산행은 낭패구나 생각했는데 점신을 먹고 오후부터 그나마 하늘이 열리고 파란 가을 하늘이 눈이 시럽게 다가온다. 역시 기대만큼 파란 하늘과 흰구름 황금들녁과 짙은 녹음으로 가득한 방장산과 입암산 내장산과 백암산 병풍산과 불태산을 조망하면서 환상적인 풍광을 보는 순간마다 산꾼은 그리운 엄마품에 안긴 마냥 포근하고 안락한 자연의 품에 푹 빠진다. 이런 위안이 있기에 산군은 내일도 또 산을 찾는지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유희의 세계가 아무리 환상적이여도 이런 대 자연의 환타지 앞에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늘 산을 오르 때마다 느끼지만 현대문명의 극치인 시대가 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연으로 더욱 깊이 돌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태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가오는 현대문명의 극치는 대 자연의 질서를 바탕으로 하여야만 그 가치를 온전히 유지 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훌륭한 인간 문명이라도 자연이 갖는 대 질서를 그르치는 순간 자연은 스스로 대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거대한 에너지로  인간의 문명을 한 순간 파괴하거나 변형하거나 소멸시켜버리지 않는가? 결국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켜야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주의 거대한 질서는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거대한 우주 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수 많은 존재물 중에 인간 또한 미미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코로나와 같은 자연이 주는 교훈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 시기 어느 산을 가든 천상의 화원이 펼쳐지겠지마는 방장산 산행 내내 구절초 쑥부쟁이 구술붕이  등을 만나는 천상의 화원은 이야기 하여 무엇하리?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다.

 

 

6. 방장산 소개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에 걸쳐 있는 산.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 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전라북도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을, 삼영주로 두승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다.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나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고려사(高麗史)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백제 유민이 부르던 노래 5곡으로 방등산가(方等山歌)·지리산가·선운산가·정읍사·무등산가등이 나와 있는데, 그중 방등산가은 도적 떼에게 잡힌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곳에 등장하는 방등산과 반등산은 방장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방장산의 높이는 734m이다. 방장산 서쪽 기슭의 용추계곡에는 수심이 깊어 용이 살았다는 용소와 20m 높이의 용추폭포가 있다. 남쪽에는 방장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20분 쯤 오르면 고려사에 등장하는 도적들의 근거지였던 방장동굴이 있다. 방장산의 남쪽에는 방장사가 있고, 남서쪽 기슭에는 상원사가 있다. 주변에는 내장산 국립공원·선운산 도립공원·석정온천·고창읍성과 장성군의 장성 입암산성·백양사 등 명소가 많다.

 

한편, 방장산에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과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 나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방장산의 신령스럽고 수려한 산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우려해서 쇠말뚝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995년 방장산에 쇠말뚝이 박혀 있다는 신고를 향토사단이 받고 쇠말뚝 탐지 작업을 벌였으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거에 실패한 일이 있기도 하다.

 

방장산 산행 코스는 두 가지이다. 1코스는 양고살재-방장사-579-벽오봉-고창고개-방장산-문바위재-봉수대-서래봉-장성 갈재의 구간으로 거리는 12.8이며,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2코스는 장성갈재-734-725-방장산-고창고개-벽오봉-고창수월공설운동장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7. 산행 추억

산행 초입 양고살재

양고살재

 

전북 고창읍 석정리와 전남 장성군 불이면을 연결하는 제15번 지방도로상의 고개로,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에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고창 출신 박 의 (朴 義) 장군이 청나라 누루하치의 사위인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하였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이름한 고개

 

고창군 산림조합에서 제공한 지팡이 사진만 찍고 반납한다.
지혜와 지바의 도량 표지석 뒤면에는

 

고창군 제공 방장산 등산 안내도 방장 동굴을 보고 싶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방장사를 림공사라고 우리는 임공사 입구라고 읽는다.

 

산행 초입 가파른 산길이다. 초보자는 무척이나 힘들 것 같다. 천천히 자기 힘에 맞게 오르길 권장한다.
편백숲길을 지나고

 

 

이 돌탑은 1993. 4. 5. 고창 밀알회 형제 자매님들이 모양성 주변에 동백나무 식목행사를 마치고 방장산 산행중 이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정성들여 쌓기 시작하여 매년 식목행사 후 쌓아 올린 돌탑입니다.

 

미소사로 가는 이정표/ 미소사는 저 아래에 있고 이 곳이 아니더라도 마을에서 찻길로 갈 수있다.

 

방장사 오른 길에 유난히 눈에 들어온 고단함이 역역히 뭍어나는 나무 뿌리와 비교적 편안한 산행길

 

바위 틈바구니에서 뿌리를 내리고 강하게 살아가는 저 나무의 강인함을 알게하소서
방장사 입구에서 방장사를 가려면 오른쪽으로 올라야 한다.

 

방장사 관리인들이 사는 요사체와 텃밭
방장사에 오면 무엇보다도 이 방장사 마애여래좌상 앞에 두손을 모은다

방장사 마애여래좌상

소발, 육계가 높고 정상계주를 표현했다

백호를 새기고, 방형상호, 삼도를 새겼다

우견편단의 법의, 오른손은 무릎위에 둔 촉지인, 왼손은 가슴에 두었다.

길상좌 방형대좌를 표현한 듯하다

근대(1965?) 조성된 불상으로 전한다.

 

방장사마애여래좌상의 단상

방장사 마애여래좌상 앞에 정갈히 섰다. 불 법 승 삼배를 하고 찬찬히 들어다 본다. 처음 이 암벽에 불상을 새긴 석공은 어떤 맘으로 누구를 상상하며 정성을 다했을까? 불교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순간 부처님이라기 보다 동학농민운동의 선봉장이였던 전봉준 장군상이 아닐까? 사뭇 놀란다. 숭고한 부처님을 보고 전봉준 장군이라니 ! 감히 가당치도 않는 생각이구먼! 하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왜 나는 이 부처를 전봉준장군으로 느낄까?

부처의 머리가 정봉준장군 상투와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이 불상을 새긴 석공은 헐벗고 일년 내내 농사하여 소작으로 다 뺏기고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는 서럽고 서러운 소작인을 상상하며 새겼는지도 모른다. 동학농민운동(1894년)이 일어날 때 접주 전봉준 장군도 소작인의 대표 역할을 한 소작농이였으니까. 보통 부처의 머리는 달팽이가 붙어있는 모습으로 심오한 진리를 터득한 고난과 영광의 상징인데 이 불상의 머리는 이곳 지역의 보통 하천민들의 상투를 그려 놓은 것 같다. 어쩌면 이 석공은 멀리 인도에서 온 고귀한 불상이 아니라 이 곳의 억압 받고 힘 없는 소작인들을 굽어 살펴 광명대천 영광의 세상이 오게 해 줄 수 있는 불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여기에 새겼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다시 한번 두 손 합장 불 법 승 삼배를 하고 물러난다.

 

방장사 대웅전 / 대웅전 앞 여유가 없어 정면에서 대웅전 전체를 담기는 어렵다. 아마 요사이 유행하는 드론이나 되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방장산 깊은 산속 절대 암벽 앞 끝트머리에 대웅전을 짓고 불법을 깨우치는 도량으로 그 신비로움이 어디에 비길것인가?

 

방장사(方丈寺)

 

고창읍 석정리 산 1-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이다. 

 

고창의 영산 방장산 동쪽으로 장성군과고창군 경계에 위치한 천오백 년의 고찰이다. 

가파른 벼랑 위에 매달리듯 가까스로 세워져 있어 오후에나 햇빛이 들 정도인데, 구름이나 안개가 많은 날에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도량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에는 임공사(臨邛寺)로 기록되어 있다. 임공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설화로 전해질 뿐인데, 신라 진흥왕 5년(544)에 불사 창건령의 밀명을 받고 고봉⋅반룡 등 두 법사가 백제 땅인 고창의 방장산에 와서 성왕 24년(546)에 상원사(上院寺)의 말사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발전해 오다가 1917년에 도안스님이, 1958년에는 청강 만오스님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1977년에는 법전스님이 중창하고 방장사(方丈寺)라 개명하였다.

2006년 10월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방장사라 등록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과 산신각과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

식이며, 요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대웅전에는 아미타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

으며, 마애석불좌상과 동종이 있다.

 

 

방장사 대웅전 주련

세존좌도량(世尊座道場) 세존께서 도량에 앉으시니,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 맑디맑고 크디큰 대광명이,

비여천일출(比如千日出) 천개해가 솟구쳐 밝혀주듯,

조요대천계(照耀大千界) 대천세계 드넓게 비쳐주네.

 

방장사 산신각
방장사 산신각 앞 쉼터는 스님께서 염불을 마치고 차 한잔하는 곳인가 보다. 오늘은 비어 있어 대석님이 준비한 양촌리 커피 한잔 하면서 나도 잠시 흉내를 내본다. 언젠가 부터 생긴 골프장에 노닐고 있는 중생들의 모습이란? 골프채 휘두르면서 인생의 진리나 알란가 모르겠다. 

 

올 여름 내내 방장사를 지켜온 파초

파초의 꿈을 아오

 

유영선 작곡 이건우 작사

 

불꽃처럼 살아야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들판의 풀잎처럼 우린 쓰러지지 말아야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린 미워하진 말아야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해

정열과 욕망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린 미워하진 말아야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해

정열과 욕망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youtu.be/qqu358S6qaU

나는 나는 풀꽃이 되어 대지위에 자라고

너는 너는 이슬이 되어 나의 모습을 적신다

우리들이 만나는 날은 안개가 낀 이른 새벽아침

너의 이슬이 나를 적실 때 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나는 풀꽃이 되어 대지위에 자라고

너는 너는 이슬이 되어 나의 모습을 적신다

나는 나는 갈대가 되어 너를 기다리고

너는 너는 이슬이 되어 나의 모습을 찾는다

 

우리들이 만나는 날은 햇님이 일어난 이른 새벽아침

너의 이슬이 나를 적실 때 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나는 갈대가 되어 너를 기다리고

너는 너는 이슬이 되어 나의 모습을 찾는다

파초의 꿈이라는 문정선이 부른 노래도 좋다.

파초의 꿈

 

낙엽이 나부끼던 어느 날인가

눈보라 밤새 일던 어느 날인가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한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으면

파초의 푸른 꿈은 이뤄지겠지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한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으면

파초의 푸른 꿈은 이뤄지겠지

 

 

비비추도 지난 여름 잘도 방장사를 지켰나 보다

 

방장사를 뒤로 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드디어 능선길에 도착한다. 국립장방장산휴양림 등산로 안내표지판인데 훼손이 많이 되었다.

 

한참을 급하게 오르다 보면 첫번째 봉우리인 579봉이 나온다
양고살재에서 1.3km 지점이다.

 

첫 조망이기도 하여 담아본다. 영산기맥 산줄기가 개스로 인하여 흐리게 보인디ㅏ.

 

 

이후 산행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쉬운 산길이 계속된다
문너머재를 지나고
등산로과 임도와 산악자전거통행로가 교차하는 위험한 지역

 

드디어 벽오봉에 도착
벽오봉에서 방장산을 조망하지만 개스로 흐리게 보여 아쉽다

 

조금 지나면 억새봉 활공장/ 이 곳이 억새봉이라고 하여 억새가 많은 곳으로 기대하였는데 대부분 활공장으로 쓰기 위해 잔디로 가구고 일부 억새가 억새봉암을 알린다. 아마 활공장 이전에는 억새가 많았으리라 짐작이 된다. 흐드러진 가을 은빛 물결 억새를 상상해 본다 

 

방등산가비

방등산가 유래

 

方登山 在羅州屬縣 長城之境 新羅末 盜賊大起 據此山 良家子女
多被擄掠 長日縣之女 亦在基中 作此歌以諷其夫不卽來救也

방등산 재나주속현 장성지경 신라말 도적대기 거차산 양가자녀
다피로략 장일현지녀 역재기중 작차가 이풍기부즉래구야.

방등산은 나주의 속현인 장성의 경계에 있는데 신라 말 도적이 크게 일어나 이 산에 웅거하였다. 양가 자녀들이 많이 붙잡혀 갔는데 장일현의 여인도 그 안에 있었다. 이 노래를 지어 남편이 즉시 와서 구해 주지 않음을 풍자하였다.

 

신라의 가요로 신라 말기에 장일현(長日縣)의 한 여인이 지은 것으로, 《고려사》 <악지(樂志)>에 가명(歌名)과 유래만 전하며, 가사는 전하지 않는다. 신라 말년 온 세상이 어지러워 도둑들이 나주(羅州) 속현인 장성(長城)의 방등산(方登山)에 진을 치고 양가의 부녀자를 납치해 갔는데, 그 가운데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음을 탄식하여 부른 노래이다.

 

방등산가비(고창군과 고창문화원)

방등산가는 신라 말에 지어진 백제 후예의 노래이다. 가사는 전해지지 않으며 위와 같은 내력만 전하는데 정일현을 장성이라 추정한 옛 기록도 있다. 또한 방등산은 반등산 또는 방장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고창 고을의 진산이 되며 예로부터 영산으로 받들어져 왔다. 이제 아스라히 천년 세월이 흘렀으나 이 노래에는 당시 고단한 삶을 살던 민초들의 애뜻한 사연이 담겨 있기에 그 태자리가 되는 이 산에 군민들의 마음을 모아 삼가 이 노래비를 세운다. 

 

 

산악자전거 코스
대부분 활공장 잔디로 관리하고 일부 억새가 남아 옛날의 은빛 억새를 기억하게 한다.
이 곳 활공장은 유명하다. 펠러그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인 곳이도 하다

 

억새봉에 새워진 주먹을 불끈 쥔 조형물은 무엇을 나타 낸 것일까?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왠지 고창 부안 지방에서 고 비율로 착출해 간 지주들의 악날한 행위에 항거하여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소장인들의 피 끓는 주먹아 아닐까? 민초들이 인간다운 삶을 얻기 위해 처절히 싸워 이긴 투쟁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 진다.  

 

잠시 앉아 투쟁의 역사 상징물을 감상하고
마음이 자꾸 가기에 더욱 자세히 담고자 한번 더 잡아 보고~/ 방장산을 배경으로 그 뜻을 뚜렷히 담고자 각도를 잡아보지만~ 

 

조금 내려오면 돌무더기를 만난다. 아마 이 곳 억새봉과 방장산 일대가 산성으로 조성되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임도와 임도 옆을 지나는 편안한 산길

 

신선봉을 우회하라는 이정표
고창 고개 이정표/ 용추폭포로는 안내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용추폭포 반대쪽으로 20m만 가면 방장동굴이 있는데 출입금지로 되어 있어 놓치고 말았다. 담에는 꼭 들러 보리라. 방장동굴은 방장산가 유래에 나오는 도적들이 기거한 곳이고 한말 천주교 박해 때는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피신해 기거 하였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빨치들이 기거한 곳이기도 하다.

 

철탑을 지나고
방장산 오름길이 사뭇 급경사다.

 

전망대가 나오면 거의 방장산 정상에 다가왔다/ 대부분 이곳에서 한 숨을 돌리고  주변 풍광을 감상한다. 비박할 사람들은 이곳에서 비박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조금더 오르면 조망터가 나온다. 조망터에서 잠시 쉬면서 하늘이 여리고 파란 창공이 반갑다,

 

드디어 방장산 정상이 눈 앞이다

 

방장산 정상에 도착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도 하고
장성 갈재에서 오르면 첫번째 도착한 쓰리봉을 배경으로 한 컷

 

방상산 화원에서 오늘 동행한 대석님
봉수대로 가는 길목에서 봉수대 서대봉 쓰리봉의 방장산 주 산줄기를 배경으로 한 컷
가야할 봉수대와 지난 겨울 장성 갈재에서 올랐던 쓰리봉(제일 오른쪽)과 서대봉(가운데)

 

쓰리봉과 장성 입암산과 백암산 산그리매
정읍 쪽 황금 들녁을 담아 본다
봐도 봐도 아름다운 방장산 주 산줄기
봉수대에 근접하여 
먼저간 대석님이 봉수대 끝 뷰포인터이 섰다. 순간을 포착해야지~
줌으로 당겨 보기도 하고~ 암반위에 선 대석님, 파란 하늘 흰구름 한폭의 산꾼의 꿈을 그리고 있다.

 

봉수대 가는 길목에서 만난 천상의 화원 온 갖 야생화 밭이다. 이런 곳을 만날 수있어 산을 찾는다. 야생화에 흠벅 빠진다.
드디어 봉수대가 눈앞이다.
봉수대 도착

 

봉수대 인증하고
대석님은 누워서 인증한다
봉수대에서 바라본 장성 북이면 황금 들녁이다.

 

되돌아 본 방장산과 억새봉 그리고 가운대가 출입금지 신성봉이다.
봉수대에서 파란하늘과 흰구름 쓰리봉과 장성 입암산과 백암산 그리고 정읍 내장산을 배경으로 한 컷
봉수대는 비박할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장소다. 비박하는 산꾼들이 여기서 비박을 하고 아침 일출을 보는 재미!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그럼 순간을 잡을 수없어 오늘 숙부쟁이와 파란 창공만 잡아 본다
어떤 산꾼의 비빅 후 일출을 여기 빌려 본다
봉수대에서 온갖 시름을 잊고 산꾼의 마음을 비우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저런 망중한
오늘 산행은 여기서 되돌아가기로한다. 
돌아오는 길에 대석님이 한 컷 올려 준다. 고맙고 감사하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뒤돌아본 봉수대와 서대봉 쓰리봉 방장산 주 산줄기를 바라보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구절초